네팔 여성기술교육센터, ‘한발 더’ 를 위한 모색 중입니다.

 

지난 해 말 두런두런은 네팔 여성기술교육센터를 방문했습니다.

이번 네팔 방문은 네팔에서 진행되고 있는 여성기술교육센터의 현 상황과 이후의 운영 방안에 대해 협의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방문기간 중 이루어진 네팔 에카타 신협 이사진과의 간담회에서 이사진들은 6개월간의 교육을 통해 여성들이 기술 습득 뿐만 아니라 무언가 자신의 손으로 할 수 있다는 자아의식을 갖게 되었다고 평가했습니다. 하지만 이사진은 6개월 교육만으로는 미흡한 점이 많아 지속적인 교육이 절대적으로 필요함을 강조했습니다. 6개월 이후의 중급교육을 거쳐야만 제대로 된 자립이 가능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에카타 여성기술교육센터가 위치한 랄리푸르는 도시외곽 지역으로 서민들이 거주하는 곳이기 때문에 이들 수준에 맞는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에카타 신협은 또한 사회적 기업 설립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현재 프로덕션 형태로 제품을 생산하고 노점상 등을 통해 제품 판매 경로를 확보하는 등 사회적 기업으로 나아가기 위한 기반을 조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전하며 이러한 사업들이 진행되기 위해서는 두런두런과의 협력과 지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함을 강조했습니다.

또한 에카타 신협은 봉제기술교육과 더불어 제과제빵 및 바리스타 교육은 상대적으로 짧은 시간 교육으로 창업할 수 있고 현재 랄리푸르 지역에서 필요한 사업이라는 장점이 있어 이후에 여성기술교육센터의 차기 교육으로 고민하자는 제안을 했습니다.

 

 

 

 

(에카타 신협 이사진과의 간담회 후)

 

 

두런두런은 또한 교육 참가자들과의 인터뷰도 실시했습니다. 참가자들은 대체로 교육에 만족해하며 개인의 역량강화와 가족 경제에 도움이 되었지만 교육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져 개인별 창업이나 취업에 연결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말했습니다. 교육 수료생 중 2명은 6개월 교육을 마치고 에카타 신협으로부터 소액 대출을 받아 소규모 가게를 창업하기도 했습니다.

 

(교육참가자들과의 간담회)

 

(교육수료생 중 한명이 창업 준비 중인 소규모 가게)

 

(교육수료생 중 한명이 창업 준비 중인 소규모 가게 내부)

 

두런두런은 이번 네팔 방문을 통해 두런두런의 지원 성과를 둘러보는 기회를 가졌을뿐만 아니라 향후 방향에 대해서도 협의하였습니다. 또한 교육 참가자들을 직접 만나 교육에 참여하면서 느낀 점, 어려움, 향후 기대하는 바 등을 들어봄으로써 기존 사업의 업그레이드 방향에 대해 구체적 내용을 고민할 수 있었습니다.

 

두런두런은 네팔에서의 봉제교육을 시작으로 제과제빵 및 바리스타 등 현지에서 요구하는 교육과 이후 창업 및 사회적 기업 설립 등 다양한 사업으로 연결함으로써 여성의 역량을 강화하고 대안경제 모델을 발굴하여 여성의 경제적 자립을 지속적으로 만들어낼 계획입니다.

Posted by DoRunDoRun

아시아위민브릿지 두런두런과 네팔 에카타 신협 여성기술교육훈련센터가 네팔 현지에서 간담회를 개최했습니다.

지난 12월 16일(월) 현재 네팔 두런두런 현지 사업장을 방문 중인 두런두런의 오혜란 상임이사는 네팔 에카타신협 이사진 및 1기 교육 참가자들과 함께 간담회를 개최했습니다.

간담회에선 1기 교육생들은 semi advanced class를 만들어주길 바란다는 의견을 많이 제안했고 이사진들은 기술교육을 통해 배출된 교육생들과 함께 사회적 기업을 만들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였으며, 앞으로 베이커리 교육과, 카페 운영 등도 하고 싶다는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2기 교육생들은 19일 만날 예정입니다.

이후 네팔과 관련된 더 자세한 소식 알려드리겠습니다.

 

 

에카타 신협 이사진들과 함께

 

1기 교육생들과 함께 이야기 나누는 모습

 

1기 교육 수료생 중 한명이 자신의 마을에 차린 가게

 

에카타 신협과 기술교육센터가 있는 건물.

Posted by DoRunDoRun

  네팔 여성들을 위한 봉제 기술교육훈련센터 모금 진행 중 !!

            희망제작소의 '모금학교' 교육생들이 열과 성을 다해 준비한 모금 사업          

       희망틀은 얼마일까요? ~~   

http://www.socialfunch.org/dorundorun 

 

 
안녕하세요. 아시아위민브릿지 두런두런입니다.
 
현재 두런두런의 사업인 '네팔여성을 위한  기술교육훈련센터'를 위한 모금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모금은 희망제작소의 ‘모금학교’ 교육생들이 열과 성을 다해 준비한 것입니다.
 
모금이 진행되는 곳은

http://www.socialfunch.org/dorundorun 

입니다.

여러분들의 클릭 한번으로 네팔 여성들의 희망이 실현될 수 있습니다.~~
 
* 현재 두런두런과 협력하여 ‘기술교육훈련센터’를 운영 중인 에카타 신협은
6개월의 교육만으로는 교육생들의 실질적 자립활동이 불가능하다는 판단 아래
센터에서 교육받은 여성들을 대상으로 추가 교육도 하고 ‘사회적기업’도 만들 계획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계획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많은 것들이 필요합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팔릴 수 있는 상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공업용 재봉틀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두런두런은 이 공업용 재봉틀을 지원하고자 합니다.

여러분들의 따뜻한 마음을 기다리겠습니다.

 
   
Posted by DoRunDoRun

 

 

네팔 봉제교육 사업장을 방문해서 이야기를 듣기까지 많은 분들의 도움이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취재기회를 주신 두런두런과 특히 남상민 이사님께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물도 설고 말도 설은 네팔 현지에서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주신 분들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번 방문기에서는 현지 취재 과정에서 도움을 주신 분들의 이야기를 통해, 에카타 신협과 사업장, 그리고 네팔의 오늘과 미래를 조금이라도 들여다보려 합니다.

에카타 신협의 ‘안팎’마님 : 헴 쿠마리 푼 대표님

 

 

에카타 신협의 대표, 헴 쿠마리씨

헴 쿠마리 푼 대표님은 두 번째 방문기에서 이야기 해드린 적이 있지요. 에카타 신협의 대표(의장)로 선출되어 봉제교육뿐만 아니라 저축은행, 소액융자 등 에카타 신협이 진행하는 모든 사업은 물론 협동조합의 방향과 미래를 이끌어 가시는 분입니다. 첫째 날 오전 교육에 참가한 여성분들과 인터뷰를 마친 후 대표님 방에 들러 많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에카타 신협이 특히 신경을 써온 부분은 조합원들, 그 가운데서도 특히 많은 여성 조합원들이 신협을 통해 단순히 돈을 주고받는 것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 가정 경제를 개선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주체로 설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저 자신도 여성이고, 에카타 신협에는 특히 여성 조합원들이 많아요. 그 이전에는 소액융자를 하면 전혀 계획 없이 생활비로 탕진해버리고 결국엔 빚만 남기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면, 봉제교육은 정말로 여성들이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첫 시도입니다.”

대표님께서는 이번 방문을 통해 교육에 참가하고 있는 생생한 목소리가 한국의 후원자들에게 직접 전달되는 것, 나아가 네팔과 네팔 여성들이 처한 상황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공감대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지기를 간절히 바라셨습니다.

지난 호에 소개드렸던 레시마 씨와 라다 씨 댁을 방문할 때에는 헴 쿠마리 푼 대표님과 함께 또 한 분의 도우미(?)가 동행했는데요, 바로 푼 대표님의 따님인 셜리나 푼 씨입니다. 영국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는 셜리나 씨는 방학을 위해 잠시 집에 머무는 중에 기꺼이 시간을 내어 통역과 안내를 도와주었습니다. 한국 문화에 관심이 많아 꼭 한 번 서울에 가고 싶다는 셜리나 씨에게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장학생에서 보조직원으로 : 아파나 실월 씨

 

오른쪽부터 헴 쿠마리 푼 대표님과 아파나 실월 씨

 

하루에 세 개 반으로 이루어지는 봉제교육은 수강생 십여 명과 강사(트레이너) 선생님 그리고 어시스턴트인 아파나 실월 씨가 함께 하고 있습니다. 아파나 실월 씨는 수강생들의 교육이 원활히 이루어지도록 실습을 보조하기도 하고, 교육에 필요한 재료들을 사오거나 장부를 정리하는 등의 일을 맡고 있습니다. 현재 네팔의 대학에서 석사과정을 밟고 있다는 실월 씨는 단순히 봉제교육의 보조업무를 위해 고용된 것은 아닙니다.

아파나 씨는 에카타 신협의 장학생 출신으로, 학자금을 지원받아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졸업했습니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봉제교육 보조를 하면서 실무도 익히고 학자금도 벌게 된 것이죠.

“에카타로부터 도움을 많이 받았는데 교육보조 활동을 하면서 교육 참가자들에게 제가 받은 것을 나누어 줄 수 있어서 좋습니다. 일을 하면서 보람도 느끼고, 보조 업무 급여도 나와서 공부를 하면서 받는 스트레스를 많이 덜고 있어요.”

실월 씨 역시 보조업무를 하면서 봉제기술을 익히고 있습니다. 대학원 학위를 취득해도 적은 일자리와 상대적인 학력 인플레이션으로 취업이 쉽지가 않은 것은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아파나 씨에게도 봉제교육은 보조교사이면서 수강생으로 참가할 수 있는 시간입니다. 두런두런의 후원으로 진행되는 기술교육이 잠재적인 고용을 늘릴 뿐만 아니라 젊은 여성에게 직접 취업기회를 제공하고 있는 셈이지요.

 

희망을 품고 사는 활동가 : 사말 타파 씨

 

 

                                            봉제교육이 진행되는 것을 지켜보고 있는 사말 타파 씨 (왼쪽 위)

 

누구보다도 이번 방문에 가장 큰 도움을 주신 분은 에카타 신협 사무국장으로 일하고 계신 서마르 타파 씨입니다. 수 년간 한국에서 이주 노동을 한 뒤 네팔로 귀환해 지역사회에서 활동가로 일하고 계십니다. 굳이 네팔 사람이라고 하지 않으면 알 수 없을 정도로 우리말을 유창하게 하셔서 처음에는 한국에서 파견을 오신 활동가라고 착각할 정도였답니다. 따뜻함과 날카로움을 동시에 갖고 계신 멋진 분이었습니다.

서마르 씨는 바쁜 와중에도 처음 신협 사무실을 들러서 일정을 잡고, 연락을 담당해 주시고, 숙소까지 교통편과 이런저런 편의를 제공해주시느라 많은 신세를 졌습니다. 제가 그 동안 쓴 방문기 내용 가운데 네팔의 어려운 사회경제적 상황과 관련해서 많은 정보를 주시기도 했습니다. 지면을 빌어 다시 한 번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서마르 씨에게는 아들이 하나 있는데, 아들 이름이 ‘산디바’입니다. 사무실에 놀러 온 산디바에게 인사를 하면서 옆에 함께 있던 셜리나 씨에게 산디바가 무슨 뜻이냐고 물어보았습니다. 셜리나 씨는 산디바에 해당하는 영어 단어를 떠올리려고 한참을 애를 쓰다가 포기하고 말았는데요, 그때 잠깐 자리를 비웠다가 돌아온 서마르 씨가 웃으면서 우리말로 대답해주었습니다.

“산디바는 말이죠, 네팔 말로 헌법이예요.”

70~80년대 한국 사회의 변화를 희망했던 많은 분들이 그때 낳은 자녀의 이름을 ‘민주’로 지었던 것처럼, 아직 민주공화국으로서의 기틀을 제대로 마련하지 않은 네팔에서 부모들은 아이에게 ‘헌법’이라는 이름을 줍니다. 아직 비록 국가의 기틀이라 할 수 있는 헌법이 만들어지지 않았고 사회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네팔은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하지만 산디바가 부모 세대의 바람과 꿈속에서 이 세상에 나온 것처럼 또 한국 사회의 수많은 ‘민주’들이 부모세대의 노력 위에서 민주주의에 조금 더 다가간 사회를 살게 된 것처럼 네팔에도 희망이 꽃피어나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 꽃을 피워내고 향유하는 주체로서 네팔과 한국 여성들이 바로설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

- 이 글은 두런두런 이사이자 UNESCAP동북아사무소 부소장인 남상민 이사의 후원으로 두런두런 네팔사업장을 방문했던 서울대 교육학과 3학년에 재학중인 김정현 씨가 작성했습니다.

- 네팔 사업은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2년간 살림이재단의 후원금(2012년, 2013년 매년 1만달러 지원)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향후 지속적인 사업을 위해 후원금 마련이 필요한 사업입니다. 여러분들의 적극적인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 후원계좌 : 신한은행 100-027-962711(아시아위민브릿지두런두런)

 

Posted by DoRunDoRun

 

 

이 글을 쓰는 저는 졸업을 한 해 앞둔 대학생입니다. 그래서 진로를 놓고 이런저런 고민을 하던 중에, 요며칠 학교에서 열린 취업박람회에 들러 보았습니다. 뜻밖에 리크루터로 부스를 지키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 아는 친구가 두 명이나 있었습니다. 취업박람회 부스에서 만난 두 친구는 모두 여성입니다. 요즘말로 ‘커리어 우먼’이 되어 경제적으로 자립을 해서 사는 모습이 참 부러웠습니다. 덕분에 편하게 취업 관련 정보도 얻고, 모처럼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두 친구와 대화를 나누고 강의실로 돌아가는 길에 네팔에서 만났던 여성분들이 떠올랐습니다. 취업은 커녕 일당 ‘노가다’도 구할 수 없고, 집에서 무슨 일을 하려 해도 기술이 없어 속앓이만 해야 하는 절망적인 상황에 처한 분들 말입니다.

물론 한국에서 여성이 일자리를 얻는다 하더라도 OECD 최고 수준의 남녀임금격차를 비롯해 보이지 않는 여성 차별과 직장내 성희롱에 시달리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또 여성 내에서도 부모(정확히는 아버지)의 사회경제적 지위에 따라 학업성취도와 취업 조건이 현격히 달라지는 현상까지, 한국에서 여성이 직장생활을 하는 것 자체에 많은 어려움과 위험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여성이 일할 수 있는 노동시장 자체가 극히 미미하게 형성된 네팔의 상황은 한국에 비할 바가 못 됩니다. 얼마 되지 않는 일자리마저도 인맥이나 배경이 좋은 이들이 독차지하고, 또 여성으로서 겪어야 하는 어려움은 한국보다 훨씬 더 심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희망은 있습니다. 이번 방문기에서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 두런두런과 에카타 신협이 진행하는 봉제수업을 통해 희망을 한땀한땀 놓아가는 두 분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다른 옷들도 만들 수 있길 바라요” : 레시마 씨 이야기

 

 

자신이 만든 옷을 들어보이며 웃고 있는 레시마 말라 씨

에카타 신협의 헴 쿠마리 푼 대표님과 함께 방문한 레시마 말라 씨의 집은 조그만 단칸방으로 카트만두 외곽 주택가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단칸방 한구석 벽에는 멋진 선글라스를 낀 레시마 씨가 남편과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는 사진이 걸려 있었습니다. 처음 사진 속 주인공을 알아보지 못한 우리가 선글라스 낀 분이 누구냐고 묻자 레시마 씨는 “결혼하고 나서는 많이 달라졌죠?” 하는 말과 함께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남편이 일을 하고 있지만 가난한 살림에 조금이라도 더 벌기 위해 봉제 교육을 배우기 시작한 단칸방에는 반자동 재봉틀이 놓여 있습니다. 에카타 신협은 봉제 수업 수강생 가운데 실력과 의지가 있는 이들에게 소액 융자(마이크로 크레딧)를 하고, 그 돈으로 구입한 재봉틀로 자가 훈련과 가계소득활동을 할 수 있게끔 지원하고 있습니다. 레시마 씨는 소액 융자로 재봉틀을 구입한 사람들 가운데 한 명입니다.

 

레시마 씨가 아이들을 위해 직접 만든 옷

“아이들이 입을 옷도 만들고, 이웃과 친지들에게 옷수선을 해 주고 있어요. 명절 때만 입는 간단한 파티 의상을 만들어 주고 수고비를 받기도 합니다.”

적은 돈이나마 지출은 줄고 수입은 늘어난 것에 기뻐하며 레시마 씨는 덧붙였습니다.

“원래는 아무 수입이 없이 집에서 아이들을 돌보며 집안일을 했지만 수입이 생겨 좋아요. 옷 만드는 기술을 더 배울 수 있으면 아마 다른 옷들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딸아이들 점심값이라도 벌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지요” : 라다 씨 이야기

 

그간의 어려웠던 사정을 이야기하고 있는 라다 타파 씨

“남편이 사고로 다리를 다쳐 몇 개월 동안 아주 어려운 시기를 보내야 했어요. 하루하루 먹고 사는 것도 문제였지만, 대학 예과에 진학한 첫째 딸 학비가 가장 큰 고민이었습니다.”

레시마 씨 댁을 나와 방문하게 된, 더욱 후미진 곳에 살고 있는 라다 씨는 더욱 딱한 처지였지만 그만큼 더 강한 의지를 가진 분이었습니다. 네팔의 교육열은 아주 높습니다. 교육 수준이 직업을 결정한다는 사실을 이미 네팔의 많은 부모들은 알고 있는 것이지요. 경제적으로 어렵더라도 자식교육에 투자해야한다는 믿음을 갖고 라다 씨 역시 생계와 자식의 교육 문제를 똑같이 중요하게 여기고 있었습니다.

라다 씨 가족이 살고 있는 집은 슬레이트와 시멘트로 얼기설기 지은, 헛간에 가까운 모습이었습니다. 흙바닥이 그대로 노출되어 실내에서 신을 벗을 수가 없고, 우기에는 습기가 집 안을 가득 채웁니다. 침상 주변으로 온갖 세간이 어수선한 가운데 재봉틀이 유독 눈에 띄었습니다. 라다 씨 역시 레시마 씨처럼 소액 융자로 재봉틀을 구입했습니다.

“전에 조그만 파우치를 만드는 공장에서 일했던 적이 있어요. 그래서 근처 교회에서 무료로 제공받은 재료를 가지고 여러가지 파우치를 재봉틀로 만들고 있고, 최근에도 50개 가량 주문을 받았습니다.”

 

라다 씨가 작업 중인 파우치

 

부업으로 하고 있는 양초 제작 틀

재봉틀 탁상이 있는 흙바닥 한켠에는 처음 보는 모양의 금속판이 놓여 있어 용도를 물었습니다.

“양초 만드는 틀이예요. 정전 때문에 다들 집에다 양초를 사 두는데, 제가 직접 왁스를 사서 만들어다가 팔고 있고 꽤 잘 팔려요.”

남편이 일을 하지 못하는 동안 해보지 않은 일이 없다는 라다 씨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저 작은 체구로 사실상 가정을 도맡았던 책임감과 노고를 읽을 수 있었습니다. 라다 씨가 직접 만드는 양초는 다른 이들의 어둠을 몰아내는 것일 뿐만 아니라 라다 씨 가족이 밝힐 희망의 등불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의 어려움을 토로하던 라다 씨는, 다른 봉제 수업 수강생들이 그랬던 것처럼 눈물을 보였습니다.

“친구들에게 집에서 재봉일을 비롯해 생계를 위해 이런 일들을 한다는 이야기는 부끄러워서(카스트 상으로 재봉, 수공업이 천하다고 여기는 사람들 눈치 때문에) 할 수 없어요. 삶을 포기하려는 생각도 했지만 두 딸 때문에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직업-출신지역-계급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카스트 제도는 공식적으로는 폐지되었으나 사람들 사이에 남아 있는 영향력은 여전히 강력합니다. 경제가 우선시되면서 이런 분위기가 누그러 들었다고 해도, 네팔에서 천한 일로 분류되는 재봉이나 수공업을 한다고 하면 사람들의 경멸어린 시선을 견뎌야 하는 것은 여전합니다.

“지금은 딸 학비와 마이크로 크레딧 대출금을 조금씩 갚고도 약간 돈이 남아요. 어떻게든 딸아이들 점심값이라도 댈 수 있으니 정말 고마운 일입니다. 더 높은 수준의 재봉 수업을 더 받게 되면 여성들이 간단하게 걸치는 옷들 말고도 남성복 같은 것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적어도 라다 씨에게는,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희망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 다음 방문기에서는 현지 취재를 도와주신 에카타 신협과 봉제수업 관계자분들의 이야기가 소개됩니다.
- 이 글은 두런두런 이사이자 UNESCAP동북아사무소 부소장인 남상민 이사의 후원으로 두런두런  
  네팔사업장을 방문했던 서울대 교육학과 3학년에 재학중인 김정현 씨가 작성했습니다.
- 네팔 사업은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2년간 살림이재단의 후원금(2012년, 2013년 매년 1만달러 지원)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향후 지속적인 사업을 위해 후원금 마련이 필요한 사업입니다.
  여러분들의 적극적인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 후원계좌 : 신한은행 100-027-962711(아시아위민브릿지두런두런)

Posted by DoRunDoRun

 

  

 

 

오늘도 네팔에서는 수천 명에 달하는 젊은이들이 외국으로 떠나고 있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일자리와 기회를 찾아서 말입니다. 대다수는 중동과 말레이시아 등 취업비자를 요구하지 않는 나라의 건설현장으로 가는 이들이고, 상대적으로 처우가 나은 한국이나 일본으로 가기 위해서는 취업허가를 받기 위해 어학 시험 등 까다로운 선발 절차와 긴 준비기간, 비용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그만큼 어렵다는 것이지요. 집안 사정이 좋은 경우에는 아예 외국시민권을 얻거나 외국 학교로 유학을 가기도 합니다. 카트만두 시내에는 어학 시험과 외국대학 입학과 관련한 자격시험 학원을 어디에서나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지난 번 소식지에서도 이야기 드렸지만 해외이주노동을 떠난 이들이 네팔로 송금해오는 돈은 네팔의 국가경제는 물론 가정과 가문 전체에 큰 도움이 되고 있지만, 가족의 해체라는 심각한 결과를 낳고 있습니다. 부부가 헤어져 지내는 동안 겪어야 하는 어려움도 크지만, 무엇보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이 겪게 되는 어려움은 더욱 큽니다. 오늘 소개해드릴 라마 씨의 이야기는 불가피한 이주노동으로 인해 겪어야 했던 안타까운 사연에 관한 것입니다.

불행은 아무 이유 없이 찾아오지 않았다

 

   봉제교육 수강생 하리 마야 라마 씨

 

하리 마야 라마 씨는 카트만두 빈민가에 살고 있는 여성입니다. 매일 아침 7시에 시작되는 에카타 신협의 봉제 교육에 가장 열심히 참여하고 있는 분이지요. 시골 출신인 라마 씨는 20년 전에 처음 카트만두로 상경하여 10년 정도를 보낸 뒤 남편을 만나 결혼했습니다. 그러나 결혼 생활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세 아이의 어머니인 라마 씨는 자신은 물론 남편 역시 뚜렷한 직업이 없어 그때그때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생계를 겨우 이어가고 있는 형편입니다. 생계 문제로 첫 아이를 임신한 지 석달만에 남편은 말레이시아로 떠났습니다. 먹고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그런데 시댁에서 남편이 보낸 돈을 모두 가져가고 하나도 주지 않는 거예요. 뱃속의 아이 때문에 제대로 일을 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 하루하루를 연명하기가 힘들었어요.”

라마 씨가 그때 겪었던 건강상의 후유증으로 첫 아이는 심장병을 얻었고 아직도 그 때문에 많은 고생을 하고 있습니다. 그토록 고생을 하는데도 시댁에서는 이런저런 핑계로 끝까지 돈을 주지 않았습니다. 남편은 중간중간 집으로 돌아오긴 했지만 무려 10년이나 해외에서 일을 하였습니다. 그 와중에 라마 씨도 스스로 돈을 벌기 위해 해외에서 4년간 이주노동자로 일을 했습니다. 이야기 끝에 라마 씨는 결국 눈물을 보였습니다. 저는 아내와 남편 모두가 이주 노동을 떠난 사이 아이들은 어떻게 지내야 했는지에 대한 내용을 차마 더 여쭐 수 없었습니다. 물어보지 않아도 아이들이 친척집을 비롯해 숱한 곳을 전전하며 부모와 떨어져 지냈을 모습이 눈에 선했습니다.

한참 후에야 겨우 감정을 추스른 라마 씨는 여전히 불안정한 생활 때문에 다시 외국에 나갈 생각을 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네팔에서는 길이 보이지 않는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하지만 에카타 신협의 봉제교육이 자신에게 희망이 되고 있다는 이야기도 덧붙였습니다.

“남편은 자기가 벌어온 돈으로 좌판도 하고 행상도 했지만 하나도 제대로 된 게 없어요. 그래도 봉제 기술을 더 배워서 가게도 열고 삶이 바뀌길 바라는 마음도 있습니다.”

지금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봉제 수업을 듣는 사람들 가운데서도 라마 씨가 겪고 있는 상황은 가장 좋지 않은 축에 속합니다. 그러나 라마 씨와 같은 일을 겪고 있는 이들은 네팔에서는 셀 수 없이 많습니다. 이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는 일은 그 어떤 다른 일보다 선행되어야 하며, 국가 차원의 노력은 물론 지역 사회, NGO 그리고 해외의 지원이 모두 다 절실한 상황입니다.

네팔은 국내 산업이라고 할 만한 것이 거의 없습니다. 인도와 중국 등 주변 강대국에 산업과 경제의 전 부문을 의존하면서 부족한 외화는 자국민의 해외이주노동 품삯으로 메우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제헌의회는 주요 정치세력이 합의를 도출해내는데 실패하는 등 난항을 거듭한 끝에 결국 정지되었고, 의회의 예결산 기능이 정지된 경우 법에 따라 행정부 집행예산은 1/3로 줄어들어 단기간 내에 국가 차원의 개발계획을 기대하기도 어려운 상황입니다. 이처럼 국내 경제가 마비되어 일자리 창출이 어렵고 막막해지자 많은 이들이 외국으로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카스트 제도로 직업의 귀천을 나누고, 여성이 일을 하는 것 자체를 바람직하게 보지 않는 네팔에서, 취업에 필요한 교육과 기술을 제공받지 못한 여성이 생계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습니다. 수도가 있는 카트만두 계곡 지역으로 많은 이들이 몰려들고 또 그 가운데 많은 이들이 외국으로 떠나고 있지만 그 속에서도 여성은 소외되고 있습니다. 운이 좋은 이들은 건설 현장이나 작은 수공업 공장에서 일을 얻을 수 있지만 어디까지나 운이 좋은 몇몇 사람들의 이야기일 뿐입니다. 그나마도 알음알음, 인맥을 활용해서 취업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에카타 신협에서 봉제교육을 하는 모습

 

재봉틀을 이용한 봉제 교육은 에카타 신협 뿐만 아니라 네팔의 많은 곳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대표적인 기술 훈련 프로그램입니다. 봉제 교육은 취업연계도 가능하고, 특히 여성들이 재봉틀을 구입해서 스스로 일을 할 수도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에카타 신협이 앞으로 봉제 교육을 1년간 진행한 뒤 그 경험을 바탕으로 다른 분야의 교육활동도 진행할 것이라는 점은 지난 호에서 이미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이러한 기술훈련은 에카타 신협이나 두런두런의 의미있는 사업일 뿐만 아니라, 결과적으로 네팔 내에서 여성들이 적극적으로 또 스스로 주체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촉진시키는 의미있는 과정입니다. 네팔 국내 산업 측면에서는 비록 미미하다 할지라도 해외의존적인 공산품 시장에서 적게나마 국내 생산자의 비중을 키워가는 데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입니다.

라마 씨와 같이 절망에 빠진 이들이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이와 같은 기술훈련과 교육이 끊이지 않고 더 자주 제공되어야 합니다. 두런두런 후원회원 분들이 그러한 희망의 가능성을 키워나가는 데에 든든한 바라지를 하고 있다는 점 또한 틀림없는 사실이겠지요.

"지금 제 삶이 바뀌었으면 좋겠습니다. 열심히 노력하면 할 수 있다는 마음도 갖고 있습니다. 훈련 기간이 조금 더 늘어날 수 있다면 더 좋겠네요."

라마 씨가 희망과 눈물을 함께 담아 전했던 말입니다.

----------------------------------------------------------------------------------------------------------------

- 다음에도 기술 훈련에 참가 중인 현지 여성들의 이야기가 계속됩니다.

- 이 글은 두런두런 이사이자 UNESCAP동북아사무소 부소장인 남상민 이사의 후원으로 두런두런 네팔사업장을 방문했던 서울대 교육학과 3학년에 재학중인 김정현 씨가 작성했습니다.

- 네팔 사업은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2년간 살림이재단의 후원금(2012년, 2013년 매년 1만달러 지원)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향후 지속적인 사업을 위해 후원금 마련이 필요한 사업입니다. 여러분들의 적극적인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 후원계좌 : 신한은행 100-027-962711 (아시아위민브릿지 두런두런)

Posted by DoRunDoRun


지난 2월 24일 오후 4시, 한국은 일요일이라 아마도 휴식을 취하신 여러분이 대부분이실텐데요!

그 날, 네팔 카트만두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지금 바로 전해드립니다.


두런두런은 첫 해외사업지역으로 네팔을 선정하고

현지의 여성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찾기 위해 여러모로 애써왔습니다. 

좋은 현지 파트너를 만나는 것도 큰 일이 아닐 수 없는데요.

두런두런의 현지 파트너는 Ekata Saving and Credit Cooperative Society (이하 에카타신협*) 이라고 하는

현지 협동조합을 만나 지난 10월부터 협력해오고 있습니다.

(*에카타 신협은 네팔 카트만두 인근에서 1999년에 설립된 조합으로 1200명 가량의 회원 중 여성 회원이 987명이고 대부분의 이사진이 여성으로, 여성에게 회원이 될 우선권을 주는 여성중심․친화적인 조합입니다. 에카타 신협은 여성 회원의 재정적 상태를 향상시키고 지위 향상을 위해 2008년부터 마이크로 파이낸스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에카타 신협과 두런두런이 고심해서 추진한 첫 사업은 바로 여성들을 위한 기술훈련센터였고

지난 10월부터 준비하기 시작한 센터가 2013년 1월을 맞이해 드디어 오픈하고

희망하는 여성들을 선발해 봉제기술훈련을 실시하게 되었습니다.


2월 24일은 바로 훈련센터의 개소식이 있던 날인데요.

기술훈련센터가 위치한 건물 옥상에서 열린 이날 개소식에는

Ekata 봉제교실에 참여하는 여성들과 지역 여성지도자, 노조위원장(군단위 위원장, 도단위 위원장),

정부 관계자, Ekata 실무진 등 관계자들과 현지에 파견 나와 활동하고 있는 한국 활동가들

(KOICA 단원과 자원봉사자, 트래블러스맵-페어트레이드코리아-오가니제이션요리-성공회대학교 사회적기업 연구소의

공동프로젝트 담당자, ‘품(네팔 ’베시마을‘에서 Local NGO를 만들고 수년간 활동해온 단체)'활동가 등) 등

많은 분들의 참석으로 성황리에 진행되었습니다. 


2013년 2월 24일 이라는 날짜와 두런두런 로고, 태극기가 선명하게 보이는 개소식 현수막입니다.


(좌: 개소식이 열리고 있습니다. 많은 여성들의 모습이 눈에 띄네요!

 우: 네팔의 예절에 따라 좋은 기운을 전하는 다양한 동물이 그려진 스카프를 둘러주고 참석자들의 축복을 빌어주고 있는 모습)




에카타 기술훈련센터는 현재 3개의 반, 각 15명의 여성이 참여하여 운영되고 있으며

두런두런에서 지원한 재봉틀을 이용해 교육이 실시되고 있는데

경험이 풍부한 트레이너의 지도로 앞치마, 아동복 등을 재단하고 바느질하는 훈련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곧 배냇저고리 만들기 교육을 실시한다고 하는데요.

이는 많은 빈곤 가정에서 태어나는 아기들이 배냇저고리를 살 수 없는 어려운 형편 때문이라고 합니다.


(좌: 열심히 교육받고 있는 여성들, 우: 트레이너의 지도를 받고 있는 교육 여성)

(좌: 여성들이 만들고 있는 작품들(앞치마, 아동복 등), 우: 기술훈련 수업 진행 중)


이번 방문으로 두런두런에서도 처음 알게된 사실이 있습니다.

네팔은 힌두교의 영향으로 사회적으로 카스트 제도의 차별이 여전히 존재하는데

바느질을 하는 직업 자체가 굉장히 하층민의 직업으로 여겨지는 문화로 인해

가난한 여성들조차 바느질, 봉제에 대한 교육 욕구가 거의 부재한 상황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에카타 기술훈련센터에서는 교육생들의 사기를 증진시키기 위해

교육생들이 만들어내는 작품에 이름을 붙이고 그 판매량을 추적해

시장의 호응이 좋은 작품에 대해 서로 칭찬하고 그 이유를 분석하는 과정을 통해

자존감과 자긍심을 회복해나가고 있다는 흐뭇한 소식이 들려오고 있네요.


또한, 이번 네팔 방문을 통해 두런두런은 현지에서 모범적으로 활동 중인 여러 단체와 활동가들을 만날 수 있었고

조만간 이들과의 협업을 통해 지속가능한 사업을 이어나가고자 합니다.


앞으로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D




Posted by DoRunDoR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