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디 코리안, 아디 네팔리’의 16년

2014-05-28

[두런두런의 파트너 국가 이야기 -네팔]

 

 

‘아디 코리안, 아디 네팔리’의 16년 - 1

뜨거운 열정으로 시작한 네팔의 삶

 

 

 

심우진(KOICA 네팔 ODA 교육전문가)

 

지금 생각해 봐도 그 당시의 내겐 청년의 뜨거운 열정이 넘쳤던 것 같다. 어느 봉사단원이 촛불을 켜고 흙바닥에서 밥을 먹고, 현지인들과 더불어 사는 모습의 다큐멘터리를 보고 감동하며 그러한 삶에 최고의 가치를 두었었다. 교회에 같이 다니던 선배가 아프리카로 봉사하러 떠나는 것을 보며 나도 마음을 굳혔고,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지원을 하게 되었다. 1998년 코이카의 봉사단원으로 네팔에 오게 되었고, ‘나눔과 섬김’-당시 코이카의 모토였다-의 삶을 살 수 있게 된다는 사실에 무척이나 들떴고 행복했다. 직각으로 꺾인 의자에 몸을 싣고 창문 틈새로 들어오는 찬바람을 맞으며 20여 시간이 걸리는 일람 지방으로 봉사를 가다가 새벽 노중에 마셨던 찌야(네팔의 밀크티)는 어찌 그리도 달고 맛나던지...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생활의 불편함도 감수하게 되고, 내가 가진 것에 감사하게 된 것...이것이 내가 네팔에서 받은 값진 선물 중의 하나임에 분명한 것 같다.

 

그렇게 시작된 네팔에서의 삶이 이제 벌써 16년째다. 네팔에서의 일상이 훨씬 익숙한 나는 이제 ‘아디 코리안, 아디 네팔리’ -반은 한국인, 반은 네팔인이라고 말한다. 얼마 전 한국에서 오신 분을 만나 얘기하던 중, ‘한국의 일인당 국민소득이 이제 만 불이 넘었죠?’라고 했다가 큰 놀림을 당했다. 만 불을 넘어 2만 불 시대가 된 지도 한참이란다. 그러고 보니 나는 네팔의 GNI가 얼마이고, 문해율이 얼마인지, 카트만두의 인구가 얼마인지, 수도 보급률이 어떤지, 최근 20년간 일어난 네팔의 정치적, 사회적 변화를 한국의 그것보다 훨씬 더 잘 설명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었다. 그렇다고 내기 네팔의 구석구석을 속속들이 잘 안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네팔에 대해 많은 사실을 경험하고 알게 된 건 분명한 사실이다.

 

지금은 코이카의 ODA 교육 전문가로 네팔 사무소에서 일하고 있다. ODA는 Official Development Aid의 약자로 공적 개발 원조를 말한다. 개발 사업은 크게 민간에서 담당하는 NGO(Non Government Organization) 사업과 정부 및 국제기구에서 담당하는 공적 원조로 나뉜다. 이 공적원조는 다시 유상원조와 무상원조로 나뉘는데 일본의 경우, 두 개의 기구로 나뉘어 사업을 하던 것을 이제는 JICA가 유, 무상 원조를 총괄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유상원조는 EDCF(대외경제협력기금)에서, 무상원조는 코이카에서 담당하고 있다. 내가 하는 일은 네팔에서의 교육 프로젝트를 개발하고 관리하는 업무를 주로 담당하는데, 지금은 교육분야 중에서도 직업훈련 분야에 집중 지원하고 있다.

 

 

 

 


 

 

네팔에서 매년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청년 인구가 약 50만명인데 이들 대부분은 취업에 필요한 기술이 부족하고, 취업기회도 거의 없어 고용불안, 저임금(네팔 미숙련 노동자의 최저 임금은 약 $83)으로 빈곤을 탈출하기 어려운 상태이다. 보고에 따르면 매일 2,000명의 청년이 해외노동을 위해 네팔을 떠나고 있다고 한다. 따라서 직업훈련 사업은 네팔 청년층의 훈련 기회를 확대하고 이를 통해 취업을 촉진함으로써 빈곤 감소에 기여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직업훈련은 네팔의 여성에게도 매우 필요한 사업으로 여성의 기술과 경제력을 강화함으로써 가정에서 여성 권익이 신장되고, 결국 자녀의 교육과 삶의 전반에 영향을 미치게 되므로 많은 훈련에 있어 여성에 대한 할당 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네팔 여성의 삶과 인권에 대한 부분은 다음 기회에 좀 더 자세히 설명하도록 하겠다.

 

나의 활동이 이 나라의 발전에 얼마나 큰 의미가 있을까, 또 어떤 방식의 사업이 이 나라의 개발에 가장 효과적일 것인가는 개발 협력 사업에 종사해 본 사람이라면 정책가든, 활동가든 아마도 한 번쯤은 해 본 고민일 것이다. 내가 언제까지 네팔에 살게 될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남은 시간 동안 좀 더 많은 네팔 사람들에게 더 많은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더 나은 방법을 찾고자 계속 고민하게 될 것 같다.

 

 

<이글은 네팔 현지에서 KOICA ODA 교육전문가로 활동하고 있고 두런두런의 운영위원이기도 한 심우진 님의 글입니다. 두런두런은 첫 해외사업파트너 국가인 네팔에 대해 그 곳에서 겪은 생생한 삶의 이야기를 통해 네팔과 네팔 사람들에 대해 조금 더 알 수 있는 기회를 갖고자 이 코너를 기획했습니다. 앞으로 4-5회에 걸쳐 심우진님의 네팔 생활 이야기가 실릴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