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 여성의 미래를 여는 사람들-네팔사업 현장 방문기(최종)

2013-10-02

 

네팔 봉제교육 사업장을 방문해서 이야기를 듣기까지 많은 분들의 도움이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취재기회를 주신 두런두런과 특히 남상민 이사님께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물도 설고 말도 설은 네팔 현지에서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주신 분들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번 방문기에서는 현지 취재 과정에서 도움을 주신 분들의 이야기를 통해, 에카타 신협과 사업장, 그리고 네팔의 오늘과 미래를 조금이라도 들여다보려 합니다.

에카타 신협의 ‘안팎’마님 : 헴 쿠마리 푼 대표님

 

 

에카타 신협의 대표, 헴 쿠마리씨

헴 쿠마리 푼 대표님은 두 번째 방문기에서 이야기 해드린 적이 있지요. 에카타 신협의 대표(의장)로 선출되어 봉제교육뿐만 아니라 저축은행, 소액융자 등 에카타 신협이 진행하는 모든 사업은 물론 협동조합의 방향과 미래를 이끌어 가시는 분입니다. 첫째 날 오전 교육에 참가한 여성분들과 인터뷰를 마친 후 대표님 방에 들러 많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에카타 신협이 특히 신경을 써온 부분은 조합원들, 그 가운데서도 특히 많은 여성 조합원들이 신협을 통해 단순히 돈을 주고받는 것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 가정 경제를 개선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주체로 설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저 자신도 여성이고, 에카타 신협에는 특히 여성 조합원들이 많아요. 그 이전에는 소액융자를 하면 전혀 계획 없이 생활비로 탕진해버리고 결국엔 빚만 남기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면, 봉제교육은 정말로 여성들이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첫 시도입니다.”

대표님께서는 이번 방문을 통해 교육에 참가하고 있는 생생한 목소리가 한국의 후원자들에게 직접 전달되는 것, 나아가 네팔과 네팔 여성들이 처한 상황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공감대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지기를 간절히 바라셨습니다.

지난 호에 소개드렸던 레시마 씨와 라다 씨 댁을 방문할 때에는 헴 쿠마리 푼 대표님과 함께 또 한 분의 도우미(?)가 동행했는데요, 바로 푼 대표님의 따님인 셜리나 푼 씨입니다. 영국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는 셜리나 씨는 방학을 위해 잠시 집에 머무는 중에 기꺼이 시간을 내어 통역과 안내를 도와주었습니다. 한국 문화에 관심이 많아 꼭 한 번 서울에 가고 싶다는 셜리나 씨에게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장학생에서 보조직원으로 : 아파나 실월 씨

 

오른쪽부터 헴 쿠마리 푼 대표님과 아파나 실월 씨


 

하루에 세 개 반으로 이루어지는 봉제교육은 수강생 십여 명과 강사(트레이너) 선생님 그리고 어시스턴트인 아파나 실월 씨가 함께 하고 있습니다. 아파나 실월 씨는 수강생들의 교육이 원활히 이루어지도록 실습을 보조하기도 하고, 교육에 필요한 재료들을 사오거나 장부를 정리하는 등의 일을 맡고 있습니다. 현재 네팔의 대학에서 석사과정을 밟고 있다는 실월 씨는 단순히 봉제교육의 보조업무를 위해 고용된 것은 아닙니다.

아파나 씨는 에카타 신협의 장학생 출신으로, 학자금을 지원받아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졸업했습니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봉제교육 보조를 하면서 실무도 익히고 학자금도 벌게 된 것이죠.

“에카타로부터 도움을 많이 받았는데 교육보조 활동을 하면서 교육 참가자들에게 제가 받은 것을 나누어 줄 수 있어서 좋습니다. 일을 하면서 보람도 느끼고, 보조 업무 급여도 나와서 공부를 하면서 받는 스트레스를 많이 덜고 있어요.”

실월 씨 역시 보조업무를 하면서 봉제기술을 익히고 있습니다. 대학원 학위를 취득해도 적은 일자리와 상대적인 학력 인플레이션으로 취업이 쉽지가 않은 것은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아파나 씨에게도 봉제교육은 보조교사이면서 수강생으로 참가할 수 있는 시간입니다. 두런두런의 후원으로 진행되는 기술교육이 잠재적인 고용을 늘릴 뿐만 아니라 젊은 여성에게 직접 취업기회를 제공하고 있는 셈이지요.

 

희망을 품고 사는 활동가 : 사말 타파 씨

 

 

                                            봉제교육이 진행되는 것을 지켜보고 있는 사말 타파 씨 (왼쪽 위)

 

누구보다도 이번 방문에 가장 큰 도움을 주신 분은 에카타 신협 사무국장으로 일하고 계신 서마르 타파 씨입니다. 수 년간 한국에서 이주 노동을 한 뒤 네팔로 귀환해 지역사회에서 활동가로 일하고 계십니다. 굳이 네팔 사람이라고 하지 않으면 알 수 없을 정도로 우리말을 유창하게 하셔서 처음에는 한국에서 파견을 오신 활동가라고 착각할 정도였답니다. 따뜻함과 날카로움을 동시에 갖고 계신 멋진 분이었습니다.

서마르 씨는 바쁜 와중에도 처음 신협 사무실을 들러서 일정을 잡고, 연락을 담당해 주시고, 숙소까지 교통편과 이런저런 편의를 제공해주시느라 많은 신세를 졌습니다. 제가 그 동안 쓴 방문기 내용 가운데 네팔의 어려운 사회경제적 상황과 관련해서 많은 정보를 주시기도 했습니다. 지면을 빌어 다시 한 번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서마르 씨에게는 아들이 하나 있는데, 아들 이름이 ‘산디바’입니다. 사무실에 놀러 온 산디바에게 인사를 하면서 옆에 함께 있던 셜리나 씨에게 산디바가 무슨 뜻이냐고 물어보았습니다. 셜리나 씨는 산디바에 해당하는 영어 단어를 떠올리려고 한참을 애를 쓰다가 포기하고 말았는데요, 그때 잠깐 자리를 비웠다가 돌아온 서마르 씨가 웃으면서 우리말로 대답해주었습니다.

“산디바는 말이죠, 네팔 말로 헌법이예요.”

70~80년대 한국 사회의 변화를 희망했던 많은 분들이 그때 낳은 자녀의 이름을 ‘민주’로 지었던 것처럼, 아직 민주공화국으로서의 기틀을 제대로 마련하지 않은 네팔에서 부모들은 아이에게 ‘헌법’이라는 이름을 줍니다. 아직 비록 국가의 기틀이라 할 수 있는 헌법이 만들어지지 않았고 사회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네팔은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하지만 산디바가 부모 세대의 바람과 꿈속에서 이 세상에 나온 것처럼 또 한국 사회의 수많은 ‘민주’들이 부모세대의 노력 위에서 민주주의에 조금 더 다가간 사회를 살게 된 것처럼 네팔에도 희망이 꽃피어나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 꽃을 피워내고 향유하는 주체로서 네팔과 한국 여성들이 바로설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 이 글은 두런두런 이사이자 UNESCAP동북아사무소 부소장인 남상민 이사의 후원으로 두런두런 네팔사업장을 방문했던 서울대 교육학과 3학년에 재학중인 김정현 씨가 작성했습니다.

- 네팔 사업은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2년간 살림이재단의 후원금(2012년, 2013년 매년 1만달러 지원)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향후 지속적인 사업을 위해 후원금 마련이 필요한 사업입니다. 여러분들의 적극적인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 후원계좌 : 신한은행 100-027-962711(아시아위민브릿지두런두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