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 사업 현장 방문기 - 세번째 이야기

2013-09-10

 

이 글을 쓰는 저는 졸업을 한 해 앞둔 대학생입니다. 그래서 진로를 놓고 이런저런 고민을 하던 중에, 요며칠 학교에서 열린 취업박람회에 들러 보았습니다. 뜻밖에 리크루터로 부스를 지키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 아는 친구가 두 명이나 있었습니다. 취업박람회 부스에서 만난 두 친구는 모두 여성입니다. 요즘말로 ‘커리어 우먼’이 되어 경제적으로 자립을 해서 사는 모습이 참 부러웠습니다. 덕분에 편하게 취업 관련 정보도 얻고, 모처럼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두 친구와 대화를 나누고 강의실로 돌아가는 길에 네팔에서 만났던 여성분들이 떠올랐습니다. 취업은 커녕 일당 ‘노가다’도 구할 수 없고, 집에서 무슨 일을 하려 해도 기술이 없어 속앓이만 해야 하는 절망적인 상황에 처한 분들 말입니다.

물론 한국에서 여성이 일자리를 얻는다 하더라도 OECD 최고 수준의 남녀임금격차를 비롯해 보이지 않는 여성 차별과 직장내 성희롱에 시달리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또 여성 내에서도 부모(정확히는 아버지)의 사회경제적 지위에 따라 학업성취도와 취업 조건이 현격히 달라지는 현상까지, 한국에서 여성이 직장생활을 하는 것 자체에 많은 어려움과 위험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여성이 일할 수 있는 노동시장 자체가 극히 미미하게 형성된 네팔의 상황은 한국에 비할 바가 못 됩니다. 얼마 되지 않는 일자리마저도 인맥이나 배경이 좋은 이들이 독차지하고, 또 여성으로서 겪어야 하는 어려움은 한국보다 훨씬 더 심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희망은 있습니다. 이번 방문기에서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 두런두런과 에카타 신협이 진행하는 봉제수업을 통해 희망을 한땀한땀 놓아가는 두 분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다른 옷들도 만들 수 있길 바라요” : 레시마 씨 이야기

 

 

자신이 만든 옷을 들어보이며 웃고 있는 레시마 말라 씨

에카타 신협의 헴 쿠마리 푼 대표님과 함께 방문한 레시마 말라 씨의 집은 조그만 단칸방으로 카트만두 외곽 주택가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단칸방 한구석 벽에는 멋진 선글라스를 낀 레시마 씨가 남편과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는 사진이 걸려 있었습니다. 처음 사진 속 주인공을 알아보지 못한 우리가 선글라스 낀 분이 누구냐고 묻자 레시마 씨는 “결혼하고 나서는 많이 달라졌죠?” 하는 말과 함께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남편이 일을 하고 있지만 가난한 살림에 조금이라도 더 벌기 위해 봉제 교육을 배우기 시작한 단칸방에는 반자동 재봉틀이 놓여 있습니다. 에카타 신협은 봉제 수업 수강생 가운데 실력과 의지가 있는 이들에게 소액 융자(마이크로 크레딧)를 하고, 그 돈으로 구입한 재봉틀로 자가 훈련과 가계소득활동을 할 수 있게끔 지원하고 있습니다. 레시마 씨는 소액 융자로 재봉틀을 구입한 사람들 가운데 한 명입니다.

 

레시마 씨가 아이들을 위해 직접 만든 옷

“아이들이 입을 옷도 만들고, 이웃과 친지들에게 옷수선을 해 주고 있어요. 명절 때만 입는 간단한 파티 의상을 만들어 주고 수고비를 받기도 합니다.”


적은 돈이나마 지출은 줄고 수입은 늘어난 것에 기뻐하며 레시마 씨는 덧붙였습니다.

“원래는 아무 수입이 없이 집에서 아이들을 돌보며 집안일을 했지만 수입이 생겨 좋아요. 옷 만드는 기술을 더 배울 수 있으면 아마 다른 옷들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딸아이들 점심값이라도 벌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지요” : 라다 씨 이야기

 

그간의 어려웠던 사정을 이야기하고 있는 라다 타파 씨

“남편이 사고로 다리를 다쳐 몇 개월 동안 아주 어려운 시기를 보내야 했어요. 하루하루 먹고 사는 것도 문제였지만, 대학 예과에 진학한 첫째 딸 학비가 가장 큰 고민이었습니다.”

레시마 씨 댁을 나와 방문하게 된, 더욱 후미진 곳에 살고 있는 라다 씨는 더욱 딱한 처지였지만 그만큼 더 강한 의지를 가진 분이었습니다. 네팔의 교육열은 아주 높습니다. 교육 수준이 직업을 결정한다는 사실을 이미 네팔의 많은 부모들은 알고 있는 것이지요. 경제적으로 어렵더라도 자식교육에 투자해야한다는 믿음을 갖고 라다 씨 역시 생계와 자식의 교육 문제를 똑같이 중요하게 여기고 있었습니다.

라다 씨 가족이 살고 있는 집은 슬레이트와 시멘트로 얼기설기 지은, 헛간에 가까운 모습이었습니다. 흙바닥이 그대로 노출되어 실내에서 신을 벗을 수가 없고, 우기에는 습기가 집 안을 가득 채웁니다. 침상 주변으로 온갖 세간이 어수선한 가운데 재봉틀이 유독 눈에 띄었습니다. 라다 씨 역시 레시마 씨처럼 소액 융자로 재봉틀을 구입했습니다.

“전에 조그만 파우치를 만드는 공장에서 일했던 적이 있어요. 그래서 근처 교회에서 무료로 제공받은 재료를 가지고 여러가지 파우치를 재봉틀로 만들고 있고, 최근에도 50개 가량 주문을 받았습니다.”

 

라다 씨가 작업 중인 파우치

 

부업으로 하고 있는 양초 제작 틀

재봉틀 탁상이 있는 흙바닥 한켠에는 처음 보는 모양의 금속판이 놓여 있어 용도를 물었습니다.

“양초 만드는 틀이예요. 정전 때문에 다들 집에다 양초를 사 두는데, 제가 직접 왁스를 사서 만들어다가 팔고 있고 꽤 잘 팔려요.”

남편이 일을 하지 못하는 동안 해보지 않은 일이 없다는 라다 씨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저 작은 체구로 사실상 가정을 도맡았던 책임감과 노고를 읽을 수 있었습니다. 라다 씨가 직접 만드는 양초는 다른 이들의 어둠을 몰아내는 것일 뿐만 아니라 라다 씨 가족이 밝힐 희망의 등불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의 어려움을 토로하던 라다 씨는, 다른 봉제 수업 수강생들이 그랬던 것처럼 눈물을 보였습니다.

“친구들에게 집에서 재봉일을 비롯해 생계를 위해 이런 일들을 한다는 이야기는 부끄러워서(카스트 상으로 재봉, 수공업이 천하다고 여기는 사람들 눈치 때문에) 할 수 없어요. 삶을 포기하려는 생각도 했지만 두 딸 때문에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직업-출신지역-계급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카스트 제도는 공식적으로는 폐지되었으나 사람들 사이에 남아 있는 영향력은 여전히 강력합니다. 경제가 우선시되면서 이런 분위기가 누그러 들었다고 해도, 네팔에서 천한 일로 분류되는 재봉이나 수공업을 한다고 하면 사람들의 경멸어린 시선을 견뎌야 하는 것은 여전합니다.

“지금은 딸 학비와 마이크로 크레딧 대출금을 조금씩 갚고도 약간 돈이 남아요. 어떻게든 딸아이들 점심값이라도 댈 수 있으니 정말 고마운 일입니다. 더 높은 수준의 재봉 수업을 더 받게 되면 여성들이 간단하게 걸치는 옷들 말고도 남성복 같은 것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적어도 라다 씨에게는,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희망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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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방문기에서는 현지 취재를 도와주신 에카타 신협과 봉제수업 관계자분들의 이야기가 소개됩니다.
- 이 글은 두런두런 이사이자 UNESCAP동북아사무소 부소장인 남상민 이사의 후원으로 두런두런
네팔사업장을 방문했던 서울대 교육학과 3학년에 재학중인 김정현 씨가 작성했습니다.
- 네팔 사업은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2년간 살림이재단의 후원금(2012년, 2013년 매년 1만달러 지원)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향후 지속적인 사업을 위해 후원금 마련이 필요한 사업입니다.
여러분들의 적극적인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 후원계좌 : 신한은행 100-027-962711(아시아위민브릿지두런두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