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 사업현장 방문기 - 두번째 이야기

2013-08-27

 

 


오늘도 네팔에서는 수천 명에 달하는 젊은이들이 외국으로 떠나고 있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일자리와 기회를 찾아서 말입니다. 대다수는 중동과 말레이시아 등 취업비자를 요구하지 않는 나라의 건설현장으로 가는 이들이고, 상대적으로 처우가 나은 한국이나 일본으로 가기 위해서는 취업허가를 받기 위해 어학 시험 등 까다로운 선발 절차와 긴 준비기간, 비용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그만큼 어렵다는 것이지요. 집안 사정이 좋은 경우에는 아예 외국시민권을 얻거나 외국 학교로 유학을 가기도 합니다. 카트만두 시내에는 어학 시험과 외국대학 입학과 관련한 자격시험 학원을 어디에서나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지난 번 소식지에서도 이야기 드렸지만 해외이주노동을 떠난 이들이 네팔로 송금해오는 돈은 네팔의 국가경제는 물론 가정과 가문 전체에 큰 도움이 되고 있지만, 가족의 해체라는 심각한 결과를 낳고 있습니다. 부부가 헤어져 지내는 동안 겪어야 하는 어려움도 크지만, 무엇보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이 겪게 되는 어려움은 더욱 큽니다. 오늘 소개해드릴 라마 씨의 이야기는 불가피한 이주노동으로 인해 겪어야 했던 안타까운 사연에 관한 것입니다.

불행은 아무 이유 없이 찾아오지 않았다

 

   봉제교육 수강생 하리 마야 라마 씨

 

하리 마야 라마 씨는 카트만두 빈민가에 살고 있는 여성입니다. 매일 아침 7시에 시작되는 에카타 신협의 봉제 교육에 가장 열심히 참여하고 있는 분이지요. 시골 출신인 라마 씨는 20년 전에 처음 카트만두로 상경하여 10년 정도를 보낸 뒤 남편을 만나 결혼했습니다. 그러나 결혼 생활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세 아이의 어머니인 라마 씨는 자신은 물론 남편 역시 뚜렷한 직업이 없어 그때그때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생계를 겨우 이어가고 있는 형편입니다. 생계 문제로 첫 아이를 임신한 지 석달만에 남편은 말레이시아로 떠났습니다. 먹고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그런데 시댁에서 남편이 보낸 돈을 모두 가져가고 하나도 주지 않는 거예요. 뱃속의 아이 때문에 제대로 일을 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 하루하루를 연명하기가 힘들었어요.”

라마 씨가 그때 겪었던 건강상의 후유증으로 첫 아이는 심장병을 얻었고 아직도 그 때문에 많은 고생을 하고 있습니다. 그토록 고생을 하는데도 시댁에서는 이런저런 핑계로 끝까지 돈을 주지 않았습니다. 남편은 중간중간 집으로 돌아오긴 했지만 무려 10년이나 해외에서 일을 하였습니다. 그 와중에 라마 씨도 스스로 돈을 벌기 위해 해외에서 4년간 이주노동자로 일을 했습니다. 이야기 끝에 라마 씨는 결국 눈물을 보였습니다. 저는 아내와 남편 모두가 이주 노동을 떠난 사이 아이들은 어떻게 지내야 했는지에 대한 내용을 차마 더 여쭐 수 없었습니다. 물어보지 않아도 아이들이 친척집을 비롯해 숱한 곳을 전전하며 부모와 떨어져 지냈을 모습이 눈에 선했습니다.

한참 후에야 겨우 감정을 추스른 라마 씨는 여전히 불안정한 생활 때문에 다시 외국에 나갈 생각을 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네팔에서는 길이 보이지 않는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하지만 에카타 신협의 봉제교육이 자신에게 희망이 되고 있다는 이야기도 덧붙였습니다.

“남편은 자기가 벌어온 돈으로 좌판도 하고 행상도 했지만 하나도 제대로 된 게 없어요. 그래도 봉제 기술을 더 배워서 가게도 열고 삶이 바뀌길 바라는 마음도 있습니다.”

지금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봉제 수업을 듣는 사람들 가운데서도 라마 씨가 겪고 있는 상황은 가장 좋지 않은 축에 속합니다. 그러나 라마 씨와 같은 일을 겪고 있는 이들은 네팔에서는 셀 수 없이 많습니다. 이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는 일은 그 어떤 다른 일보다 선행되어야 하며, 국가 차원의 노력은 물론 지역 사회, NGO 그리고 해외의 지원이 모두 다 절실한 상황입니다.

네팔은 국내 산업이라고 할 만한 것이 거의 없습니다. 인도와 중국 등 주변 강대국에 산업과 경제의 전 부문을 의존하면서 부족한 외화는 자국민의 해외이주노동 품삯으로 메우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제헌의회는 주요 정치세력이 합의를 도출해내는데 실패하는 등 난항을 거듭한 끝에 결국 정지되었고, 의회의 예결산 기능이 정지된 경우 법에 따라 행정부 집행예산은 1/3로 줄어들어 단기간 내에 국가 차원의 개발계획을 기대하기도 어려운 상황입니다. 이처럼 국내 경제가 마비되어 일자리 창출이 어렵고 막막해지자 많은 이들이 외국으로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카스트 제도로 직업의 귀천을 나누고, 여성이 일을 하는 것 자체를 바람직하게 보지 않는 네팔에서, 취업에 필요한 교육과 기술을 제공받지 못한 여성이 생계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습니다. 수도가 있는 카트만두 계곡 지역으로 많은 이들이 몰려들고 또 그 가운데 많은 이들이 외국으로 떠나고 있지만 그 속에서도 여성은 소외되고 있습니다. 운이 좋은 이들은 건설 현장이나 작은 수공업 공장에서 일을 얻을 수 있지만 어디까지나 운이 좋은 몇몇 사람들의 이야기일 뿐입니다. 그나마도 알음알음, 인맥을 활용해서 취업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에카타 신협에서 봉제교육을 하는 모습

 

재봉틀을 이용한 봉제 교육은 에카타 신협 뿐만 아니라 네팔의 많은 곳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대표적인 기술 훈련 프로그램입니다. 봉제 교육은 취업연계도 가능하고, 특히 여성들이 재봉틀을 구입해서 스스로 일을 할 수도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에카타 신협이 앞으로 봉제 교육을 1년간 진행한 뒤 그 경험을 바탕으로 다른 분야의 교육활동도 진행할 것이라는 점은 지난 호에서 이미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이러한 기술훈련은 에카타 신협이나 두런두런의 의미있는 사업일 뿐만 아니라, 결과적으로 네팔 내에서 여성들이 적극적으로 또 스스로 주체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촉진시키는 의미있는 과정입니다. 네팔 국내 산업 측면에서는 비록 미미하다 할지라도 해외의존적인 공산품 시장에서 적게나마 국내 생산자의 비중을 키워가는 데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입니다.

라마 씨와 같이 절망에 빠진 이들이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이와 같은 기술훈련과 교육이 끊이지 않고 더 자주 제공되어야 합니다. 두런두런 후원회원 분들이 그러한 희망의 가능성을 키워나가는 데에 든든한 바라지를 하고 있다는 점 또한 틀림없는 사실이겠지요.

"지금 제 삶이 바뀌었으면 좋겠습니다. 열심히 노력하면 할 수 있다는 마음도 갖고 있습니다. 훈련 기간이 조금 더 늘어날 수 있다면 더 좋겠네요."

라마 씨가 희망과 눈물을 함께 담아 전했던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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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에도 기술 훈련에 참가 중인 현지 여성들의 이야기가 계속됩니다.

- 이 글은 두런두런 이사이자 UNESCAP동북아사무소 부소장인 남상민 이사의 후원으로 두런두런 네팔사업장을 방문했던 서울대 교육학과 3학년에 재학중인 김정현 씨가 작성했습니다.

- 네팔 사업은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2년간 살림이재단의 후원금(2012년, 2013년 매년 1만달러 지원)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향후 지속적인 사업을 위해 후원금 마련이 필요한 사업입니다. 여러분들의 적극적인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 후원계좌 : 신한은행 100-027-962711 (아시아위민브릿지 두런두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