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다시 네팔에 온 이유

2019-04-10

내가 다시 네팔에 온 이유

 

아시아위민브릿지 두런두런 PM 장미애

 

네팔에 온 지 어언 한 달이 지났습니다.

이제는 날이 많이 풀려 더 이상 필요 없어진 전기장판을 오늘에야 고이 접어 장롱에 넣었습니다. 카투만두에 왔던 3월 초에는 밤이면 입김으로 기온을 확인하며 추위 속에 덜덜 떨며 잠이 들곤 했는데. 한 달간 네팔의 계절이 이렇게 흐르고 있었는데, 이를 느낄 겨를도 없이 네팔 생활이며 일에 적응하느라 한 달이란 시간이 순식간에 사라진 느낌입니다.

5년 만에 온 네팔입니다. 네팔을 다시 찾기 전, 2015년에 있었던 대지진 이후 도시의 많은 부분들이 바뀌어 있을 거란 걱정이 앞섰는데 네팔이란 나라는 제 기우보다 더 강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간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도시는 나날이 발전을 거듭해있더군요. 그 증거인양 새로 생긴 쇼핑몰과 맛집, 멋집들이 우후죽순 생겨나있고, 차량의 유입이 더욱 많아져 기존에는 흔치 않았던 교통체증을 심심치 않게 목격하게 됩니다. 그저 지진 붕괴로 복구 중인 문화유산들만이 지진의 흔적을 보여주고 있다고나 할까요.

 

“왜 다시 네팔에 왔어?”라는 질문을 받곤 합니다.

5년 전, 카트만두에서 1년간의 활동을 끝내고 떠났던 당시, 카트만두의 추위와 궁합이 안 맞는다며 마치 다시 안 돌아올 것처럼 떠났던 걸 기억하는 지인들이 의아해하는 거지요.

그러게요. 왜 다시 네팔이었을까. 대부분 캄보디아, 라오스와 같이 이름만 들어도 땀나는 동남아지역에서 엔지오활동을 해왔던 제가 다시 네팔이라니. 쉽게 답하지 못했던 이 질문을 해결해보고자 이 시간을 빌어 지난 한 달간의 네팔 생활을 찬찬히 뜯어봐야겠습니다.

 

왼쪽부터) 이가영 단원, 얼빠나실월 현지직원, 장미애 PM

 

두런두런 네팔 사무실로의 첫 출근 날. 새로운 장소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야한다는 긴장감에 얼굴이 얼마쯤은 굳어 있었습니다. 그런 저와, 그리고 함께 파견된 가영 단원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직원들과 빵공장 식구들, 파트너기관 협력선생님들의 하회탈을 닮은 미소였습니다. 유난히 눈이 큰 민족들로 구성된 네팔사람들의 미소여서 그런지 미세한 표정도 제 눈에는 매우 크게 보였습니다. 파트너기관 협력가가 목에 걸어준 행운을 전하는 스카프 ‘카타’를 맨 채로 많은 사람들로부터 정신없이 ‘나마스떼’라는 말을 듣고 나니 긴장했던 마음이 일순간 풀려버렸습니다. 어쩌면 ‘나마스떼’란 인사말에는 마법이라도 들어 있는 건 아닐까요. 네팔의 환대란 이토록 사람을 무장해제로 만들어버립니다. 그 첫 만남에서부터 이미 이 ‘두런두런 네팔 월드’에 흡수되어버렸다 해도 과장은 아닐 겁니다.

 

업무에 적응하는 기간, 새로운 일 앞에서 모르는 것 투성이인 우리들은 직원들이 귀찮을 정도로 물어보고 또 물어보기를 반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네팔에 오기 전, 귀찮고 성가신 어글리 한국인은 되지 말자는 각오는 이미 물 건너갔습니다. 그런데 그런 질문 공세에 그 누구하나 짜증 한 톨 섞이지 않는 표정과 말투로 답해줍니다. 뒤돌아서면 잊어먹기 일수인 제가 조금 전에 물어본 것을 다시 물어보는 민폐마저 끼치는데도 말이죠.

 

두런두런 네팔사무실은 4층으로, 같은 건물 2층에 빵공장과 제과제빵 실습장이 있습니다. 빵공장에서 풍겨 나오는 빵과 버터향이 맞이하는 곳으로의 출근이라니. 너무 근사하지 않나요? 출근하는 아침이 늘 즐거워지는 이유입니다. 사무실로 출근하면 짜잔~ 책상 위에는 빵공장에서 방금 구운 도넛과 찌아(네팔 차)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점심식사 후 노곤해질 무렵이면, 실습생들이 수업시간에 만든 결과물들인 여러 종류의 빵들을 예쁘게 접시에 담아옵니다. 현재 중급반 수업에서 배우고 있는 건 페트스리와 케이크 종류. 아무리 배가 부르다 해도 이를 어찌 거부할 수 있을까요. 그저 수업이 궁금해서 강의실 창문으로 몇 번 흘끗흘끗 본 것뿐인데, 그걸 기억한 강사님과 실습생들의 마음 씀씀이가 어찌나 예쁘던 지요.


 

<실습생들이 만든 마늘빵, 브라우니/빵공장 도넛>


이러한 빵 세례를 매일같이 온몸으로 받아내다 보니 그새 몸에 변화도 생겼습니다. 네팔 공항에서 내릴 때 입고 있었던 헐렁한 청바지가 스키니핏으로 바뀌어 있는 형국이라니. 속히 요가강습소를 알아봐야겠습니다.


‘크메르의 미소’를 닮은 파트너기관 사말 씨(가영 단원의 발견으로, 그의 미소는 앙코르와트 바이욘 사원 불상의 그것과 아주 흡사합니다), 그 어떤 궂은일도 자기 일처럼 도맡아주시는 파트너기관 해먼떠 씨, 두런두런 네팔의 첫 순간부터 사무실을 지켜온 고참 선배직원 얼빠나 씨, 아무리 바빠도 만나면 늘 합장하며 나마스떼를 외치는 빵공장 직원들, 여성들의 잠재력, 힘과 열정이 골고루 버물어진 실습장 안에서 미래를 꿈꾸는 6기 실습생들, 그리고 실습생들의 캡틴, 유능함과 유머까지 모두 겸비한 쁘라딥 강사.

나의 어설픈 네팔어 몇 마디에도 까르르 껄껄 웃어주는 이 마음 넉넉한 사람들과 향기로운 빵 내음 가득한 공간에서 함께 지내다보니, 야속할 만큼 겹겹이 쌓인 업무가 그다지 부담스럽지 않습니다.

 

<빵공장 직원들/현지협력단체 활동가 /6기 제과제빵교육 실습생& 제빵강사>

 

아! 그러네요. 저는 기억하고 있었던 겁니다. 이러한 네팔 사람들의 미소, 친절, 열정, 포용력. 네팔이 바로 이런 사람들로 포진되어 있는 나라라는 것을 말입니다. 이러한 기억들이 저를 네팔로 다시 부른 것이었던 겁니다.

제가 네팔에 다시 온 이유가 뭐냐고 물으신다면.

클린턴 캠프의 선거 구호를 빌어 그 답을 하는 것으로 글을 마칠까 합니다.

“It's the People, Stupid.(바보야, 문제는 사람이야)"

 


* 두런두런은 KOICA의 지원으로 네팔에서 '네팔 빈곤여성 소득증대를 위한 직업훈련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 2019년 3월 부터 장미애 님은 1년간 월드프렌즈 NGO 봉사단원(PM)으로서 네팔에 파견되어 '네팔 빈곤여성 소득증대를 위한 직업훈련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