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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 소개 및 소식/두런두런 in 네팔

[에세이]지진과 국경폐쇄, 다사다난한 네팔의 2015년


지진과 국경폐쇄, 다사다난한 네팔의 2015년



심우진(두런두런 이사)




네팔 지진으로 파손된 건물, 이처럼 무너지지 않은 건물들에는 지지대를 세웠지만 위태로운 상황이다.


네팔에 산 지 17년... 2015년 올해 만큼 개인적으로도, 네팔 국민에게도 이렇게 많은 어려움이 한꺼번에 닥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과거 2001년 왕실 대학살 사건(Royal Massacre) 때 한 달간 주간 통행 금지(curfew)가 내려져 상당한 생활의 불편함이 있긴 했으나 올해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다. 지난 4월 25일 발생한 진도 7.8의 강진으로 네팔에서만 약 9천명에 이르는 사망자와 16,000여명의 부상자가 발생했고, 완파되거나 반파된 가옥은 30만여채에 이르며 수백만의 이재민들이 발생하여 지금까지도 많은 어려움과 고통을 겪고 있다. 지진이 발생한 지 6개월이 지난 최근까지도 여진이 발생하고 있어 지진의 여파가 완전히 가시지 않은 상태다. 


지진은 물리적 충격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정신적 고통까지 더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재난과 충격적 사건 후에 찾아오는 '트라우마'라는 것에 대해 과연 어떤 감정일까 의아한 적이 있었는데, 재난은 재난 그 자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후에도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한 개인의 삶과 정신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경험하게 되었다. 지진 직후에는 식욕도 없어지고,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여진에 대한 공포로 밤에도 몇 번이고 깨기를 반복했다. 지진이 난 후에는 높은 건물에 올라가고, 어둡고 폐쇄된 공간에 있는 것이 매우 힘들었다. 가끔 침내나 테이블이 살짝 흔들리기만 해도 심장이 미친 듯이 뛰면서 밖으로 뛰쳐 나가곤 했다. 지진이 나던 순간, 살고 있던 아파트가 종잇장처럼 흔들리고 여기저기 물건이 엎어지고 깨질 때, 아들의 손을 잡고..이대로 죽는구나라고 느꼈던 그 때가 불현듯 떠오르면 지금도 마음이 울컥, 해진다. 


지진 이후 해외 각처에서 정부, 비정부, 민간 가리지 않고 많은 도움의 손길이 네팔로 전해져 왔다. 뿐만 아니라, 네팔인들도 자발적으로 다양한 방법을 통해 지진 피해 지역과 주민을 돕고 나섰다. 신기하게도 네팔은 강진이 발생했음에도 강도, 약탈이 발생하지 않았으며, 물건 사재기 같은 일도 볼 수가 없었다. 적극적으로 재난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으니 7이상의 강진이 두 번이나 발생했음에도 네팔은 빠르게 정상화되었다. 


그 중, 가장 반가운 소식은 신헌법이 제정된 일이다. 네팔은 1996년부터 2007년까지 11년 간 마오추종 반군(Maoist)과 정부군 사이의 내전으로 약 17,000명이 사망하는 등 큰 혼란을 겪고, 2007년 평화협정으로 내전이 종식되자 민주적 선거에 의한 의회를 수립하고, 공화제 헌법을 마련하기로 하고 2008년 제 1차 제헌위원회를 구성하게 되었다. 이후, 연방 주(federal state)의 구성에 관한 정당 간, 종족 간 견해차로 7년 동안 헌법을 제정하지 못하다가 드디어 2015년 9월 17일 네팔 신헌법이 제정되었다. 네팔은 7년여만에 신헌법을 제정함으로써 오랜만에 지진의 고통을 잊고 새로운 네팔의 미래에 대한 기대로 축제분위기가 이어졌다. 


하지만, 이것도 잠시 9월 24일 네팔 떠라이 지역에 거주하는 마데시 종족은 네팔 신헌법이 규정하는 연방제에서 자신들이 소외되었다는 이유로 인도에서 네팔 국경을 통해 들어오는 물류들이 네팔 내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시위를 벌이게 되었고, 인도 정부는 이러한 시위로 인한 운송의 안전 보장이 어렵다는 이유로 국경을 통한 네팔 내 물류 반입 금지조치를 시행하게 되었다. 바다가 없는 네팔은 해외에서 수입되는 거의 모든 물품을 인도 국경을 통해서 들여오고 있는데, 이런 조치가 시행되면서 당장 가스나 유류 부족으로 오토바이, 차량 운행이 어려워졌다. 지금 민간 차량은 아예 주유소에서 기름을 받을 수가 없다. 더사인 최대 명절 전에 한시적으로 기름을 공급해 준다 하여, 우리 차도 주유 행렬에 서서 꼬박 40시간 기다린 후에 겨우 10리터를 공급받을 수 있었다. 사정이 이러하다보니 차량은 매우 긴급한 용무가 있을 때만 운행하고, 보통은 걸어다니거나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서 생활하고 있다. 또한, 가스가 부족하다보니 식당 등도 대부분 영업을 중단했고, 비축 가스가 있는 식당도 가스 사용이 많지 않은 메뉴로만 제한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상황이다. 




2015/9/27 The Himalayan, Nepal Oil Corporation enforces rationing of fuel

Bikes and vehicles queue up at the Ripumardini petrol pump, run by Nepal Army, at Bhadrakali, Kathmandu on Sunday, Septembe


이러한 사태에 규탄을 하고 물품 사재기를 하고 국가기능이 마비될법도 한데 네팔에서는 지진 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러하고 폭동을 일으키거나, 사재기를 하는 일도 없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냥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살아간다. 지진과 물류반입 금지조치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네팔 사람들이 위기를 대처하는 자세는 현실을 부정하거나 거스르지 않고, 잠잠히 그 시간을 살아내는 데 있는 것 같다. 이런 사람들과 오랜 시간 같이 살아서일까, 이젠 나도 이런 상황에 그리 답답하거나 짜증이 나지 않으니 말이다. 


  • 헤라 2015.11.03 10:33

    네팔 생활의 어려움과 네팔인의 정신이 절절히 느껴지네요. 심 이사님을 비롯한 네팔에 거주하시는 모든 분들께 신의 가호가 있기를 기원합니다.

  • 헤라 2015.11.03 10:33

    네팔 생활의 어려움과 네팔인의 정신이 절절히 느껴지네요. 심 이사님을 비롯한 네팔에 거주하시는 모든 분들께 신의 가호가 있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