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브리프/특별기획] 한국의 성평등 민주주의 실현과 성 주류화 전망

2025-09-23


한국의 성평등 민주주의 실현과 성 주류화 전망

- 국제개발협력 ODA를 위한 제언


김경희(성공회대 외래교수)



한국의 민주주의는 군사정부, 권위주의 정권에 맞서 국민의 정치적 자유를 보장하고 민주주의를 확립해 오는 과정이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민주주의 역사 속에서 성평등은 존재하지 않거나 미미한 상태로 유지되는 수준이었다.1)   여성단체들은 성평등 없는 민주주의는 진정한 민주주의라고 볼 수 없다고 주장해 왔다. 민주주의의 핵심은 모든 시민이 평등하게 존중 받고 권리를 누리는 것인데, 성평등이 없는 사회에서는 여성을 포함한 소수집단이 차별 받고 사회 경제적으로 불평등한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이는 민주주의의 기본원칙인 평등과 자유의 실현을 심각하게 해치는 것이다. 


한국을 성평등한 사회로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독립적인 행정부처로 여성부의 신설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었고, 2001년에 여성정책을 총괄하는 여성부가 탄생하게 되었다. 여성부의 설립목적은 여성의 권익 증진과 지위 향상에 관련된 정책을 기획하고 종합하며, 가정폭력과 성폭력 방지 및 피해자 보호 등 여성과 관련한 다양한 문제를 국가 차원에서 체계적으로 다루는데 있었다.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여성부는 여성가족부(2005년)로 확대 개편되었다가 여성부(2008년)로 축소되었고 다시 여성가족부(2010년)로 바뀌면서 지금까지 운영되고 있다. 


국제사회는 여성만을 대상으로 하는 여성정책이 남성 중심 사회에서 형성된 성 차별적인 관행과 제도를 변화시키는데 한계가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성별 관계를 변화시키는 성평등 정책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1995년 베이징에서 열린 UN 세계여성대회에서는 성평등 사회 실현을 위한 전략으로 성 주류화를 행동강령으로 채택하기도 하였다. 한국은 UN 회원국가로서 공공정책의 성평등 향상을 위해 2005년부터 성 주류화 정책을 도입하였다.


한국의 성 주류화는 성별영향평가와 성인지 예산, 성인지 통계, 성인지 교육을 주요한 정책 도구로 삼아 운영되어 왔다. 성 주류화는 성평등 사회를 실현하기 위해 일반 정책에 성인지 관점을 적용하여 성 중립적인 정책을 성평등한 방향으로 개선하기 위한 전략이다.2) 우리나라 뿐 아니라 독일, 프랑스, 호주 등 많은 나라에서 성 주류화 정책을 운영하고 있는데 한국은 성별영향평가 중심으로 성주류화 정책을 실행하고 있다. 성별영향평가제도의 주관부처는 여성가족부이고 이 부처에는 성별영향평가과가 있는데 독립된 성별영향평가법에 기초해서 이 제도가 운영되고 있다. 성인지 예산의 주관부처는 기획재정부(성인지 예·결산서 작성 등)와 여성가족부(성인지 예산 교육 등)이고, 성인지 통계의 주관부처는 통계청(성인지 통계 생산 등)과 여성가족부(성인지 통계 교육 등)이다. 따라서 4개의 성 주류화 정책 도구가 운영되도록 총괄하면서 지원하는 행정기관이 여성가족부인 것이다. 


성 주류화가 모든 영역에 성평등(성인지) 관점을 반영해서 공공정책을 변화시키기 위한 정책이라고 할 때, 성평등 관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실제로 성평등이란 개념은 추상적이고 모호하기도 하다. 여성가족부는 성 주류화 정책을 정부기관이 실행할 때 활용할 수 있도록 추상적인 성평등 개념을 다소 구체화시킨 내용을 제시하였다. 2025년에 여성가족부가 발간한 ‘성별영향평가 지침’에는 성평등 목표의 세부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공정하고 성평등한 노동환경 조성, 모두를 위한 돌봄 안전망 구축, 폭력 피해 지원 및 성인지적 건강권 보장, 성평등 문화확산, 성평등 정책 기반 강화 등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성평등 목표가 실현되려면 상당 기간이 필요할 것 같아 보인다. 먼저, 한국의 남녀 임금격차는 매우 큰 편으로 대부분의 여성들은 성 불평등한 노동환경에서 일하고 있다. 2022년 기준, 한국의 성별임금격차는 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아 남성 임금의 69.8% 만을 여성들이 받고 있다. 이러한 수치는 OECD 회원국의 남녀 임금격차 평균이 12.1%인 것과 비교할 때 무려 2.6배나 된다.3)




OECD 국가별 성별 임금격차(단위 : %)



한국 정부는 성별임금격차를 포함해 여성들이 겪는 고용에서의 성차별을 줄이겠다고 했지만 여성들이 체감하는 고용에서의 성평등 변화는 느리다. 성별임금격차를 줄이기 위해서는 많은 개선이 동반되어야 한다. 일·생활 균형 확대는 성평등한 노동환경을 조성하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하며 성평등 문화 확산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여성단체 활동가들은 지속적으로 다양한 영역에서 나타나는 성불평등을 줄이기 위한 방안을 정부에 요구해 왔고 성 주류화 정책이 점진적으로 확대되어 실행된 것은 여성운동의 결과물이다. 따라서 성 주류화는 민관협력의 거버넌스에 기초를 두고 있으며 사회 전반에 만연해 있는 전통적인 성별분업의 관행, 성별 차이를 성차별로 전환시키는 메커니즘, 여성들이 하는 일을 평가절하하고 그것을 합리화시키는 조직문화와 남성 중심의 사회구조 전반을 변화시키는 변혁에 가까운 전략이기도 하다. 그러나 아직까지 한국의 성 주류화 정책은 정부가 수행하는 사업의 일부만을 변화시키는데 머물러 있을 뿐이다. 최근까지 여성단체들은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공공정책을 성평등 관점에서 분석하고 그 분석 결과를 정책 개선에 반영함으로써 여성의 삶을 둘러싼 많은 제도와 관행, 문화를 성평등 방향으로 변화시킬 것을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한국은 지난 몇십 년간 빠른 경제성장을 이루어 냈고 시민이 주도하는 민주주의를 성장시켜 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와 함께 한국의 성평등 정책은 성 주류화를 포함해서 제도의 측면에서 선진적으로 발전되어 온 것으로 알려져 왔다. UN을 포함한 국제기구에서는 한국이 경제발전과 시민사회가 만들어 온 민주주의 성장, 성평등 정책을 개발하면서 축적한 노하우를 개발도상국과 공유할 것을 기대하고 있다.


공적개발원조(ODA)에서 활용되고 있는 성평등 정책 마커(젠더 마커)는 OECD 개발원조위원회(DAC) 회원국이 모든 ODA 사업에 성평등 관점 반영 여부를 표시하도록 의무화한 통계 도구이다. 젠더마커 2(직접목적, principal)는 성평등이 프로젝트의 핵심 목표이거나 명백한 목적일 경우에 적용된다. 또한 젠더마커 1(간접목적, significant)은 성평등이 사업의 직접적인 착수 사유는 아니지만, 중요하고 의도적으로 사업 내 성평등 달성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판단될 때 지정된다. 젠더마커 0(비대상, Not targeted)은 사업 설계 및 시행과정에서 성평등 목표가 주요 요소로 작용하지 않은 경우이다. 젠더마커를 기준으로 한국은 지난 10년간 성평등 및 여성 권한 강화를 위한 ODA 사업(젠더마커 1과 2에 해당하는 ODA사업) 규모를 확대해 왔으나, 전체 ODA 사업 대비 지원 비율은 OECD DAC 회원국 중 낮은 편이다. 무엇보다 한국의 성평등 ODA 규모는 2019년 이후 크게 확대되었으나, 성평등 달성을 직접목적으로 하는 젠더마커 2 사업 규모는 2021년(7%, 1억 4,241만 달러)을 제외하면 1억 달러 미만으로, 전체의 4% 이내에 불과하다. 반면에 국제개발원조에서 성평등 목적성을 가진 사업의 지원 비중은 지난 10여년간 지속적으로 증가해 왔다. 실제로 성평등 목표를 가진 ODA 규모 및 비중을 살펴보면, 2023년 고정가격 기준, DAC 회원의 양자 배분 가능 ODA 공약액 2년 평균이 2010-2011년에 28%였는데 2022-2023년에는 크게 증개해서 46%인 것으로 나타나 있다. 



* 단위: 10억 미국 달러(2023년 물가 기준), 개발원조위원회(DAC) 회원국의 양자 배분 가능 ODA 공약, 2년 평균


성평등 목표를 포함한 공적개발원조(ODA)의 규모 및 비율



성 주류화는 국제사회에서 성평등을 위한 범분야(cross-cutting) 이슈로 인식되며 강조되어 왔다. 특히 SDGs(지속가능목표) 5번 ‘성평등’ 달성을 위해 성 주류화는 중요한 전략으로 추진되고 있다. 한국도 2010년에 「국제개발협력기본법」을 제정하면서 성평등이 국제개발원조에서 실현되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같은 법 제3조(기본정신 및 목표)는 “국제개발협력은 개발도상국의 빈곤감소, 여성과 아동의 인권 향상 및 성평등 실현, 지속가능한 발전 및 인도주의를 실현하고 협력대상국과의 경제협력관계를 증진하며 국제사회의 평화와 번영을 추구하는 것을 기본정신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성평등 민주주의는 한국뿐 아니라 개발도상국에서 실현되어야 할 핵심 가치이고 성차별 해소는 민주주의 성장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개발도상국에서는 성평등이 빈곤 감축, 경제성장, 사회적 포용성 강화를 위해 필수적이며 남녀 모두에게 평등한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그 나라의 발전과 직접 연결되어 있다. 한국이 지난 20년간 운영하면서 축적한 성별영향평가와 분석기법, 추진절차와 추진체계 등에 관한 경험과 지식은 개발도상국이 성 주류화를 통해 여성의 참여와 역량을 강화하고 젠더폭력을 감소시켜 그 나라의 성평등 민주주의 성장과 지속가능한 발전의 토대를 마련하는데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각주]

1) 문지영(2023), “젠더민주주의의 도전과 한국 민주주의의 새로운 가능성” 정치사상적 탐색“, [사회과학 연구] 제31집 1호 

2) 김경희 외(2015), [성 주류화 기반 정책 평가제도의 성평등 효과 제고를 위한 연구], 한국여성정책연 구원

3) 통계청(2024),  [한국의 SDG  이행보고서 2024],  p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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