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브리프/특별기획] 베이징행동강령 도입 30주년을 기념하며 - 의미, 성과와 도전과제

2025-04-28


베이징행동강령 도입 30주년을 기념하여 – 의미, 성과와 도전과제

 

오경진(한국여성단체연합 국제연대센터 부센터장)1)

 

지난 2025년 3월 10일부터 21일까지 뉴욕 유엔본부에서 제69차 유엔 여성지위위원회(UN Commission on the Status of Women, CSW)가 열렸다. CSW는 유엔 회원국, 유엔기구 및 NGO가 함께 모여 여성인권과 성평등에 관한 글로벌 기준과 정책을 수립하고, 회원국들의 이행 상황을 평가하는 글로벌 플랫폼으로써, 1947년 유엔 내 창립 이후 지금까지 수많은 글로벌 여성인권규범 논의를 이끌어내는 핵심 역할을 해 왔다. 올해 제69차 회의에서는 베이징행동강령(Beijing Platform for Action, 1995)2) 도입 30주년을 기념하여 지난 5년간의 이행 성과와 도전과제를 살펴보고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 논의하였다.3)

 

베이징행동강령이란?

베이징행동강령은 1995년 베이징에서 열린 제4차 세계여성대회에서 189개국 정부의 만장일치로 통과된 글로벌 여성인권규범이다. 제4차 세계여성대회는 189개 국가에서 1만 7천여 명이 참석한, 그 당시 유엔 회의 역사상 최대 규모의 회의였다고 알려져 있다. 당시 NGO포럼이 열린 베이징 인근의 후아이료에서는 3만 명이 넘는 참가자들이 모였다고 전해진다. 이 회의에서 도입된 베이징행동강령은 글로벌 차원에서 여성인권과 성평등에 관한 가장 중요하고 포괄적인 진전이자, 현재까지도 가장 진보적이고 체계적인 국제 여성인권규범으로 평가받고 있다. 베이징행동강령은 여성과 빈곤, 건강, 교육, 훈련, 폭력 등 12개 주요 관심 분야(12 Critical Areas of Concern: 여성과 빈곤, 여성과 교육·훈련, 여성과 건강, 여성에 대한 폭력, 여성과 무력분쟁, 여성과 경제, 권력 및 의사결정과 여성, 여성의 지위향상을 위한 제도적 장치, 여성인권, 여성과 미디어, 여성과 환경, 여아)에서 구체적인 권고안과 국가의 관련 책무 등을 다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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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UN(1995), 제4차 세계여성대회 광경 


CSW 창립 이후 글로벌 여성인권 담론에 관한 50여 년간의 법적, 정치적인 진전을 총망라한 베이징행동강령에는 국가 및 국제기구의 모든 정책과 프로그램에서 성평등과 여성의 임파워먼트를 중요하게 고려할 것을 요구하는 ‘성주류화(gender mainstreaming)'전략이 명시되어 있다. 성주류화는 그동안의 여성정책과 제도가 여성을 모성보호, 폭력 예방 등의 특정 분야의 수혜자로 한정하며 성불평등의 근본 구조를 제대로 다루지 못했던 시각에서 벗어나, 모든 정책과 제도에서 여성의 경험 및 여성에게 미치는 영향을 반영하여 성평등 관점에서 정책을 기획·이행·점검하도록 하는 주요한 정책도구이다. 성주류화 전략은 이후 한국을 포함하여 전 세계의 성평등 정책과 관련 기구를 수립·발전시키는데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

베이징행동강령의 이행점검은 풀뿌리와 국가, 대륙(regional), 글로벌 차원에서 국가정부, 유엔기구, 시민사회가 함께하는 다각적이고 상호교차적인 프로세스이다. 1995년 베이징행동강령 도입 이후 매 5년마다 국가정부는 베이징행동강령 이행을 위해 도입한 정책과 법·제도 및 그 이행 현황을 담은 국가보고서를 유엔에 제출해야 하며, 시민사회는 해당 정부의 베이징행동강령 이행 상황을 NGO 관점에서 평가하는 독립적인 보고서를 유엔에 제출할 수 있다. 또한 아시아·태평양,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등 대륙별 베이징행동강령의 이행 상황을 평가하는 정부 간 회의와 시민사회포럼이 개최된다. 그 이후 국별·대륙별 이행현황 평가 결과를 참고하여 최종적으로 CSW회의에서 유엔 회원국, 유엔기구, 전문가, 시민사회가 모여, 베이징행동강령에 관한 글로벌 이행 성과와 도전과제를 점검하고, 앞으로의 진전을 위한 전략을 논의한다. 한국 정부도 2024년 하반기 베이징행동강령 이행점검 보고서4)를 제출하였으며, 아시아·태평양 차원의 베이징행동강령 이행점검 시민사회포럼과 정부 간 회의는 각각 2024년 11월 17일~18일, 11월 19일~21일에 개최되었다. 현재 한국여성단체연합은 한국정부의 지난 5년간 베이징행동강령 이행 상황에 대한 시민사회 관점의 평가와 도전과제를 담은 NGO보고서를 준비하고 있으며, 보고서 작성이 완료되는 올해 하반기에 관련 토론회를 개최할 예정이다.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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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UN ESCAP, 베이징행동강령 30주년 점검 글로벌 프로세스


베이징행동강령 도입 30주년, 국제사회는 어떻게 평가했나?

제69차 CSW회의를 앞두고 발간된 ‘베이징행동강령 이행 평가에 관한 유엔 사무총장 보고서’6)를 통해 2025년 현재 글로벌 차원의 베이징행동강령 이행 현황과 도전과제, 유엔의 제안을 살펴볼 수 있다. 보고서는 ‘1) 포용적인 발전, 상호 번영과 일다운 일(decent work), 2) 빈곤 근절, 사회적 보호와 사회서비스, 3) 폭력, 낙인과 고정관념으로부터의 해방, 4) 참여, 책무성, 젠더를 반영하는 기관·시스템, 5) 평화롭고 포용적인 사회, 6) 환경보전, 기후행동 및 회복력 기르기’라는 여섯 개의 틀에 맞추어 지난 5년간 글로벌 차원의 이행성과와 도전과제를 평가하고 있다. 여기에서는 총평에 해당하는 주요 분석과 제안을 중심으로 요약하여 소개하고자 한다.

- 글로벌 차원에서 성평등을 둘러싼 새로운 도전적인 환경 외에도, 여전히 고질적으로 존재하는 성차별적인 법과 제도, 가부장적인 규범과 성별 고정관념 등은 베이징행동강령 이행의 진전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음. 특히 가족법에서 차별적인 조항을 삭제하기 위한 입법 개혁은 이미 오래전에 이루어졌어야 함. 정부가 법과 제도를 도입하더라도 자원과 정치적 의지가 충분하지 못하여 진전을 만들지 못하고 있는 사례가 많음.

- 베이징행동강령의 이행을 추동할 수 있는 강력한 국가 성평등 기구의 부재, 정책결정자의 책무성 부족으로 인하여 베이징행동강령 목표 달성이 어려움을 겪고 있음. 특히, 국가 성평등 기구와 같은 성평등 정책을 이행하는 주요 기구와 시스템이 지난 몇 년간 약화되었고, 기구의 목적이 변동되거나 예산 부족 등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음. 특히, 민주주의 후퇴의 맥락에서 참여 절차와 모니터링 메커니즘의 약화는 여성시민단체가 정책결정자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역량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함. 국가는 국가 성평등 기구를 시급히 검토하고 강화하며, 지속가능한 자금을 우선적으로 배정하여 이들이 제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해야 함. 또한 국가는 성평등과 여성인권에 대한 책무과 대응을 보장하기 위하여, 여성시민단체의 참여를 포함한 포용적이고 민주적인 절차를 강화해야 함.

- 국가는 실사 원칙(due diligence principles)에 따라 민간 부문에 대한 규제 체계를 강화하여 민간 부문 이해관계자들이 여성과 소녀의 인권을 존중하고 증진하며 이행할 수 있도록 추동해야 함. 또한 국가는 비교 가능한 현황 데이터와 다중적이고 교차하는 불평등을 측정할 수 있는 세분화된 데이터의 가용성에 중점을 두고 성별분리통계를 정기적으로 생산하기 위하여 통계 역량에 대한 투자를 늘려야 함.

- 각국은 공적개발원조(ODA)뿐만 아니라 누진세 제도 등을 통해 성평등을 위해 더 많은 국내 및 국제 자원을 동원하기 위한 노력을 시급히 강화해야 함. 이러한 노력에는 성평등에 대한 공공 투자를 늘리기 위한 재정 및 통화 정책의 방향 전환과 체계적인 성인지예산의 활용을 통해 예산 배분을 모니터링하는 것이 포함될 것임. 보편적이고 성인지적인 사회보호 시스템과 공공 서비스에 대한 공공 투자는 불평등을 줄이고 모든 여성과 소녀들에게 의미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데 매우 중요함.

- 모든 선진국은 최빈국에 대한 공약을 포함하여 ODA 공약을 이행하는 동시에 모든 분야에 걸쳐 성평등에 더욱 집중하고 관심을 기울여야 함. UN의 ‘성평등 가속화 계획(Gender Equality Acceleration Plan, GEAP)’7)에서 구상한 바와 같이, 유엔 시스템 내 기구들은 성평등을 주요 목표(principal objective)로 하는 모든 프로그램에 대한 지출을 점진적으로 최소 15%까지 늘리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함. 국제 금융기관은 여성과 소녀의 인권 증진, 보호 및 이행에 대한 책무를 이행해야 함.
- 모든 국가의 여성과 소녀들이 기술 발전의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개발 격차를 해소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임. 기술의 잠재력을 활용하여 여성과 소녀들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국가는 디지털 격차를 해소하고 성인지적 디지털 전환을 시행하기 위한 노력에서 성평등을 우선시하고, 젠더 분석, 성평등 목표 및 성별 분리된 데이터 수집을 디지털 정책에 체계적으로 통합해야 함. 또한 국가는 디지털 시대에 책임과 인권을 강화해야 함. 국가는 기술로 인한 젠더 기반 폭력의 위험, 프라이버시 권리에 대한 위협, 인공지능의 편견 등 성평등을 위한 기술의 위험에 대처하기 위한 법률, 정책 및 규제를 시행해야 함.

- 국가는 위기 대응에서 얻은 교훈을 통합하고 국가 성평등 기구와 위기 대응을 담당하는 기관 간의 조정을 발전시켜 통합적인 접근 방식을 보장해야 함. 국가는 인도주의적 대응의 맥락에서 성평등에 대한 포괄적이고 통합적인 접근 방식을 우선시해야 함.

 

20세기 글로벌 여성인권규범의 진전을 총망라한 베이징행동강령

앞서 언급했듯이, 1995년 베이징행동강령은 유엔 내 글로벌 여성인권 규범의 발전을 위해 치열하게 노력했던 수많은 페미니스트들과 여성활동가들의 빛나는 성과물이다. 이들의 노력 덕분에 1948년 도입되었던 세계인권선언문(Universal Declaration of Human Rights)에는 여성을 포괄하는 인류에 관한 보편적 언어가 담겼으며, 1967년에는 ‘여성에 대한 차별철폐 선언(Declaration on the Elimination of Discrimination Against Women)’이 유엔에서 채택되었다. 이 선언은 곧 1979년 ‘여성에 대한 모든 형태의 차별철폐에 관한 협약(Convention on the Elimination of All Forms of Discrimination Against Women, CEDAW)'이라는 유엔인권 규약의 한 형태로 완성되었다. 1975년 유엔은 ‘세계여성의 해(International Women's Year)’를 선포하였으며, 이에 따라 '제1차 세계여성대회(the 1st World Conferences on Women)'가 같은 해 멕시코시티에서 열렸다.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 초반까지 글로벌 페미니스트 및 활동가들은 특히 ‘여성에 대한 폭력(violence against women)’의 공적 의제화에 힘썼다. 여성에 대한 폭력이 개인 간 사적인 문제로만 치부되며 사회적으로 해결해야 할 ‘인권’의 문제로 포함되지 않았던 그 당시 ‘여성에 대한 폭력 근절은 공적 의제이자 여성의 필수적인 인권’이라는 점을 국제사회에 끈질기게 외친 페미니스트 운동의 결과로, 1993년 ‘여성에 대한 폭력 철폐에 관한 선언문(Declaration on the Elimination of Violence against Women)’이 유엔총회에서 채택되었다. 또한 비엔나세계인권회의(1994), 인구개발회의(1994), 리우환경개발회의(1992) 등 1990년대 주요한 국제회의들에서도 여성인권과 성평등 의제가 주요하게 논의되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마침내 1995년 탄생한 베이징행동강령은 유엔규범과 글로벌 논의의 장에서 성평등을 가장 체계적으로 의제화한 문서이자, 당시 글로벌여성인권 규범 진전의 역사를 만들기 위해 수십 년 간 노력해 왔던 페미니스트 활동가들의 성평등 실현에 대한 벅찬 열망과 포부, 희망을 잘 반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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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 필자 촬영(2025), 제69차 CSW회의 광경(뉴욕 유엔본부)


수많은 글로벌 도전과제 속에서도 성평등 진전을 위한 노력은 계속되어야

베이징행동강령이 도입된 지 30년이 지난 2025년 현재, 우리는 글로벌 차원의 수많은 위기와 도전과제를 마주하고 있다. 세계 각 지역에서 일어나는 무력갈등의 심화, 민주주의 위기, 미국의 여성인권 정책 퇴행과 관련 예산의 대규모 삭감, 다자주의의 후퇴, 세계 전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백래시와 극우세력의 부상 등이 그 예이다. 이러한 상황에 따라 글로벌 논의에서 여성인권, 성평등과 같은 보편가치가 타협 불가능한 영역으로 치부되거나 후순위 의제로 밀리고 있고, 30년 전에 도입된 베이징행동강령을 넘어서는, 더욱 진보적인 글로벌 여성인권규범이나 정책문서에 대해 각국 정부들이 합의를 도출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베이징행동강령의 실질적인 이행을 위해서는 글로벌 성불평등의 구조적 원인을 이루는 요소들인 자본주의, 군사주의, 식민주의, 권위주의 등에 대한 교차적 분석과 이를 해결하기 위한 근본적 대책이 글로벌 논의에서 더욱 적극적으로 논의되어야 하며, 국가와 국제기구 차원의 강력한 정치적 의지와 실질적인 이행 메커니즘이 필요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지난 수십 년간 글로벌 여성인권 규범 발전을 이끌었던 장소인 CSW를 더욱 강하고 진보적인 글로벌 플랫폼으로 재정의하는 과정이 필요하며, 풀뿌리와 지역, 국가와 글로벌 차원에서 고군분투하며 변화를 만들고 있는 진보적인 여성단체들이 CSW회의 의제를 주도적으로 형성하고 의사 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이들의 의미 있고 광범위한 참여가 더욱 보장되어야 할 것이다.

베이징행동강령의 도입이 이루어진 1995년 당시 글로벌 여성인권의 진전에 대한 열망과 포부, 희망에 비하면, 30년이 지난 현재는 당시 예상하지 못한 수많은 도전과제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우리 시민사회 활동가들은 이러한 상황에 좌절하지 않고 더욱 적극적이고 끈질기게 글로벌 논의의 장에 개입하여, 더디더라도 지속적으로 국제규범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보편적 성평등 가치의 주류화를 이끌어내는 것이 앞으로의 과제일 것이다.



[각주]

1) 필자는 여성단체 활동가로, 베이징행동강령, 유엔 여성차별철폐협약 등 글로벌 여성인권규범에 대한 한국정부 이행 현황을 평가하고 실질적 이행을 위한 정부의 정책을 제안·요구하는 한국 시민사회 에드보커시 활동을 담당해 왔다.

2) 베이징행동강령 전문: https://www.un.org/womenwatch/daw/beijing/pdf/BDPfA%20E.pdf

3) <한국여성단체연합 이슈리포트 젠더 잇:다 2025년 4월호>에서 필자의 제69차 CSW 참가 기고문을 살펴볼 수 있다. https://women21.or.kr/policy/27326

4) https://www.unwomen.org/sites/default/files/2024-09/b30_report_rok_en.pdf

5) 관련 정보는 추후 <한국여성단체연합> 홈페이지(women21.or.kr)을 통해 얻을 수 있다.

6) https://docs.un.org/E/CN.6/2025/3

7) https://www.un.org/en/gender-equality-acceleration-pl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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