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영화 「라이스보이 슬립스」
‘인간’ 소영의 삶을 채운 겹겹의 차별
이민희 컨선월드와이드 대리
[그림 1] 라이스보이 슬립스, 다음영화
들어가며
봄의 기세가 완연히 피어나던 지난 5월 초, DAK젠더분과위원회에서는 아주 오랜만에 오프라인 미팅을 진행했습니다. 대학가 근처 극장에서 영화를 감상하며 소감을 나눴는데요, 여러 선생님들과 함께 나눈 이야기들 중에 젠더브리프에 어울리는 꼭지를 담아 보았습니다.
시놉시스소영은 미혼모는 출생 신고를 할 수 없는 한국의 상황 때문에 아들 동현과 캐나다에 이민한다. 고군분투하며 캐나다 생활에 적응하던 모자는 갑자기 날아든 소식에 한국으로 돌아간다. 출처: 구글 '라이스보이 슬립스' 정보 |
2007년 호주제 폐지 이전의 여성들은 자신이 낳은 아이일지라도 남편이나 남자 형제가 없다면 출생 신고를 하지 못했다. 고아로 자란 소영의 호적은 누군가의 이름 아래 실리지도 않았기에 고국에서는 내내 떠돌이였고, 그런 떠돌이는 더더욱 ‘법적인 아이’를 둘 수 없던 형편이었다. 죽어버린 남편에 대한 원망이 채 쌓이기도 전에, 소영은 다른 나라로 떠밀리듯 이민한다.
안소니 심 감독은 영화의 제작기에서 “1990년대에 이민자로 자란 경험을 언젠가 영화로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항상 해왔다. 예전에는 이민자들에 대한 공감대가 부족했던 것 같다. 나라는 사람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만드는 기반이 완전히 사라진 환경에서 살아야 하는 사람들은 심리적, 정서적으로 트라우마를 느낄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단다. 생득적인 외형과 같은 문화권을 공유한다는 당연한 환경이, 이민자를 향한 차별 앞에서 우리에게 얼마나 안전한 울타리였는가를 생각해 보았다.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하거나 철마다 김치를 담그고, 부자가 목욕탕에서 등을 밀어주며 따뜻한 밥상 위의 된장찌개를 떠올리는 일 따위가 당연한 삶. 그러나 새로운 땅에서는 언어를 비롯해 먹는 음식과 모든 생활양식을 전부 다시 익혀야 하는 낯선 시간의 연속이었다. 공장 한편 구석에서 싸 온 점심 도시락을 홀로 삼키는 소영은 국적도 알 수 없는 동양인 여자였다. 게다가 남성 동료들은 그의 신체를 거침없이 더듬고 그것을 질 나쁜 농담쯤으로 여긴다.
동현은 학교에서 ‘쌀 먹는 아이 라이스 보이’라고 놀림을 받는다. 바쁜 엄마가 시간을 쪼개 싸준 김밥은 냄새나는 괴식으로 놀림 받으며 그대로 버려진다. 소영의 평소 가르침대로, 어느 날 동현은 같은 반 아이들의 따돌림을 참지 못하고 맞서다 또래 아이에게 폭력을 쓰고 만다. 소영을 학교로 부른 교장은 정학 처분을 안내하고, 소영의 항변인종차별에 맞선 아들의 정당방위 에도 폭력은 안 된다며 결정을 번복하지 않는다. 학교는 일하는 엄마의 사정을 봐주지 않았고, 가정형편은 남편과 의논할 일이지 학교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없다고 오히려 소영을 나무란다. 차별을 피해 정착한 땅에서 조차 미혼모라서 겪는 설움이 덧씌워질 뿐이었다.
몸이 아픈 소영은 동현의 또 다른 가족을 찾아 한국을 찾는다. 기억을 더듬어 방문한 시댁에서 만난 시어머니의 환영인사는 매섭기만 하다. 아들 잡아먹은 며느리가 결코 눈에 찰 일이 없는 것이다. 같은 여성이니 마음을 쉽게 헤아릴 것이라는 판단은 유보된다. 생각보다 많은 여성이 결혼과 출산 후 시댁을 챙기느라 곤란했던 일이나 육아하며 지친 마음을 잊은 듯, 다른 여성을 차별하기도 한다. 마치 우리네 할머니 세대가 시집살이에서 겪은 부당함과 억울함을 당신도 인지하지 못한 사이 어머니들에게도 내리 물림 하며 스스로 갚아 나갔던 것처럼. 남편의 이른 죽음 탓에 힘겹게 가정을 일구어 나갔을 엄마 소영은, 같은 엄마인 시어머니에게는 오히려 이해받지 못했다.
소영의 삶은 이렇듯 미혼모, 동양인 이주노동자, 워킹맘, 며느리라는 차별의 역할들로 채워진다. 당당히 삶을 살아가는 태도에도 불구하고, 사회는 ‘인간’ 소영을 계속해서 어떤 역할과 상태로 정의하며 원하지 않는 겹겹의 차별을 덧씌운다. 영화가 끝나면 소영의 삶에 안쓰러움을 느끼다가도 동시에 사회를 향한 부당함에 분노가 피어난다. 소영이 태어났던 그 시절부터 지금까지 여전한 사회 속 갈등을 떠올리면 그런 분노는 어쩌면 조금 익숙한 것처럼 느껴졌다.
내가 누린 당연함은 사실 그것이 당연하지 않았던 시절에 태동한 분노와 그것이 끌어낸 수많은 약속 위에 세워졌다는 사실을 곱씹는다. 삶의 배경이 다르면 무지각하게 차별을 당하던 이민자의 삶과 특정 성에 씌워진 사회의 굴레들도 다름을 이해하기 위한 오랜 투쟁과 사회적 합의 결과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우리 사회 속에는 여전히 우리가 채 자각하지도 못하는 차별과 부당함이 도사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람들이 어울려 살아가는 사회는 응당 조화로운 삶을 목표로 나아가고 있고, 이를 위한 우리의 노력이 계속해서 필요하다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주변을 둘러보고 함부로 판단하지 말자. 당연함의 이면에 숨어있는 이야기를 살펴보아야겠다.
참고문헌
- 민용준, 보그코리아(2023. 04. 24.), “‘라이스보이 슬립스’ 홀로 떠오른 삶, 함께 저무는 꿈”
- 조현나, 씨네21(2023.04.20.), [인터뷰] '라이스보이 슬립스' 앤서니 심 감독, "한국인의 정체성은 가족과 함께하는 식사에 있다"
- 송경원, 씨네21(2022.10.11.), BIFF 6호 [화보] <라이스보이 슬립스>&<리턴 투 서울> 오픈토크 현장 “아시아계 이민자의 이야기는 더 많아져야 한다.”
영화리뷰
영화 「라이스보이 슬립스」
‘인간’ 소영의 삶을 채운 겹겹의 차별
이민희 컨선월드와이드 대리
[그림 1] 라이스보이 슬립스, 다음영화
들어가며
봄의 기세가 완연히 피어나던 지난 5월 초, DAK젠더분과위원회에서는 아주 오랜만에 오프라인 미팅을 진행했습니다. 대학가 근처 극장에서 영화를 감상하며 소감을 나눴는데요, 여러 선생님들과 함께 나눈 이야기들 중에 젠더브리프에 어울리는 꼭지를 담아 보았습니다.
2007년 호주제 폐지 이전의 여성들은 자신이 낳은 아이일지라도 남편이나 남자 형제가 없다면 출생 신고를 하지 못했다. 고아로 자란 소영의 호적은 누군가의 이름 아래 실리지도 않았기에 고국에서는 내내 떠돌이였고, 그런 떠돌이는 더더욱 ‘법적인 아이’를 둘 수 없던 형편이었다. 죽어버린 남편에 대한 원망이 채 쌓이기도 전에, 소영은 다른 나라로 떠밀리듯 이민한다.
안소니 심 감독은 영화의 제작기에서 “1990년대에 이민자로 자란 경험을 언젠가 영화로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항상 해왔다. 예전에는 이민자들에 대한 공감대가 부족했던 것 같다. 나라는 사람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만드는 기반이 완전히 사라진 환경에서 살아야 하는 사람들은 심리적, 정서적으로 트라우마를 느낄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단다. 생득적인 외형과 같은 문화권을 공유한다는 당연한 환경이, 이민자를 향한 차별 앞에서 우리에게 얼마나 안전한 울타리였는가를 생각해 보았다.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하거나 철마다 김치를 담그고, 부자가 목욕탕에서 등을 밀어주며 따뜻한 밥상 위의 된장찌개를 떠올리는 일 따위가 당연한 삶. 그러나 새로운 땅에서는 언어를 비롯해 먹는 음식과 모든 생활양식을 전부 다시 익혀야 하는 낯선 시간의 연속이었다. 공장 한편 구석에서 싸 온 점심 도시락을 홀로 삼키는 소영은 국적도 알 수 없는 동양인 여자였다. 게다가 남성 동료들은 그의 신체를 거침없이 더듬고 그것을 질 나쁜 농담쯤으로 여긴다.
동현은 학교에서 ‘쌀 먹는 아이 라이스 보이’라고 놀림을 받는다. 바쁜 엄마가 시간을 쪼개 싸준 김밥은 냄새나는 괴식으로 놀림 받으며 그대로 버려진다. 소영의 평소 가르침대로, 어느 날 동현은 같은 반 아이들의 따돌림을 참지 못하고 맞서다 또래 아이에게 폭력을 쓰고 만다. 소영을 학교로 부른 교장은 정학 처분을 안내하고, 소영의 항변인종차별에 맞선 아들의 정당방위 에도 폭력은 안 된다며 결정을 번복하지 않는다. 학교는 일하는 엄마의 사정을 봐주지 않았고, 가정형편은 남편과 의논할 일이지 학교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없다고 오히려 소영을 나무란다. 차별을 피해 정착한 땅에서 조차 미혼모라서 겪는 설움이 덧씌워질 뿐이었다.
몸이 아픈 소영은 동현의 또 다른 가족을 찾아 한국을 찾는다. 기억을 더듬어 방문한 시댁에서 만난 시어머니의 환영인사는 매섭기만 하다. 아들 잡아먹은 며느리가 결코 눈에 찰 일이 없는 것이다. 같은 여성이니 마음을 쉽게 헤아릴 것이라는 판단은 유보된다. 생각보다 많은 여성이 결혼과 출산 후 시댁을 챙기느라 곤란했던 일이나 육아하며 지친 마음을 잊은 듯, 다른 여성을 차별하기도 한다. 마치 우리네 할머니 세대가 시집살이에서 겪은 부당함과 억울함을 당신도 인지하지 못한 사이 어머니들에게도 내리 물림 하며 스스로 갚아 나갔던 것처럼. 남편의 이른 죽음 탓에 힘겹게 가정을 일구어 나갔을 엄마 소영은, 같은 엄마인 시어머니에게는 오히려 이해받지 못했다.
소영의 삶은 이렇듯 미혼모, 동양인 이주노동자, 워킹맘, 며느리라는 차별의 역할들로 채워진다. 당당히 삶을 살아가는 태도에도 불구하고, 사회는 ‘인간’ 소영을 계속해서 어떤 역할과 상태로 정의하며 원하지 않는 겹겹의 차별을 덧씌운다. 영화가 끝나면 소영의 삶에 안쓰러움을 느끼다가도 동시에 사회를 향한 부당함에 분노가 피어난다. 소영이 태어났던 그 시절부터 지금까지 여전한 사회 속 갈등을 떠올리면 그런 분노는 어쩌면 조금 익숙한 것처럼 느껴졌다.
내가 누린 당연함은 사실 그것이 당연하지 않았던 시절에 태동한 분노와 그것이 끌어낸 수많은 약속 위에 세워졌다는 사실을 곱씹는다. 삶의 배경이 다르면 무지각하게 차별을 당하던 이민자의 삶과 특정 성에 씌워진 사회의 굴레들도 다름을 이해하기 위한 오랜 투쟁과 사회적 합의 결과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우리 사회 속에는 여전히 우리가 채 자각하지도 못하는 차별과 부당함이 도사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람들이 어울려 살아가는 사회는 응당 조화로운 삶을 목표로 나아가고 있고, 이를 위한 우리의 노력이 계속해서 필요하다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주변을 둘러보고 함부로 판단하지 말자. 당연함의 이면에 숨어있는 이야기를 살펴보아야겠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