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성평등 의제
지속가능발전목표(SDGs)와 글로벌 성평등 규범
조영숙1
(한국여성단체연합 국제연대센터장/ 젠더교육플랫폼효재 대표)
국내외적으로 SDGs 이행력 제고를 위한 젠더 의제 활성화 및 젠더 통합적 사업 수행의 중요성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어 왔다. 그럼에도 많은 국제개발협력 관계자 및 실무자들에게 ‘젠더’는 여전히 멀게 느껴지고 실제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고 답한다. 이에 젠더브리프를 통해 국제개발협력 사업을 발굴, 수행할 때 기본적으로 이해하고 있어야 하는 글로벌 규범들과 개념에 대해 두 차례에 나눠 소개하고자 한다. 이번 호에서는 국제사회에서 합의한 글로벌 성평등 규범의 논의 과정과 의미에 대해 소개하고 다음 호에서는 여성의 권리와 성평등 개념의 해석이 어떻게 진화해 왔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
시작하며
2차 세계대전 이후의 20세기는 전 세계적으로 여성의 권리가 공적 정책영역으로 포함되고 나아가 점진적으로 성과를 거둔 시기였다. 그에 비해 우리가 사는 21세기의 오늘은 전 세계 빈곤 인구의 70%인 여성 빈곤 문제 해결을 목표로 제시했던 새천년개발목표MDGs 시대를 지나 여성 빈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성 불평등 구조를 근본적으로 변환시키는 접근transformative approach을 통해 여성을 포함한 그 누구도 뒤에 남겨지지 않도록Leave No One Behind 전 세계가 다 함께 노력하기로 약속한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이행의 시대이다. 2015년부터 2030년까지 15년을 목표로 진행 중인 SDGs 17개의 목표 중 제5번 목표는 여성의 권리와 성평등을 뚜렷하게 목표로 제시한 독자적인 목표stand-alone goal이며, 나머지 16개의 목표는 여성의 권리와 성평등에 관련된 과제targets와 지표indicators를 포함하고 있다. 유엔위민UN WOMEN에서 매년 발간하는 ‘SDGs 진전: 젠더 현황(2022)’에 따르면 전체 SDGs 목표와 과제 중에서 총 49개의 과제가 여성의 권리와 성평등을 명시하고 있으며, 23개 과제는 여성의 권리와 성평등이 내포되어 있고, 76개는 여성의 권리와 성평등을 위한 환경 조성이 포함되어 있으며, 21개는 간접적으로나마 여성의 권리와 성평등이 관련된 과제로 분류된다.2)
지속가능발전목표SDGs에 포함된 17개 목표goals하에 총 170여 개에 달하는 과제targets가 포함되고, 또 250여 개에 달하는 지표indicators가 관련해서 제시된 가운데, 여성의 권리와 성평등에 직접적으로 관련해서 제시된 지표는 제5번 목표에 포함된 14개 지표를 포함해서 50여 개에 달하며, 그 외에도 관련된 지표가 100개를 넘는 상황에서 국제개발협력 활동가들은 지속가능발전목표SDGs에 젠더를 어떻게 적용해야 할까? 라는 질문을 제기하였다. 그리고 해답을 찾기 위해 논의한 결과 유엔은 SDGs의 이행을 위해 표준화된 원칙과 접근법을 제시하였다. 그것은 바로 “공정함에 초점을 두고 젠더 대응적으로 평가함으로써 그 누구도 뒤에 남겨지지 않도록 평가하기”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3) (아래 그림1 참조)
[그림 1]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이행평가 원칙과 SDGs 젠더 지표, UN WOMEN
여기에서 우리는 ‘젠더 대응적 평가gender-responsive evaluation가 무엇인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사실 국제개발협력 활동가들은 성인지 관점gender sensitive perspective, 성 주류화gender mainstreaming, 성 분석gender analysis, 성별분리통계sex-disaggregated data, 젠더 마커gender marker 등의 용어를 몇 번은 들어보았을 것이고, 또는 적용을 위해 애쓰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이러한 용어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ODA 사업에 적용되어야 하는지 정확하게 모르는 경우가 다수이다.
본인은 이 글에서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시대에 요구되는 젠더 통합gender integration을 위해 애쓰는 국제개발협력 활동가들에게 유엔에서 제시한 ’젠더 대응적 평가gender-responsive evaluation’에 기초한 ODA 사업의 설계, 이행, 평가를 수행하기 위해 먼저 알아두어야 할 글로벌 성평등 규범을 소개해 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 먼저 20세기를 지나면서 국제사회가 보편적 규범으로 적용하기로 합의한 여성의 권리와 성평등의 개념과 해석의 진화과정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
여성의 권리에 관한 국제 규범: 여성 차별금지와 실질적 성평등
역사적으로 여성 차별금지와 성평등에 대한 투쟁은 18세기 시민운동과 함께 출현했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1790년 프랑스에서 올랭프 드 구즈Olympe de Gouges가 여성의 권리선언을 발표하였고, 1791년 영국에서는 메리 울스턴크래프트Mary Wollstonecraft가 여성의 권리 옹호를 선포한 바 있다. 그러나 프랑스혁명으로 유명한 프랑스조차 1944년에야 비로소 여성의 참정권이 법률로 인정되었다. 이처럼 20세기 중반까지도 여성의 권리에 대한 요구는 전 세계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여성에 대한 차별이 용납되지 않고, 여성의 평등권이 인권에 대한 이해와 수용에 필수적이라는 점을 국제사회가 받아들이기까지 이토록 오랜 시간이 걸린 까닭은 “남성의 권리로서의 인권Human Rights as the Rights of Men”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프랑스혁명 (1787~1799)의 3대 구호로 알려진 “자유freedom, 평등equality, 박애brotherhood” 중, 세 번째 구호인 박애의 한국어 사전 해석에 따르면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사랑함’이라는 연대solidarity를 의미하지만, 원어의 의미로는 ‘남자 형제brother’, 즉 여성이 배제된 남성들만의 연대를 의미한다. 우리에게 민주주의의 서막을 열어준 것으로 해석된 프랑스혁명은 알고 보면 여성을 배제한 남성들만의 민주주의를 의미했다.
여성의 권리rights of women가 최초로 국제적 합의 문서에 등장하게 된 것은 1945년 유엔 헌장UN Charter, 1945을 통해서이다. 당시 유엔 헌장을 작성하기 위해 모인 160개국 대표는 대부분 “남성man”을 권리 보유자the holder of rights로 인식하는 젠더 편견gender bias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4명의 여성 대표 - 도미니카 공화국의 미네르바 베르나디노Minerva Bernardino, 미국의 버지니아 길더슬리브Virginia Gildersleeve, 브라질의 베르타 루츠Bertha Lutz, 중국의 우이팡Wu Yi-Fang - 들은 권리 보유자를 남성man이 아닌 인간human person으로 고칠 것을 요구하였다. 이와 함께 여성의 권리가 문서에 명시되어야 함을 주장하였고, 서문preamble에 남녀평등equal rights of men and women이 포함되도록 하였다. 그 결과 유엔 헌장 제1조에 명시된 유엔의 목적 중 하나는 "인권과 인종, 성별, 언어, 종교에 대한 차별 없이 모든 사람의 기본적 자유를 존중하고 장려하는 국제 협력을 달성하는 것이다.
1948년 유엔총회에서 채택된 세계인권선언Universal Declaration of Human Rights에 기초한 국제인권법International Human Rights Law은 이러한 국제적 합의를 법적 기초로 만들어주었고, 여성의 권리는 인권이라는 점이 법적으로 보장되기 시작했다.4) 그러나 세계인권선언 문구 작성 과정에 참여한 여성들은 유엔 헌장과 똑같은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왜냐하면 제출된 문구 초안에는 여전히 "남성man"을 권리 소유자로 거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성들은 재차 문구 수정을 위한 협상에 나서게 되었다. 논쟁의 결과, 최종안에는 "인간human being", "모든 사람everyone", "사람person"이라는 성 중립적인gender neutral language 용어가 사용되었다. 또한 서문에는 "남녀평등권equal rights of men and women"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이 포함되도록 하였다. 이번에는 인도의 한스 메타Hans Mehta와 도미니카 공화국의 미네르바 베르나르디노Minerva Bernardino가 참여해서 여성이 권리를 위해 투쟁하였다.5)
뒤이어 세계 각지에서 페미니스트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면서 유엔은 1975년을 국제 여성의 해International Women’s Year로 선포하였고, 멕시코시티에서 제1차 세계여성회의World Conference on Women를 개최하였다. 유엔은 1976~1985년을 ‘유엔 여성 10년UN Decade for Women’으로 선포하고, 여성발전기금Voluntary Fund for Decade을 설립해서 재정적으로 뒷받침해 주었다.
1970년대의 마지막 해인 1979년, 유엔은 ‘여성에 대한 모든 형태의 차별철폐에 관한 협약이후 여성차별철폐협약, CEDAW’을 채택했다. 국제사회에서 최초로 합의된 여성 인권 조약인 여성차별철폐협약CEDAW은 여성에 대한 차별을 인정하고, 그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정의를 내리고, 실질적/결과적 평등을 위한 차별금지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명시했다. 구체적으로는, 국가의 정책 범위에 성 역할과 가족관계에 영향을 끼치는 문화와 전통의 개선 및 여성의 재생산 건강권의 보장과 같은 소위 ‘사적 영역’이 포함되도록 했다. 이는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the personal is political’임을 주장한 70년대 페미니즘 운동의 성과였다. 여성 개인의 이슈로 치부되던 사적 이슈, 특히 재생산노동돌봄/가사노동, 가족관계재산상속권/호주제/가정폭력 등을 국가의 공적 의제로 인정해야 한다는 법적 근거가 국제적으로 마련된 것이다.
5년 뒤 1980년 코펜하겐에서 제2차 세계여성회의가 열렸다. 회의에서 채택된 행동 프로그램은 상속, 자녀 양육권, 국적 상실에 관한 여성의 권리 향상뿐만 아니라 여성의 재산 소유권 및 관리권 보장을 위한 더 강력한 국가정책을 요구했다. 1985년 유엔 여성 10년의 성과를 검토하고 평가하는 회의가 나이로비에서 평등, 발전, 평화Equality, Development and Peace의 3대 목표하에 개최되었다. 유엔 여성 10년을 평가하면서 2000년까지 미완성된 과제를 성취하기 위해 ‘나이로비 미래전략Nairobi Forward-looking Strategies to the Year 2000’이 제시되었다. 그리고 재차 “모든 이슈가 여성의 이슈all issues to be women’s issues”임을 확인하였다. 정부 대표가 아닌 NGO 여성 대표 15,000명이 참여한 이 회의는 글로벌 남반부와 글로벌 북반부의 여성들이 연대를 통해 전 지구적으로 연계된 구조적 차별철폐를 위해 투쟁하는 글로벌 페미니즘Global Feminism의 탄생을 의미했다.
유엔 여성 10년을 거치면서 마침내 1979년 여성차별철폐협약에 합의함으로써 여성의 평등women’s equality에 관한 원칙이 보편적 인권universal human rights의 원칙으로 합의되었다. 유엔 창립 초기부터 제기되어 온 ‘여성의 권리는 보편적 인권의 필수적인 부분’이라는 점을 주장한 여성들의 목소리는 80년대까지도 제대로 수용되지 않았고 끊임없이 외면당했다. 그러다가 1993년 비엔나 인권 회의를 통해 비로소 ‘여성의 권리는 인권women’s rights are human rights’임이 법적으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비엔나 선언 및 행동 프로그램Vienna Declaration and Program of Action, 1993 제1조 18항은 “여성과 여아의 인권은 빼앗을 수 없는, 필수적인, 불가분의 보편적인 인권이다. 국가, 지역, 국제 수준에서 정치, 시민, 경제, 사회, 문화생활에 여성의 완전하고 평등한 참여와 성sex을 이유로 한 모든 형태의 차별철폐는 국제사회의 우선적인 목표이다.”라고 명시했다. 이후 전 세계는 여성의 권리가 보편적 인권의 하나라는 점을 더 이상 부정할 수 없게 되었고, 마침내 1995년 베이징에서 개최된 제4차 세계여성회의는 모든 유엔 회원국은 의무적으로 12개 주요 관심 분야12 critical areas of concern에 걸친 성평등 정책을 추진할 성 주류화 이행책임이 있음을 천명하였다.
1995년 베이징에서 열린 제4차 세계여성회의는 베이징 선언 및 행동강령Beijing Declaration and Platform for Action을 통해 여성의 권리는 인권Women’s Rights are Human Rights이라는 여성 인권 프레임을 공식화하였고, 세계 각국에 여성의 권리를 존중하고 보장하기 위한 구체적인 전략과 정책의 즉각적 수립과 이행을 촉구하였다. 그리고 이를 위해 각국 정부는 성별 영향 평가gender assessment, 성별 분리 통계sex-disaggregated data, 성인지 교육gender-sensitive training, 성인지 예산gender-responsive budget, 성인지 감사gender audit 등과 같은 성 주류화 전략gender main-streaming strategy의 이행을 위한 성인지 도구tools의 채택을 요구하였다.
1) 필자는 여성단체 활동가이자, 유엔과 OECD/DAC의 성평등 규범 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외교부의 여성과 함께하는 평화 이니셔티브 위원, 여성가족부의 유엔안보리 여성평화안보 1325 결의안 국가행동계획 이행점검단 위원, 그리고 코이카의 젠더 전문위원으로 활동 중이며, 지난 2020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양성평등대사로 임명되어 2년간 활동한 바 있다.
2) UN WOMEN(2022), Progress on the Sustainable Development Goals: The gender snapshot, (https://www.unwomen.org/en/digital-library/publications/2022/09/progress-on-the-sustainable-development-goals-the-gender-snapshot-2022)
3) UN WOMEN(2016), Evaluating the Sustainable Development Goals With a “No one left behind” lens through equity-focused and gender-responsive evaluations, (https://lac.unwomen.org/en/digiteca/publicaciones/2017/06/evaluating-the-sustainable-development-goal)
4) Gender Equality | United Nations, https://www.un.org/en/global-issues/gender-equality
5) UN Women(2014), Pietilä, H, The Unfinished Story of Women and the United Nations, United Nations Non- Government Liaison Service, New York, 2007, Women’s Rights to Equality: The Promise of CEDAW
글로벌 성평등 의제
지속가능발전목표(SDGs)와 글로벌 성평등 규범
조영숙1
(한국여성단체연합 국제연대센터장/ 젠더교육플랫폼효재 대표)
국내외적으로 SDGs 이행력 제고를 위한 젠더 의제 활성화 및 젠더 통합적 사업 수행의 중요성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어 왔다. 그럼에도 많은 국제개발협력 관계자 및 실무자들에게 ‘젠더’는 여전히 멀게 느껴지고 실제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고 답한다.
이에 젠더브리프를 통해 국제개발협력 사업을 발굴, 수행할 때 기본적으로 이해하고 있어야 하는 글로벌 규범들과 개념에 대해 두 차례에 나눠 소개하고자 한다. 이번 호에서는 국제사회에서 합의한 글로벌 성평등 규범의 논의 과정과 의미에 대해 소개하고 다음 호에서는 여성의 권리와 성평등 개념의 해석이 어떻게 진화해 왔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시작하며
2차 세계대전 이후의 20세기는 전 세계적으로 여성의 권리가 공적 정책영역으로 포함되고 나아가 점진적으로 성과를 거둔 시기였다. 그에 비해 우리가 사는 21세기의 오늘은 전 세계 빈곤 인구의 70%인 여성 빈곤 문제 해결을 목표로 제시했던 새천년개발목표MDGs 시대를 지나 여성 빈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성 불평등 구조를 근본적으로 변환시키는 접근transformative approach을 통해 여성을 포함한 그 누구도 뒤에 남겨지지 않도록Leave No One Behind 전 세계가 다 함께 노력하기로 약속한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이행의 시대이다. 2015년부터 2030년까지 15년을 목표로 진행 중인 SDGs 17개의 목표 중 제5번 목표는 여성의 권리와 성평등을 뚜렷하게 목표로 제시한 독자적인 목표stand-alone goal이며, 나머지 16개의 목표는 여성의 권리와 성평등에 관련된 과제targets와 지표indicators를 포함하고 있다. 유엔위민UN WOMEN에서 매년 발간하는 ‘SDGs 진전: 젠더 현황(2022)’에 따르면 전체 SDGs 목표와 과제 중에서 총 49개의 과제가 여성의 권리와 성평등을 명시하고 있으며, 23개 과제는 여성의 권리와 성평등이 내포되어 있고, 76개는 여성의 권리와 성평등을 위한 환경 조성이 포함되어 있으며, 21개는 간접적으로나마 여성의 권리와 성평등이 관련된 과제로 분류된다.2)
지속가능발전목표SDGs에 포함된 17개 목표goals하에 총 170여 개에 달하는 과제targets가 포함되고, 또 250여 개에 달하는 지표indicators가 관련해서 제시된 가운데, 여성의 권리와 성평등에 직접적으로 관련해서 제시된 지표는 제5번 목표에 포함된 14개 지표를 포함해서 50여 개에 달하며, 그 외에도 관련된 지표가 100개를 넘는 상황에서 국제개발협력 활동가들은 지속가능발전목표SDGs에 젠더를 어떻게 적용해야 할까? 라는 질문을 제기하였다. 그리고 해답을 찾기 위해 논의한 결과 유엔은 SDGs의 이행을 위해 표준화된 원칙과 접근법을 제시하였다. 그것은 바로 “공정함에 초점을 두고 젠더 대응적으로 평가함으로써 그 누구도 뒤에 남겨지지 않도록 평가하기”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3) (아래 그림1 참조)
[그림 1]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이행평가 원칙과 SDGs 젠더 지표, UN WOMEN
여기에서 우리는 ‘젠더 대응적 평가gender-responsive evaluation가 무엇인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사실 국제개발협력 활동가들은 성인지 관점gender sensitive perspective, 성 주류화gender mainstreaming, 성 분석gender analysis, 성별분리통계sex-disaggregated data, 젠더 마커gender marker 등의 용어를 몇 번은 들어보았을 것이고, 또는 적용을 위해 애쓰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이러한 용어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ODA 사업에 적용되어야 하는지 정확하게 모르는 경우가 다수이다.
본인은 이 글에서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시대에 요구되는 젠더 통합gender integration을 위해 애쓰는 국제개발협력 활동가들에게 유엔에서 제시한 ’젠더 대응적 평가gender-responsive evaluation’에 기초한 ODA 사업의 설계, 이행, 평가를 수행하기 위해 먼저 알아두어야 할 글로벌 성평등 규범을 소개해 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 먼저 20세기를 지나면서 국제사회가 보편적 규범으로 적용하기로 합의한 여성의 권리와 성평등의 개념과 해석의 진화과정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
여성의 권리에 관한 국제 규범: 여성 차별금지와 실질적 성평등
역사적으로 여성 차별금지와 성평등에 대한 투쟁은 18세기 시민운동과 함께 출현했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1790년 프랑스에서 올랭프 드 구즈Olympe de Gouges가 여성의 권리선언을 발표하였고, 1791년 영국에서는 메리 울스턴크래프트Mary Wollstonecraft가 여성의 권리 옹호를 선포한 바 있다. 그러나 프랑스혁명으로 유명한 프랑스조차 1944년에야 비로소 여성의 참정권이 법률로 인정되었다. 이처럼 20세기 중반까지도 여성의 권리에 대한 요구는 전 세계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여성에 대한 차별이 용납되지 않고, 여성의 평등권이 인권에 대한 이해와 수용에 필수적이라는 점을 국제사회가 받아들이기까지 이토록 오랜 시간이 걸린 까닭은 “남성의 권리로서의 인권Human Rights as the Rights of Men”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프랑스혁명 (1787~1799)의 3대 구호로 알려진 “자유freedom, 평등equality, 박애brotherhood” 중, 세 번째 구호인 박애의 한국어 사전 해석에 따르면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사랑함’이라는 연대solidarity를 의미하지만, 원어의 의미로는 ‘남자 형제brother’, 즉 여성이 배제된 남성들만의 연대를 의미한다. 우리에게 민주주의의 서막을 열어준 것으로 해석된 프랑스혁명은 알고 보면 여성을 배제한 남성들만의 민주주의를 의미했다.
여성의 권리rights of women가 최초로 국제적 합의 문서에 등장하게 된 것은 1945년 유엔 헌장UN Charter, 1945을 통해서이다. 당시 유엔 헌장을 작성하기 위해 모인 160개국 대표는 대부분 “남성man”을 권리 보유자the holder of rights로 인식하는 젠더 편견gender bias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4명의 여성 대표 - 도미니카 공화국의 미네르바 베르나디노Minerva Bernardino, 미국의 버지니아 길더슬리브Virginia Gildersleeve, 브라질의 베르타 루츠Bertha Lutz, 중국의 우이팡Wu Yi-Fang - 들은 권리 보유자를 남성man이 아닌 인간human person으로 고칠 것을 요구하였다. 이와 함께 여성의 권리가 문서에 명시되어야 함을 주장하였고, 서문preamble에 남녀평등equal rights of men and women이 포함되도록 하였다. 그 결과 유엔 헌장 제1조에 명시된 유엔의 목적 중 하나는 "인권과 인종, 성별, 언어, 종교에 대한 차별 없이 모든 사람의 기본적 자유를 존중하고 장려하는 국제 협력을 달성하는 것이다.
1948년 유엔총회에서 채택된 세계인권선언Universal Declaration of Human Rights에 기초한 국제인권법International Human Rights Law은 이러한 국제적 합의를 법적 기초로 만들어주었고, 여성의 권리는 인권이라는 점이 법적으로 보장되기 시작했다.4) 그러나 세계인권선언 문구 작성 과정에 참여한 여성들은 유엔 헌장과 똑같은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왜냐하면 제출된 문구 초안에는 여전히 "남성man"을 권리 소유자로 거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성들은 재차 문구 수정을 위한 협상에 나서게 되었다. 논쟁의 결과, 최종안에는 "인간human being", "모든 사람everyone", "사람person"이라는 성 중립적인gender neutral language 용어가 사용되었다. 또한 서문에는 "남녀평등권equal rights of men and women"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이 포함되도록 하였다. 이번에는 인도의 한스 메타Hans Mehta와 도미니카 공화국의 미네르바 베르나르디노Minerva Bernardino가 참여해서 여성이 권리를 위해 투쟁하였다.5)
뒤이어 세계 각지에서 페미니스트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면서 유엔은 1975년을 국제 여성의 해International Women’s Year로 선포하였고, 멕시코시티에서 제1차 세계여성회의World Conference on Women를 개최하였다. 유엔은 1976~1985년을 ‘유엔 여성 10년UN Decade for Women’으로 선포하고, 여성발전기금Voluntary Fund for Decade을 설립해서 재정적으로 뒷받침해 주었다.
1970년대의 마지막 해인 1979년, 유엔은 ‘여성에 대한 모든 형태의 차별철폐에 관한 협약이후 여성차별철폐협약, CEDAW’을 채택했다. 국제사회에서 최초로 합의된 여성 인권 조약인 여성차별철폐협약CEDAW은 여성에 대한 차별을 인정하고, 그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정의를 내리고, 실질적/결과적 평등을 위한 차별금지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명시했다. 구체적으로는, 국가의 정책 범위에 성 역할과 가족관계에 영향을 끼치는 문화와 전통의 개선 및 여성의 재생산 건강권의 보장과 같은 소위 ‘사적 영역’이 포함되도록 했다. 이는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the personal is political’임을 주장한 70년대 페미니즘 운동의 성과였다. 여성 개인의 이슈로 치부되던 사적 이슈, 특히 재생산노동돌봄/가사노동, 가족관계재산상속권/호주제/가정폭력 등을 국가의 공적 의제로 인정해야 한다는 법적 근거가 국제적으로 마련된 것이다.
5년 뒤 1980년 코펜하겐에서 제2차 세계여성회의가 열렸다. 회의에서 채택된 행동 프로그램은 상속, 자녀 양육권, 국적 상실에 관한 여성의 권리 향상뿐만 아니라 여성의 재산 소유권 및 관리권 보장을 위한 더 강력한 국가정책을 요구했다. 1985년 유엔 여성 10년의 성과를 검토하고 평가하는 회의가 나이로비에서 평등, 발전, 평화Equality, Development and Peace의 3대 목표하에 개최되었다. 유엔 여성 10년을 평가하면서 2000년까지 미완성된 과제를 성취하기 위해 ‘나이로비 미래전략Nairobi Forward-looking Strategies to the Year 2000’이 제시되었다. 그리고 재차 “모든 이슈가 여성의 이슈all issues to be women’s issues”임을 확인하였다. 정부 대표가 아닌 NGO 여성 대표 15,000명이 참여한 이 회의는 글로벌 남반부와 글로벌 북반부의 여성들이 연대를 통해 전 지구적으로 연계된 구조적 차별철폐를 위해 투쟁하는 글로벌 페미니즘Global Feminism의 탄생을 의미했다.
유엔 여성 10년을 거치면서 마침내 1979년 여성차별철폐협약에 합의함으로써 여성의 평등women’s equality에 관한 원칙이 보편적 인권universal human rights의 원칙으로 합의되었다. 유엔 창립 초기부터 제기되어 온 ‘여성의 권리는 보편적 인권의 필수적인 부분’이라는 점을 주장한 여성들의 목소리는 80년대까지도 제대로 수용되지 않았고 끊임없이 외면당했다. 그러다가 1993년 비엔나 인권 회의를 통해 비로소 ‘여성의 권리는 인권women’s rights are human rights’임이 법적으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비엔나 선언 및 행동 프로그램Vienna Declaration and Program of Action, 1993 제1조 18항은 “여성과 여아의 인권은 빼앗을 수 없는, 필수적인, 불가분의 보편적인 인권이다. 국가, 지역, 국제 수준에서 정치, 시민, 경제, 사회, 문화생활에 여성의 완전하고 평등한 참여와 성sex을 이유로 한 모든 형태의 차별철폐는 국제사회의 우선적인 목표이다.”라고 명시했다. 이후 전 세계는 여성의 권리가 보편적 인권의 하나라는 점을 더 이상 부정할 수 없게 되었고, 마침내 1995년 베이징에서 개최된 제4차 세계여성회의는 모든 유엔 회원국은 의무적으로 12개 주요 관심 분야12 critical areas of concern에 걸친 성평등 정책을 추진할 성 주류화 이행책임이 있음을 천명하였다.
1995년 베이징에서 열린 제4차 세계여성회의는 베이징 선언 및 행동강령Beijing Declaration and Platform for Action을 통해 여성의 권리는 인권Women’s Rights are Human Rights이라는 여성 인권 프레임을 공식화하였고, 세계 각국에 여성의 권리를 존중하고 보장하기 위한 구체적인 전략과 정책의 즉각적 수립과 이행을 촉구하였다. 그리고 이를 위해 각국 정부는 성별 영향 평가gender assessment, 성별 분리 통계sex-disaggregated data, 성인지 교육gender-sensitive training, 성인지 예산gender-responsive budget, 성인지 감사gender audit 등과 같은 성 주류화 전략gender main-streaming strategy의 이행을 위한 성인지 도구tools의 채택을 요구하였다.
1) 필자는 여성단체 활동가이자, 유엔과 OECD/DAC의 성평등 규범 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외교부의 여성과 함께하는 평화 이니셔티브 위원, 여성가족부의 유엔안보리 여성평화안보 1325 결의안 국가행동계획 이행점검단 위원, 그리고 코이카의 젠더 전문위원으로 활동 중이며, 지난 2020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양성평등대사로 임명되어 2년간 활동한 바 있다.
2) UN WOMEN(2022), Progress on the Sustainable Development Goals: The gender snapshot, (https://www.unwomen.org/en/digital-library/publications/2022/09/progress-on-the-sustainable-development-goals-the-gender-snapshot-2022)
3) UN WOMEN(2016), Evaluating the Sustainable Development Goals With a “No one left behind” lens through equity-focused and gender-responsive evaluations, (https://lac.unwomen.org/en/digiteca/publicaciones/2017/06/evaluating-the-sustainable-development-goal)
4) Gender Equality | United Nations, https://www.un.org/en/global-issues/gender-equality
5) UN Women(2014), Pietilä, H, The Unfinished Story of Women and the United Nations, United Nations Non- Government Liaison Service, New York, 2007, Women’s Rights to Equality: The Promise of CEDA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