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브리프/국제이벤트] 성평등을 향한 남성의 동행: 연구와 실천의 교차점에서

2024-12-23


성평등을 향한 남성의 동행: 연구와 실천의 교차점에서

 

신대현1)

 

필자는 지난 11월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개최된 제2회 글로벌 젠더 연구 콘퍼런스(The 2nd Global Conference on Gender Studies)에 참석하며, 젠더 이슈에 대한 지식을 심화하고, 글로벌 동향을 체험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가졌다. 본 콘퍼런스는 젠더 연구와 페미니스트, 퀴어 이론을 기반으로 젠더 관행과 규범, 담론에 관한 최신 지식과 경험을 공유하는 학제 간 교류의 장으로, 학계와 실무자들이 한데 모여 지속 가능한 사회를 위한 젠더 문제 해결 방안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금번 행사는 덴마크 코펜하겐의 IDA 콘퍼런스 센터에서 열렸으며, 지난해 독일 베를린에서 시작되어, 내년에는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이어질 예정이다. 이번 콘퍼런스에서는 학계뿐만 아니라, 연구계와 산업계, 정부 기관 등 여러 분야를 아우르는 다양한 배경의 참가자들이 두각을 나타냈다. 특히, 케임브리지와 옥스퍼드 대학교,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 뉴욕대학교와 같은 저명한 학술 기관은 물론, 아프가니스탄, 예멘, 소말리아, 차드 등 젠더 관련 개발이 절실한 국가들에서도 활발한 참여와 활동이 이루어졌다.


필자는 남성으로서, 현재 국제기구에서 성평등과 여성의 역량 강화를 위한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이 분야에 뛰어들기 전까지, 지속가능개발목표(SDGs) 중 성평등을 명시한 SDG 5의 존재 정도만 알고 있었을 뿐, 젠더 관련 이슈에는 거의 무지한 상태였다. 과거 공학을 전공하여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등 제조 산업 분야에만 종사했던 필자의 환경은 젠더와 성평등 논의로부터 다소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러나 국제개발협력과 지속 가능한 개발 목표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성평등 분야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고, 이로 인해 젠더 관련 현안과 이슈를 체감하며 업무에 임하고 있다. 특히, 업무 중 접한 한 가지 두드러진 점은 성평등과 여성의 역량 강화에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 대부분이 여성이었다는 사실이다. 이와 같은 현상은 지속 가능한 사회를 위해 성평등에 관한 남성의 역할과 참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환기시키며, HeForShe2) 캠페인의 가치와 방향성을 체감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성평등과 여성의 역량 강화를 위한 노력을 더욱 확고히 다짐하며 깊은 책임감을 품고 행사에 임하였다.

 

콘퍼런스는 3일간 진행되었으며, 다양한 주제를 바탕으로 참신한 발표들과 열띤 논의들이 이어졌다. 첫날에는 '젠더와 사회 정의', 'LGBTQ+ 연구와 대표성', '젠더 역학과 교육', '문화적 서사와 페미니즘 관점', '지역 사회 회복력과 지지'라는 5가지 주제를 중심으로 27개의 논문이 발표되었고, 둘째 날에는 '젠더와 정체성'을 주제로 9개의 논문이, 셋째 날에는 '젠더 기반 폭력과 역량 강화'를 주제로 14개의 논문이 소개되었다. 전반적으로 연구 주제의 메인 키워드는 성평등과 여성 역량 강화, 사회·문화적 차별, 젠더 기반 폭력으로 구성되었으며, 실증적 사례와 데이터를 기반으로 도출된 연구와 이의 시사점,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한 해결과 예방책들에 대한 깊은 고찰이 전해졌다.


특히 첫날 기조연설을 통해 젠더와 다양성의 포괄적 이해를 통해 지속 가능한 발전과 사회 정의를 이루어야 함을 시사하였다. Dr. Kay Siebler는 성(Sex)과 젠더(Gender)의 이분법적 사고를 넘어 젠더 규범이 사회적 억압 도구로 사용되지 않도록 제도적 변화와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그녀는 출생 시 성별에 따라 여성은 외모와 신체 이미지에 대한 압박을, 남성은 강인함과 자주성을 강조받는 현실을 지적하며, 젠더 규범에 반하는 행동이 가족, 학교, 미디어 등 사회적 맥락에서 갈등을 초래할 수 있음을 설명하였다. 특히, 가족의 지지가 아이의 정체성 형성에 필수적임을 역설하며, 성과 젠더의 개념이 종종 혼용되는 현실을 비판하였다. 이를 통해 젠더에 대한 보다 포괄적이고 다층적인 이해를 추구해야 함을 설파하며, 미국의 사례를 들어 젠더 표기가 가진 사회적 의미를 재조명하였다. 또한 Dr. Candice D. Roberts는 LGBTQ+ 연구와 사회적 정의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실질적인 변화를 도모하기 위한 학문적 접근의 필요성을 역설하였다. 그녀는 젠더 이론과 LGBTQ 연구 간의 연계성을 심도 있게 탐구하며, 지역 사회와 협력하여 소외된 목소리를 증대시키는 참여적 행동 연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때 Roberts는 LGBTQ 커뮤니티의 역사적 연구와 젠더 이론이 여전히 중요한 학문적 기반을 이루고 있음을 지적하며, 이를 바탕으로 실질적인 변화와 지속 가능한 발전을 이루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연구는 단순히 학문적 논의에 머물지 않고, 실용성과 응용성을 갖춘 효과적인 해결 방안을 제시함으로써 보다 나은 삶을 실현하는 데 기여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젠더 기반 폭력과 학대에 관한 연구도 다수 발표되었다. 조속히 근절되고 개선되어야 할 이 분야에 대해, 필자는 현재 디지털 성범죄 대응, 여성 폭력 근절, 페미사이드 등 다양한 활동을 직·간접적으로 수행하며, 자연스레 해당 분야에 대해 보다 많은 관심을 가지고 관련 연구 주제에 집중하였다. Dr. Vincenzo Scardigno는 경제적 학대가 피해자가 폭력적 관계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주요 요인임을 강조하며, 이를 해결하기 위한 금융 교육 프로그램의 필요성을 제기하였다. 그는 이탈리아 폭력 피해자 지원 센터와 협력하여 진행한 연구 결과를 통해 피해자들이 경제적 자립을 이루지 못할 때 더욱 심화되는 경제적 학대의 암담한 현실을 보여주었다. 특히, 피해자의 95%가 경제적 학대를 경험하였으며, 65%가 자신의 재정을 통제할 수 없다고 응답한 점은 경제적 학대가 피해자에게 얼마나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였다. Scardigno는 피해자 자립을 위한 금융 교육이 폭력 근절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음을 강조하였다. 이와 함께 Lorenzo Belli 연구원은 친밀한 파트너 관계에서의 폭력(IPV)에 대해 주목하였다. 그는 파트너 간 폭력의 생애주기적 접근법을 통해 피해 유형과 가해자의 특성을 구체적이고 세밀히 분석하며, 맞춤형 예방 프로그램의 필요성을 명시하였다. 그는 IPV 피해 여성의 삶 전반에 걸친 특징과 경험을 분석하며, 단순 정량적 피해 사례 분석에서 벗어나 피해자와 가해자 간의 면밀한 상호작용을 심층적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를 통해 맞춤형 개입이 효과적으로 작용될 수 있으며, 피해자의 특성과 관계를 고려한 접근법이 폭력의 예방 및 개입 과정에서 필수적임을 시사하였다. 이 연구는 젠더 기반 폭력의 복합적인 측면을 암시하며, 피해자 지원과 예방에 있어 정책적 변화를 요하는 귀중한 논의로 자리 잡았다.


[그림 1] Type of Abuse and Percentage of Positive Response, Financial Education to Contrast Financial Abuse 20243), 저자 재구성


콘퍼런스에서는 LGBTQ+에 관한 연구도 활발히 소개되었으며, 젠더와 사회적 정의의 상호 연관성을 탐구하는 중요한 주제로 다루어졌다. Gaben Sanchez 교수는 트랜스젠더 개인의 젠더 전환 과정에서 새로운 이름을 선택하는 ‘명명 행위’의 중요성을 논의하며, 이는 단순한 명칭 변경을 넘어 개인의 정체성을 재정의하고 사회적 기대를 넘어서는 상징적 행위임을 강조하였다. 그의 연구는 트랜스젠더 개인이 이름을 통해 자율성과 사회적 인정을 추구하며 자신을 재구성하는 과정을 분석하며, 명명이 젠더 다양성과 포괄성을 존중하는 사회 형성의 필수 요소임을 시사하였다. 이 외에도 인도의 LGBTQ 커뮤니티가 직면한 사회적 편견과 미국 앨라배마 흑인 게이 및 퀴어 커뮤니티의 다중적 억압 경험을 다룬 연구는 젠더 이슈가 지역적, 문화적 맥락에 따라 복잡하게 작용함을 보여주었다. 특히 중국 학계가 제안한 LGBTQ+ 학생들을 위한 교육 프레임워크는 학내 차별을 줄이고 안전한 학습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제도적 변화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젠더와 성적 지향에 대한 포괄적 인식 전환의 중요성을 부각했다. 이러한 연구들은 LGBTQ+ 커뮤니티의 권리와 경험을 조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젠더 다양성을 기반으로 지속 가능한 사회적 변화를 모색하는 데 중요한 통찰을 제공하였다.

 

이러한 다채롭고 흥미로운 주제의 발표들은, 공식적으로 마련된 토론과 네트워킹 세션을 넘어 참여자 간 개별적인 심화 논의로 이어졌다. 이 과정을 통해 각국의 젠더 및 성평등 관련 현안을 심도 있게 논의할 수 있었다. 특히, 젠더 연구 수행 과정에서 겪는 현실적 제약과 도전 과제를 나누며, 사회적 규범과 제도의 장벽 속에서도 연구를 이어나가는 참가자들의 열정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예를 들어, 이슬람 국가에서 여성으로서 젠더 연구를 수행하는 연구자의 사례는 필자에게 깊은 영감을 주었다. 또한, 이번 콘퍼런스에서는 필자와 같이 젠더와 성평등 분야에 새롭게 참여한 남성 연구 및 실무자들이 상당수 참여하였으며, 이들은 성평등 실현에 있어 남성의 역할이 점차 중요해지고 있음을 시사하였다. 다양한 연구자들과의 대화를 통해 학문적 및 실무적 아이디어를 공유하며, 향후 공동 연구 및 캠페인을 추진할 가능성을 논의하였다. 이러한 교류는 젠더 관련 목표를 이루기 위해 학계와 현장이 협력할 수 있는 중요한 토대를 마련하였다.


[그림 2] 콘퍼런스 참여 장면, 필자 제공

이번 콘퍼런스를 통해 젠더 연구와 성평등 활동에 대한 보다 심층적인 통찰을 얻게 되었다. 젠더와 성평등 이슈는 단순히 특정 집단의 권리 보장 문제를 넘어 사회적, 문화적, 경제적 구조와 긴밀히 연결된 복합적인 주제임을 다시금 실감하였다. 특히, 다양한 학문적 접근과 사례 연구를 통해 성평등이 지속 가능한 사회를 구축하는 핵심 요소임을 확인하였으며, 이를 실현하기 위한 다층적이고 실천적인 접근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 이번 경험은 필자에게 개인적 성장과 함께 사회적 책임 의식을 고취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국내외에서 진행 중인 다양한 젠더와 성평등 관련 프로젝트에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여성 역량 강화, 젠더 기반 폭력 예방 활동, 그리고 지역 사회와의 협력 강화를 통해 실질적인 변화를 이루는 데 주력하고자 한다. 이러한 노력은 단순히 개인적 차원에서 끝나지 않고, 성평등을 기반으로 한 사회적 변화를 촉진하고 지속 가능한 발전에 기여하는 중요한 실천적 발걸음이 될 것이다. 필자는 이 과정을 통해 성평등이라는 목표가 단순한 이상이 아닌 실현 가능한 현실로 다가오도록 하는 데 기여하고자 한다.


[각주]

1) 필자는 기계공학을 전공하여 삼성디스플레이를 거쳐 국제전기기술위원회(IEC)에서 첨단 산업 분야 전문가로서 국제 표준화 활동에 기여했다. 이후 지속가능발전목표(SDGs)에 뜻을 품고 유엔산업개발기구(UNIDO)를 시작으로, 현재는 유엔여성기구(UN Women)에서 성평등 관련 다양한 활동을 수행 중이다.
2) HeForShe is an invitation for men and people of all genders to stand in solidarity with women to create a bold, visible and united force for gender equality., UN Women-HeForShe (https://www.heforshe.org/)

3) Financial Education to Contrast Financial Abuse: A Preliminary Study in the Anti-Violence Center Population 2024, Vincenzo Scardigno, Mariantonietta Intonti, University of Bari “Aldo Moro”, Ita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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