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브리프/글로벌 이슈] 이주가사노동자 논쟁이 놓치고 있는 것

2024-12-23


이주가사노동자 논쟁이 놓치고 있는 것

 

이현옥(서강대학교 글로벌 한국학과 부교수)1)

 

작년부터 논의된 이주가사노동자 도입은 한국사회에서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문제가 된 부분은 이주가사노동자들에게 근로기준법을 적용하지 않는다는 지점이었다. 이주여성에게 돌봄노동을 아웃소싱하되 노동자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돌봄을 값싸게 제공한다는 논리는 외국인 가사노동자를 착취하고 인종적, 성별 위계를 강화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외국인 가사노동자 정책에 대한 비판에 전적으로 동의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한 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한국의 가사노동자가 법적으로 노동자로 인정을 받은 것이 불과 몇 년 전인데, 이 시점에 이러한 논의가 제기된 것은 단순한 우연인가? 역사적으로 가사노동자들은 1953년 이래 근로기준법에서 제외되어 왔으며,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나타난 가사노동자 운동의 결실로 2021년 '가사근로자 고용개선에 관한 법률'을 통해서야 비로소 노동자로서 법적 인정을 받았다. 산업시민권의 문법으로 노동자 시민으로서 권리를 쟁취한 지 불과 몇 년 만에 근로기준법이 적용되지 않는 외국인 가사노동자 논의가 제기된 것은 단순히 인종적 젠더적 위계를 강화하는 문제뿐만 아니라, 가사노동을 단순히 상품화된 돌봄의 가격 문제로 치환시킴으로써, 가사노동과 시민권을 둘러싼 정치적 의제를 발전시켜 온 여성노동자운동의 역사적 맥락을 지워버리는 효과를 갖는다. 따라서 이주가사노동자 도입과 반드시 함께 논의되어야 할 것은 가사노동을 둘러싼 (비)가시화의 정치이다.

 

[그림 1] '정책에세이-필리핀 가사관리다 도입, 솔직해도 됩니다' 이투데이(2024.8.20)


가사/돌봄노동

돌봄에 대한 논의는 70년대 무급가사노동 논쟁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90년대 이후 윤리학, 정치사상 쪽에서 돌봄 윤리 논의로, 경제학, 사회정책학 등에서 돌봄 노동과 돌봄 레짐에 대한 논의로 발전되었다. 70년대 무급가사노동 논쟁의 핵심에는 자본주의를 유지시키는 동력은 무엇인가, 여성 억압의 원인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이 자리하고 있다. 이후 논의는 비가시화되고 저평가된 사랑의 노동과 여성의 삶을 조명하려는 다양한 노력을 발전했다. 돌봄(Care)은 "우리의 세계를 유지, 지속, 수선하기 위해 우리가 하는 모든 것을 포함하는 활동"(Tronto and Fisher, 1990)으로 정의할 수 있다. 이는 단순히 활동에 머무르지 않고, "돌봄은 관계이자, 일련의 활동들이며, 그 핵심에 도덕적이고 윤리적 실천을 포함하는 성향 또는 존재방식"(Daly 2012)이라고 할 수 있다. 돌봄 윤리(Ethics of Care)의 핵심에는 상호의존성에 대한 강조가 있으며, 이는 자유주의 경제학의 기초가 되는 합리적 개인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Tronto, 2020; Held, 2006; Engster, 2011; Kittay, 2020). 돌봄 노동과 돌봄 레짐에 대한 논의는 비가시화되고 저평가된 "사랑의 노동"을 드러내기 위한 다양한 전략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발전했다. 돌봄 노동은 “개인이 직접 돌보는지 여부, 금전적 보상 여부, 돌봄이 행해지는 장소, 돌봄의 대상 등의 요인으로 정의할 수 있다(Daly and Zhang, 2012; Razavi, 2007). 돌봄 노동에 대한 담론은 여성의 노동력 참여 증가, 공적 돌봄의 확대(Razavi 2007), 친밀성의 상품화(Ehrenreich and Hochschild, 2003)와 함께 등장했으며, 국가가 돌봄을 제공하는 방식과 돌봄서비스시장의 구조적 맥락이 중요하다(Razavi, 2007; Simonazzi, 2009).

 

돌봄/가사노동자 운동

지난 20여 년간 한국사회에는 다양한 사회정책이 도입되었고 돌봄시장은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그중에서도 눈에 띄는 것은 2000년대 후반부터 나타난 요양보호사, 보육교사, 장애인활동보조사와 같이 국가 공인 돌봄 노동 직군의 등장이다. 2010년대 후반부터는 돌봄서비스노동조합 등 이들이 주요 조합원이 되는 노동조합들이 등장한다. 반면, 가사노동자의 경우는 노동시장에서 가장 오랫동안 돌봄 노동을 수행했지만, 법적으로 노동자로 인정된 것은 불과 몇 년 전이다. 60년대 산업화 초기만 해도 여성노동자이 많이 종사하는 직종이었으나. 산업화와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 증가에 따라 중년 여성의 시간제 노동으로 변화하였고, 1990년대에는 여성의 경제활동 보편화로 수요가 증가하면서 중국동포 가사노동자의 유입까지 이어지는 구조적 변화를 겪었다(강이수, 2009). 특히 1997년 경제위기 이후 여성일자리 사업으로 가사서비스 사업이 진행되었다. 이후 이 사업은 우렁각시, 돌봄노동협동조합협의회와 같은 노동자 협동조합 운동으로 이어진다. 경제위기 이후 가사노동자 일자리 창출 사업과 같은 활동은 여성노동자의 필요를 발견하고 충족시키기 위한 적극적 활동으로 볼 수 있다. 2012년에는 한국여성노동자회 산하 전국가사관리사협회가, 2014년에는 한국가사노동자협회가 설립되었고, 다른 사회 단체와 연대를 통해 가사노동자 권리와 법적지위 인정을 위한 운동을 진행하였다. 2021년 6월 15일, 대한민국에서 '가사근로자 고용개선 등에 관한 법률'(이하 '가사근로자법')이 제정되었다. 이는 1953년 근로기준법에서 68년 동안 배제되어 있던 가사노동자들이 제도적으로 노동자로 인정을 받았게 되었다는 점에서 가사노동자 입법 운동의 주목할 만한 성과로 볼 수 있다. 가사노동자법 입법 이후 법의 실효성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고 있지만, 입법투쟁과 그 성과의 의미는 부정할 수 없다. 예컨대, 2022년 가사-돌봄 유니온이 설립되면서, 가사노동자들은 노동자로서 공식적인 의사결정 구조 안에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는 조직을 갖게 되었다.

 

새로운 연대의 장

돌봄 노동시장이 분화되고 전문화되면서, 돌봄 노동을 전반을 담당하던 가사노동자는 상대적으로 저숙련 돌봄자로 분류되는 경향을 띄는데, 한국사회에서는 이 과정이 빠른 속도로 진행되었다. 물론 요양보호사의 현실을 살펴보면 이 또한 허상이라고 볼 수 있으나, 제도적 인정의 효과는 간과할 수 없는 차이를 만든다. 혹자는 가사노동의 종말을 선언했지만, 가사노동자들은 저평가되고 비가시화된 가사노동을 둘러싼 정치적 투쟁의 장을 포기하지 않았다. 느리게 왔지만, 그래서 한국사회에서 가사노동자 운동이 더욱 소중한 이유이다.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이 폭발적인 논쟁을 불러일으킨 것은 지금까지 노동운동이 쌓아온 우리가 상식이라고 믿고 있는 노동권에 대한 전면적인 부정의 선언이기 때문이다. 그중에서 가장 문제적인 것은 지금까지 가사 돌봄 노동자 운동이 쌓아 왔던 제도적 인정의 노력을 정면으로 무화시키고 가사노동은 언제든 값싸게 동원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행동으로 보인 것에 있다. 도입 이후 문제가 드러남에 따라, 가사돌봄유니온과 한국여성노동자회를 포함한 많은 이주, 여성, 노동 단체가 참여하는 이주 가사돌봄노동자 권리 보장을 위한 연대회의가 지난 2024년 9월에 출범했다.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을까?’라는 한강 작가의 질문은 단순히 특정 역사적 사실에 국한된 질문이 아니라, 반복되는 퇴행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에 대한 진행형의 질문이다. 무엇이 논의되고 있는가 만큼 중요한 것은 무엇이 논의에서 자취를 감추고 보이지 않는가이다.


[각주]

1) 필자는 정치경제 구조 변화를 젠더 관점으로 읽는 데 관심이 있다. 현재는 서강대학교 글로벌한국학과 부교수로 재직중이며 코이카 젠더 전문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참고문헌]

1) 강이수(2009), "가사 서비스 노동의 변화의 맥락과 실태", 『한국사회사학회』, 제82권 pp. 213-247쪽.

사단법인 아시아위민브릿지 두런두런

이사장 원민경

주소 (06939) 서울특별시 동작구 여의대방로54길 18, 4층 400호(대방동, 서울여성플라자) 

전화 02-739-6253  팩스 070-4207-6254  

e-mail korea@dorundorun.org


Copyright 2025 사단법인 아시아위민브릿지 두런두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