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브리프/영화 리뷰] 『우리는 들불이다』 : 들불과 불쏘시개

2024-10-23

『우리는 들불이다』 : 들불과 불쏘시개

이지수(세이브더칠드런 국제사업1팀 대리)1)

 

들어가며: 추석 연휴를 보내고 날씨가 한껏 시원해진 9월의 어느 날, 한국여성의전화 주최로 열린 제17회 여성인권영화제를 통하여 DAK 젠더분과위원회는 여성살해(Femicide)에 대해 생각해보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영화 <우리는 들불이다>를 관람하고 함께 나눈 이야기를 남깁니다.

 

“여성들이 흘리는 피가 오로지 생리뿐이었으면 좋겠다.” 몸에서 자연적으로 흐르는 피, 생리는 더럽고 불결한 것으로 여기면서 폭력에 의한 피는 용인하는 사회, 우리는 그런 사회에 살고 있다.

[그림 1] 왓챠피디아, ‘우리는 들불이다’는 멕시코의 모습을 그 곳 여성들의 목소리를 빌려 보여준 영화다.


엄마와 여동생을 한날 한시에 잃은 여성은, 남편 없이는 집 밖을 나서지 못한다. 생물학적으로 더 높은 위력을 가진 사람 탓에 가족과 이별한 여성은, 이제 그 위력에 의존하지 않고서는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다. 가부장제가 여성을 독립된 개인으로 살아가지 못하게 만든 과정이다.

 

목숨을 부지할 수 있다면 운이 좋은 것이다. 멕시코에서는 매일 여성 10명이 살해당한다. 죽음에는 이유가 없다. 남성보다 힘이 약한 여성이라 죽었다.

영화에서 경찰이었던 여성은 남편 폭력에 죽는다. 남은 가족은 경찰 출신이 왜 스스로를 보호하지 못했는지 모르겠다며 울부짖는다. 그 죽음의 이유를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듯이.

 

2022년 멕시코에선 총 3,754명의 여성이 살해 당했다. 그 중 947명만이 여성폭력으로 입건됐다. 영화에서 7세 딸을 잃은 어머니는 이 나라에서 대부분의 여성살해가 처벌받지 않는다고 절규한다. 실제로 멕시코에서 여성 살인 사건은 기소되지 않는 경향이 크며 기소된 사건이라도 88.6%는 처벌받지 않는다는 통계가 있다. 폭력에 의한 여성의 피를 사법당국이 용인하는 꼴이다.

한국이라고 다를까. 이 나라에서 ‘일면식 없는 남성’에 의한 여성 살해는 4일에 1회 꼴로 일어난다. 경찰신고 및 피해자 보호조치를 취했음에도 살해된 피해자는 2023년 친밀한 관계에 의해 살해된 전체 피해자 중 16.9%에 달한다.

멕시코에서는 국회의원의 50%가 넘는 숫자가 여성이다. (우리나라 22대 국회 여성 비율은 14.7%다.) 2002년부터 실시된 강력한 여성할당제 덕분이다. 이와 배치되는 지금의 현실은, 제도적 장치를 추가하는 것만으로는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을 보여준다.


극을 이끄는 마레모토는 만화가다. 여성들의 상처를 품고, 요지부동 사회에 균열을 내는 그림을 그린다. 여성의 죽음과 그 뒤에 남은 가족들을 마주하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집에서 그림을 그리는 것뿐이라는 사실에 무력감을 느낀다.

그러나 그를 길에서 만나는 상당수 여성들은 그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한다. “그들은 우리를 매장시키고 싶었겠지만 우리가 씨앗이 될 줄은 몰랐겠죠. 우릴 작게 만들고 더 많은 폭력을 쓸수록 우린 끝까지 투쟁할 것입니다. 당신이 죽인 여성들이 들불이 되어 돌아올 겁니다.”

[그림2] 왓챠피디아


멕시코에서 번진 들불이 순전히 마레모토 덕은 아닐 거다. 이미 들불이 번지기 전 각자의 자리에는 불쏘시개가 있었다.. 우리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각자가 각자의 자리에서 불쏘시개가 되는 거다.

영화에서는 끔찍한 일을 당했지만 두려워 않고 거리로 나온 여성들이 있다. 들불은 서로의 목소리를 공명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이는 여성에 대한 사회 인식이 바뀌는 임계점이자 바꾸게 하는 방법론이다. 가깝게는 강남역 살인사건부터 멀게는 여성 참정권 운동까지. 사회가 바뀐 순간에는 들불과 들불을 번지게끔 한 불쏘시개가 있었다.

 

참고자료: CNN, <Mexico’s next president will be a woman. But violence has overshadowed the glass ceiling being shattered.> Gálvez and Sheinbaum: Mexico’s next president will be a woman. But violence has overshadowed the glass ceiling being shattered. | CNN

한국여성의전화, <2023년 분노의 게이지: 인론 보도를 통해 본 친밀한 관계의 남성 파트너 및 일면식 없는 남성에 의한 여성살해 분석> https://hotline.or.kr/archive/?bmode=view&idx=26184041



[각주]

 1) 코이카 인턴 생활을 계기로, 국제개발협력사업을 업으로 삼아온 햇수가 7년이 되었다. 중남미 지역과 젠더 분야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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