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결정'들
남수단에서 묻지 못한 것들에 대하여
공선주

© 2026 공선주
하늘 위에서 바라본 풍경은 허허벌판에 드문드문 보이는 가옥으로 보이는 구조물들, 그리고 꼬불꼬불 길게 나 있는 흙길 뿐이었다. 작은 프로펠러 경비행기를 타고 한 시간을 가도 가도 보이는 건 같은 풍경. 이곳에 사람들의 삶을 물으러 가는 길이었다.
남수단 동부 에콰토리아(Eastern Equatoria) 주, 카포에타(Kapoeta). 2월의 건기, 이곳을 처음 밟는 사람은 누구든 먼저 열기와 먼지를 만난다. 남수단에서 가장 건조한 지역 중 하나인 이곳은 건기가 되면 흙먼지가 사방을 덮고, 나무 그늘은 드물고 길은 멀다. 주민 대다수는 토포사(Toposa)족으로, 수천 년을 이어온 이동 목축의 리듬 속에서 살아왔다.
어느 날 외부에서 파견된 이른바 '사업평가 전문가' 그룹이 주민들 앞에 앉았다. 노트를 펼치고, 체크리스트를 들고. 그리고 물었다.
"이렇게 하는 건 누가 결정해요? (의사결정권이 누구한테 있어요?)"
통역사가 현지어로 옮기는 사이, 잠시 주민들 사이에 미소가 흘렀다. 주민들은 일체의 고민도 없이, 위원회에서 '함께' 결정한다고 답했다. 전문가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체크리스트에 무언가를 적었다. 그리고 다음 질문이 시작됐다.
나는 전문가의 자리로 선 그 시공간에서 매번 어쩌지 못할 마음의 동요를 느낀다. 그들과 외부인 나, 그리고 이곳을 처음 찾는 이가 갖는 간극이 쉽사리 좁혀지지 않으리라는 것이 너무 명백하기에, 자격 없이 의자 하나를 차지하고 있다는 부끄러움과 어디서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를 막막함 때문이다.
그 질문 자체가 문제였을까. 아니면 그 질문이 던져진 방식이 문제였을까. 그 질문 자체가 그들의 삶과 너무 동떨어져 있어서였을까. 너무 뻔한 공식적인 답변이라서였을까. 주민들의 그 짧은 답변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이 글은 그 질문을 탓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 질문이 무엇을 보지 못했는지를, 카포에타의 먼지 속에서 내가 목격한 것들을 통해 풀어보려 한다.
1. 왜 우리는 '의사결정권'을 묻는가
'의사결정권이 누구에게 있느냐'는 질문은 어디서 왔을까. '의사결정권'은 젠더 주류화(Gender Mainstreaming) 분석 도구 중 하나인 자원 접근-통제 분석(Access and Control Analysis)에서 비롯된다. 이 접근은 개발 프로젝트가 단순히 여성을 수혜자 목록에 올리는 것을 넘어서, 자원에 대한 실질적 통제권이 성별에 따라 어떻게 배분되는지를 가시화하려는 시도다.
이 질문이 개발 현장에 등장하게 된 것은 1970년대의 불편한 자각에서 시작된다. Boserup(1970)은 Woman's Role in Economic Development에서 당시 개발 원조의 맹점을 정면으로 짚었다. 아프리카 농촌 여성들은 식량 작물 재배의 60-80%를 담당하는 핵심 생산자였다. 그러나 당시 개발 사업은 '농부'를 남성으로 전제했다. 농업 기술 교육, 개량 종자, 비료, 농기계는 모두 남성 가구주에게 전달되었다. 여성은 노동은 했지만 자산은 갖지 못했고, 결정은 내리지 못했다. 개발이 진행될수록 여성의 경제적 지위는 오히려 하락했다. 의도하지 않은 결과였지만, 구조적으로는 예측 가능한 결과였다.
이 문제의식은 1995년 베이징 세계여성대회(United Nations, 1995)를 거치면서 국제 개발 의제의 중심으로 들어왔다. 단순히 여성의 참여율을 높이는 것, 즉 몇 명의 여성이 훈련을 받았는가, 몇 명이 회의에 참석했는가를 세는 방식으로는 실질적 변화를 만들 수 없다는 반성이었다. 여성이 회의실에 앉아 있더라도 발언권이 없다면, 수혜자 명단에 이름이 올라 있더라도 그 자원을 스스로 통제할 수 없다면, 숫자는 숫자일 뿐이다.
그래서 젠더와 개발(GAD) 연구자들은 '접근(access)'과 '통제(control)'를 구분하기 시작했다. 접근은 자원을 사용할 수 있는 기회의 문제다. 여성도 농기구를 쓸 수 있는가. 여성도 훈련에 참석할 수 있는가. 여성도 시장에 나갈 수 있는가. 통제는 그 한 발 너머의 문제다. 농기구를 새로 살지 말지를 누가 결정하는가. 수확한 작물을 팔지 저장할지를 누가 결정하는가. 판 수익금을 어디에 쓸지를 누가 결정하는가.
여성이 하루 종일 밭에서 일해도, 수확물을 팔지 말지를 결정하는 것이 남편이라면, 판 돈을 어디에 쓸지를 결정하는 것이 남편이라면, 그 여성은 접근은 있지만 통제는 없는 상태다. 노동은 했지만 권력은 없는 상태. 개발 사업이 이 둘을 구분하지 못하면, 여성의 노동 투입만 늘리고 권한은 그대로 두는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 수십 년간의 GAD 연구가 반복적으로 확인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
그래서 '의사결정권이 누구에게 있는가'라는 질문은 분명 정당성이 있다. 숫자로 보이지 않는 권력 관계를, 회의록에 기록되지 않는 지배력을 드러내려는 시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좋은 질문도 맥락 없이 던져지면 오히려 현장의 진실을 가릴 수 있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도 그 미소가 떠올랐다. 나는 무엇을 보고 온 걸까. 무엇을 보지 못한 걸까. 서울에 돌아와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카포에타, 토포사족, 남수단의 목축 사회. 온갖 인류학 자료를 끌어모았다. 읽을수록 보이는 것들이 많아졌다. 그리고 읽을수록 부끄러움이 커졌다. 거기서 나는 뭘 하고 온 거지. 그 질문이 자꾸 따라왔다.
결국 카포에타 지역 심층 맥락 보고서(공선주, 2026)를 따로 작성했다. 이 글은 그 보고서를 쓰면서 정리된 정보와 생각들을 바탕으로 한다.
물론 이 글을 읽고 이런 생각이 들 수 있다. 출장 전에 사전 맥락 조사를 하고 가면 되지 않느냐고. 당연히 그렇다. 그러나 인도적 지원이나 국제개발협력 현장은 늘 시급하게 돌아간다. 카포에타의 토포사족처럼 특정 지역의 깊은 젠더 역학과 문화적 맥락은 일반적인 가이드라인이나 인터넷 검색으로 나오지 않는다. 전문적인 인류학 논문이나 현지 보고서를 뒤져야 한다. 출장 전의 짧은 준비 기간에 이것을 완벽히 소화하기란 물리적으로 어렵다.
카포에타에 가기 전에 토포사족의 가축 경제에 관한 논문을 읽었었지만, '아, 그렇구나' 하고 지식으로만 넘겨버렸다. 그러나 현장에서 전문가의 질문과 주민의 미소 사이에 흐르는 그 묘한 공기를 직접 체험했기에, 서울에 돌아와 찾아본 텍스트들이 비로소 살아있는 지식으로 다가왔다. 현장에서 느낀 그 불편함이 없었다면, 심층 보고서를 작성할 만큼의 절실함도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2. 카포에타를 이해하기 위한 최소한의 맥락
※ 본고에서 토포사족을 직접 다룬 인류학 문헌은 Müller(1989, 2008) 정도에 국한된다. 이는 토포사족에 대한 학술적 자료 자체가 희소한 탓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전문적인 연구자의 길을 걷기보다 현장을 발로 뛰는 활동가인 필자가 지닌 학술적 한계 때문이기도 하다. 따라서 부족한 데이터와 필자의 학술적 역량을 보완하고자, 인접 목축 사회인 마사이족(Talle, 1988)이나 누에르족(Hutchinson, 1996)의 사례를 비교해서 참조하였음을 밝힌다. 현장에서 목격한 진실에 조금이라도 더 다가가고자 노력한 흔적으로 읽히기를 바란다.
1) 소는 재산이 아니다: 소가 만드는 사회적 관계망
카포에타에서 소는 가축이 아니다. 화폐다. 사회적 관계의 증거다. 결혼 지참금은 소로 지불되고, 씨족 간 분쟁의 배상도 소로 이루어진다(Müller, 1989). 한 남성이 소를 얼마나 보유하고 있느냐는 그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 얼마나 촘촘한 채무-호혜 관계(debt-reciprocity network)를 맺고 있느냐와 같은 말이다.
그러니 '소 판매를 누가 결정합니까?'라는 질문에 남성이라고 답하는 것은 틀리지 않다(Müller, 1989). 그러나 그 이면은 훨씬 복잡하다. 아들의 결혼을 위해 소를 내놓아야 할 때, 아버지는 먼저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눈다. 어느 소를 팔아야 하는지, 지금이 적기인지, 상대 집안의 요구가 과한지. 어머니는 그것을 누구보다 잘 안다. 소를 매일 돌봐온 것이 그이기 때문이다. 소의 건강 상태, 임신 여부, 오늘 시장에서의 가격. 공식 결정권은 남성에게 있지만, 그 결정이 딛고 서는 정보는 여성에게서 나온다(Müller, 1989).
고모의 역할도 그렇다. 협상 자리에는 남성들이 앉는다. 그러나 그 자리에 오르기 전, 신부 집안의 평판, 이전 혼인에서의 갈등 이력, 씨족 내 관계의 지형은 여성들의 비공식 네트워크를 통해 먼저 취합된다. 이 역할을 토포사 사회에서 고모(paternal aunt)가 담당한다는 것은 부계 씨족 사회의 일반적 인류학적 특성(Kinship Theory)에서 추론(공선주, 2026)할 수 있다. 협상 테이블은 남성의 것이지만, 그 테이블 위에 오르는 정보는 여성의 것이다.
2) 우유, 마타냐, 채소: 여성의 경제 관할 영역들
소를 팔 권리는 없다. 그러나 소에서 짜낸 우유는 여성이 관할한다. 어느 아이에게 얼마를 먹일지, 버터로 가공할지, 시장에 팔지(Talle, 1988). 사소해 보이지만 가구 내 영양 공급을 조절하는 권력이다. 버터를 만드는 기술은 어머니에서 딸로 전수된다. 이 버터는 음식에도, 피부와 머리카락을 보호하는 데도, 시장 거래에도 쓰인다. 가공 방법과 사용처를 결정하는 것은 여성이다(Talle, 1988). 이는 마사이족 여성의 사례를 분석한 Talle(1988)의 연구에서도 유사하게 확인되는 동아프리카 목축 사회의 공통적 특성으로 보인다.
마타냐(matanya)는 수수로 담그는 전통 발효주다. 카포에타 지역에서 주로 여성들이 만들고 판다고 알려져 있으나, 이에 대한 직접적인 인류학 문헌은 확인되지는 않는다. 수수를 불리고, 발아시키고, 건조하고, 끓이고, 발효시키는 3-4일의 공정 전체가 여성의 것이다. 언제 담글지, 얼마나 만들지, 어느 시장에 내다 팔지, 가격을 어떻게 협상할지. 구매자와 흥정할 때 여성들은 그날의 공급량, 경쟁 판매자 수, 날씨와 행사 일정을 읽는다. 상당히 정교한 시장 판단 능력이다. 그러나 수익에는 보이지 않는 상한선이 있다. 소액은 여성이 직접 쓴다. 일정 수준을 넘으면 남편에게 보고하거나 씨족 공동 재원으로 흡수되는 압력이 생긴다. 명문화되어 있지 않지만 사회적으로 감지된다.
이것은 카포에타를 포함한 남수단 지역의 비농업 시장 활동 데이터와도 일치한다. 여성의 시장 참여 비율이 가장 높은 두 가지 활동이 바로 주류 양조와 땔감 수집이다(MESP, 2018). 체크리스트가 포착하지 못하는 여성의 결정들이 실제로 가구 생존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채소 텃밭도 여성의 관할이다. 오크라, 고구마 잎, 호박. 심고 가꾸고 수확하고 파는 것, 모두 여성이 결정한다(Boserup, 1970). 그러나 외부 지원으로 관개 시설이 들어오면 이 구조가 흔들린다. 소규모일 때는 '여성의 소소한 살림'으로 여겨지던 것이, 수익이 커지는 순간 남성의 통제 욕구가 작동하기 시작한다. Talle(1988)이 연구한 케냐 마사이족에서도 이 메커니즘이 보인다. 현금 경제가 도입되자 여성의 우유 배분권이 급속히 하락했다. 우유의 시장 가치가 높아지자 남성들이 그 결정권을 가져갔다. 자산의 가치가 임계점을 넘는 순간, '여성의 것'은 '가구의 것', 즉 남성의 관할이 된다.
3) 토쿨, 씨족, 그리고 여성의 지위 축적
토포사 사회에서 거주 형태는 토쿨(tukul), 전통 원형 가옥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다처제가 일반적인 이 사회에서 한 남성의 아내들은 각각 독립된 토쿨을 가진다(Müller, 1989). 토쿨은 주거 공간이 아니라 하나의 생산 단위다. 수수 비축, 우유 관리, 아이들의 양육, 마타냐 생산이 이 공간 안에서 이루어진다. 필자는 2026년 2월 카포에타 현지 방문에서 나뭇가지 울타리로 둘러싸인 여러개의 토쿨이 하나의 가구 단위를 이루는 구조를 확인했다.
© 2026 공선주
여성은 결혼과 함께 남편의 씨족으로 편입된다. 친정의 자원 접근권을 잃고, 시댁 씨족의 위계 속에서 지위를 처음부터 쌓아야 한다. 아이를 낳으면서, 특히 아들을 낳으면서, 시어머니와의 관계를 유지하면서 서서히 높아진다. 이미 어른이 된 아들을 둔 연장자 여성은 씨족 내에서 상당한 발언권을 갖는다. 유사한 씨족 편입 구조는 인접 목축 사회인 누에르족에서도 확인된다(Hutchinson, 1996).
외부에서 파견된 전문가가 보는 '여성'은 동질적인 집단이 아니다. 갓 결혼한 며느리와 아들을 장성시킨 시어머니는 같은 씨족 안에서 완전히 다른 자리에 있다. 연장자 여성의 비공식적 의견은 남성들의 공식 결정에 실질적으로 반영된다. 이 역학을 보지 못하면 '남성이 결정한다'는 단순한 결론만 남는다.
4) 분쟁과 기후 위기가 바꾼 결정의 지형
카포에타는 남수단에서 가장 건조한 지역 중 하나다. 최근 수년간 반복된 건조 기후와 가축 폐사로 인해 주민들의 자산은 심각하게 고갈되어 왔다. 2025년 들어 강수 상황이 개선되며 폐사율은 12% 수준으로 낮아졌으나, 여전히 카포에타 지역은 국지적인 건조 현상과 외래 잡초의 확산으로 목축 기반의 생계가 위협받고 있다(FAO & WFP, 2026). 가축을 잃는다는 것은 씨족 간 관계망이 붕괴되고, 결혼 지참금을 마련할 능력이 사라지고, 남성의 사회적 지위가 흔들린다는 의미다.
이 위기에서 또 생각지도 못한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Müller-Dempf(2008)는 건기에 소 떼가 멀리 이동하는 동안 정착지에는 노인과 대부분의 아이들, 그리고 여성이 남는다고 기술한다. 이 구조가 위기 상황에서 더 극단적으로 나타난다. 남성이 목초지를 찾아 떠나거나 도시로 나가는 동안, 정착지에 남은 여성들이 가구 경제의 실질적 담당자가 된다. 마타냐 판매, 채소 재배, 땔감 판매. 여성의 결정권은 사실상 확대된다. 그러나 이 확대는 공식적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위기가 해소되면 원래 구조로 환원된다.
여성의 역할은 가구 경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2021년 카포에타에서 토포사족과 부야(Buya)족 청년들 간의 무력 분쟁이 발생했을 때, 여성들이 결집하여 평화 결의안 수정을 지지하며 화해를 이끌어낸 사례가 있다(UNMISS, 2021). 이것은 여성이 '비가시적' 결정의 영역을 넘어 공동체 평화 구축의 실질적 주체로 기능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외부 지원이 이 시점에 들어온다면 어떻게 되는가. 현금 이전이 '가구주' 명의로 집행되면, 가구를 실제로 운영하고 있는 여성이 아닌 자리를 비운 남성의 이름으로 자원이 등록된다. 지원이 끝난 후 남성이 돌아왔을 때 그 통제권은 어디로 가는가. 이 질문을 하지 않으면, 지원은 현존하는 불평등을 보이지 않게 강화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3. 맥락 없는 질문이 만드는 공백
1) '결정'이라는 단어의 간극
카포에타의 토포사 여성에게 '의사결정권'이라는 단어를 통역을 거쳐 전달할 때, 그 단어가 지시하는 대상은 무엇인가. 집을 어디에 짓는지의 결정인가. 우유를 누구에게 나누어줄지의 결정인가. 마타냐를 만들어 시장에 팔지 말지의 결정인가. 채소를 팔고 받은 현금을 내가 쥘지 남편에게 넘길지의 결정인가. 소 한 마리를 팔아 딸의 결혼 지참금에 보태는 결정인가.
이 결정들은 같은 가구 안에서도 결정권자가 다르다. '의사결정권'이라는 하나의 단어 속에 이 모든 것을 넣으면, 질문은 정확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 무엇도 묻지 않는 것이 된다.
2) 광장의 결정과 비가시적 결정
토포사 사회에서 공식적 결정은 남성들의 공론장에서 이루어진다. 나무 그늘 아래 어른들이 모이고, 씨족 대표들이 발언하고, 합의가 이루어진다(Müller, 1989). 외부인이 마을을 방문해 '누가 결정합니까?'라고 물으면, 이 공론장의 풍경이 즉각 떠오른다. 답은 자연스럽게 '남성 어른', '가장', '씨족 대표'가 된다.
그러나 그 바깥에서는 다른 종류의 결정이 내려진다. 저녁을 준비하면서 어머니는 남은 수수가 며칠치인지 계산한다. 큰아이의 학비를 내려면 마타냐를 얼마나 더 팔아야 하는지를 따진다. 시어머니에게 이번 주 우유를 얼마나 드릴지, 아픈 둘째에게 어떤 약초를 달여줄지를 결정한다. 이 결정들은 마을 광장에 기록되지 않는다. 통역사도 이것을 '결정'이라고 옮기지 않을 수 있다.
외부인이 보는 의사결정의 지형과 실제 가구 생존을 지탱하는 의사결정의 지형은 다르다. 전자는 공식적이고 가시적이며 남성 중심적이다. 후자는 비공식적이고 비가시적이며 상당 부분 여성의 영역이다. 젠더 모니터링이 전자만 포착한다면? 그렇다. 우리는 현장을 반쪽만 이해하게 된다.
3) 한국의 문법으로 던진 질문
젠더 체크리스트에는 이런 항목이 있다. '가정 폭력이 발생하면 누가 해결합니까?' 또 이런 항목도 있다. '여성이 사업에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습니까?'
토포사 사회를 비롯해 Hutchinson(1996)이 연구한 누에르족 등 남수단 목축 사회 전반에서 가정 내 갈등은 씨족 내부의 어른, 특히 남편의 아버지나 삼촌이 개입하는 방식으로 처리된다. 이것은 '개인 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씨족 대 씨족'의 문제다. 공식적인 신고 체계나 외부 기관의 개입은 이 구조 안에서 낯설거나, 심지어 씨족의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읽힐 수 있다. '자유롭게'라는 개념도 마찬가지다. 여성의 모든 활동은 씨족의 위계와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다. 남편의 허락이 필요한 것인지, 시어머니의 묵인이 필요한 것인지, 씨족 어른의 동의가 필요한 것인지. 이 구조를 통과한 다음에야 비로소 '참여'가 이루어진다.
그러니 이 질문들은 이 구조 전체를 무시한 채, 경찰서와 상담 센터가 있고 개인의 자유의지가 전제된 한국의 문법으로 던져진 것이다. 통역사는 이것을 어떻게 옮겨야 할지 난감하고, 응답자는 짧고 형식적인 답변을 내놓는다. '네.' 그 답변이 체크리스트를 채운다. 그 체크리스트가 보고서가 된다. 그 보고서가 반쪽짜리 현장을 설명한다.
4. 그렇다면 무엇을 물어야 하는가
'의사결정권이 누구한테 있어요?'라는 질문을 버리자는 것이 아니다. 그 질문 앞에 무엇이 와야 하는지를 다시 생각하고 싶다.
첫째, 이 지역의 주요 생계 자산이 무엇인지를 먼저 파악한다. 카포에타라면 소, 우유, 수수, 물이 핵심 자산이다. 각각의 자산에 대한 소유권과 이용권이 역사적으로, 관습적으로 어떻게 배분되어 있는지를 먼저 이해해야 한다. 누가 소를 돌보는가와 누가 소를 파는가는 다른 질문이다.
둘째, 활동별로 성별 분업을 구체적으로 확인한다. 누가 우유를 짜는가. 누가 마타냐를 담그는가. 누가 채소를 파는가. 누가 씨앗을 고르는가. 누가 물을 길어오는가. 이 노동의 분포가 자원 통제권의 분포와 일치하는지를 본다.
셋째, 광장의 결정과 비가시적 결정을 분리해서 본다. 광장에서 이루어지는 결정과 그 바깥에서 이루어지는 보이지 않는 결정을 구분한다. 고모가 혼인 협상 전날 밤 어디서 누구와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를 보는 것이, 협상 자리에서 누가 말하는지를 보는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알려준다.
넷째, 지원 이후의 변화를 미리 시뮬레이션한다(변화 이론). 현금은 누구의 손에 들어가는가. 관개 시설이 생기면 물 사용 결정권이 누구에게 가는가. 생산량이 늘면 판매 결정권이 어떻게 이동하는가. 이 질문들이 사업 설계 단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이것은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맥락 없이 모니터링 도구를 빠르게 적용해서 얻은 데이터가 현장을 왜곡하는 보고서로 이어진다면, 활동가들의 노고를 헛되게 만들 수 있다.
Dey(1981)가 감비아의 사례에서 보여준 것처럼, 개발 지원이 자산의 가치를 높이는 순간 기존에 여성이 가졌던 관할 영역이 남성의 통제 아래로 넘어갈 수 있다. 이 위험을 사전에 감지하려면, 지원이 들어오기 전에 현장의 결정권 지형을 충분히 이해해야 한다.
5. 맥락 없이, 전문성도 없다
카포에타에서 '의사결정권이 누구한테 있어요?'라고 묻는 것은, 그 지역에서 소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우유 배분권이 어떤 권력인지, 마타냐 한 양동이의 가격 협상이 어떤 역량을 요구하는지, 고모의 비공식 발언이 혼인 협상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모르는 채로 던지는 질문이다.
토포사 여성은 아무 결정도 하지 않는 존재가 아니다. 그들은 매일 수수 비축량을 계산하고, 우유 배분을 결정하고, 마타냐 가격을 협상하고, 아픈 아이에게 무엇을 먹일지 판단하고, 남편의 씨족 내 갈등에서 어떤 편을 들어야 하는지를 저울질한다. 이 결정들은 가족의 생존과 씨족의 관계망을 유지하는 데 핵심적이다.
그러나 이 결정들은 광장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공식 회의록에 기록되지 않는다. 통역을 통해 한 마디로 답할 수 있는 질문에 포착되지 않는다.
출장을 다녀오고 나서야 내가 현장에서 무엇을 보지 못했는지를 알았다. 그들의 삶을 제대로 묻지 못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게 참으로 부끄러웠다. 아마 이 글을 쓰는 이유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젠더 전문성은 특정 도구를 다루는 능력이 아니다. 그 도구가 작동하는 사회적 맥락을 읽는 능력이다. 카포에타에서 보이지 않는 결정들을 보려면, 광장에서 질문을 던지기 전에 그 자리에 충분히 오래 머물러야 한다. 관계를 만들어야 한다. 그 관계 속에서 들려오는 것들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적어도 그만한 시간이 허락되는 모니터링이어야 한다.
참고 문헌
- Boserup, E. (1970). Woman's Role in Economic Development. St. Martin's Press.
- Dey, J. (1981). Gambian Women: Unequal Partners in Rice Development Projects? Journal of Development Studies, 17(3), 109-122.
- FAO & WFP. (2026). Special Report: 2025 FAO/WFP Crop and Food Security Assessment Mission (CFSAM) to the Republic of South Sudan - 19 March 2026 (CFSAMs Special Reports, 01/2026). Rome: Food and Agriculture Organization of the United Nations; World Food Programme.
- Hutchinson, S. (1992). The cattle of money and the cattle of girls among the Nuer. American Ethnologist, 19(2), 294-316.
- Hutchinson, S. (1996). Nuer Dilemmas: Coping with Money, War, and the State.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 MESP. (2018). Market-oriented nonfarm activities in selected counties of South Sudan.
- Müller, H. K. (1989). Changing Generations: Dynamics of generation- and age-sets in Southern Sudan (Toposa) and Northeastern Kenya (Turkana). Breitenbach.
- Müller-Dempf, H. (2008). The Ngibokoi Dilemma: generation-sets and social system engineering in times of stress – an example from the Toposa of Southern Sudan. Max Planck Institute for Social Anthropology Working Paper No. 106.
- Talle, A. (1988). Women at a Loss: Changes in Maasai Pastoral Strategies and Their Effects on Gender Relations. University of Stockholm.
- UNMISS. (2021). South Sudan: Women rally to support amendment of peace resolutions to reconcile youth of Toposa and Buya.
- United Nations (1995). Report of the Fourth World Conference on Women. UN Department of Public Information.
- 공선주 (2026). 남수단 카포에타 심층맥락 통합분석보고서 (내부용).
필자 약력
2016년 사단법인 아디를 공동 창립한 인도적 지원 활동가연구자다. 아시아 분쟁 지역에서 여성, 인도적 지원, 그리고 '기억과 기록'을 주제로 공동체 구축과 평화 연대를 이어가고 있다. 2006년부터 아시아 곳곳의 현장에서 관계를 맺으며, 국제개발협력이 거대 담론을 넘어 하나의 지역 운동으로 자리 잡기를 꿈꾼다. 인도주의 활동이란 결국 '그 사람의 삶에 함께하는 것'이라는 믿음으로, 서로에게 따뜻한 지지와 응원이 되는 공동체를 만드는 데 전념하고 있다.
보이지 않는 '결정'들
남수단에서 묻지 못한 것들에 대하여
공선주
© 2026 공선주
하늘 위에서 바라본 풍경은 허허벌판에 드문드문 보이는 가옥으로 보이는 구조물들, 그리고 꼬불꼬불 길게 나 있는 흙길 뿐이었다. 작은 프로펠러 경비행기를 타고 한 시간을 가도 가도 보이는 건 같은 풍경. 이곳에 사람들의 삶을 물으러 가는 길이었다.
남수단 동부 에콰토리아(Eastern Equatoria) 주, 카포에타(Kapoeta). 2월의 건기, 이곳을 처음 밟는 사람은 누구든 먼저 열기와 먼지를 만난다. 남수단에서 가장 건조한 지역 중 하나인 이곳은 건기가 되면 흙먼지가 사방을 덮고, 나무 그늘은 드물고 길은 멀다. 주민 대다수는 토포사(Toposa)족으로, 수천 년을 이어온 이동 목축의 리듬 속에서 살아왔다.
어느 날 외부에서 파견된 이른바 '사업평가 전문가' 그룹이 주민들 앞에 앉았다. 노트를 펼치고, 체크리스트를 들고. 그리고 물었다.
"이렇게 하는 건 누가 결정해요? (의사결정권이 누구한테 있어요?)"
통역사가 현지어로 옮기는 사이, 잠시 주민들 사이에 미소가 흘렀다. 주민들은 일체의 고민도 없이, 위원회에서 '함께' 결정한다고 답했다. 전문가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체크리스트에 무언가를 적었다. 그리고 다음 질문이 시작됐다.
나는 전문가의 자리로 선 그 시공간에서 매번 어쩌지 못할 마음의 동요를 느낀다. 그들과 외부인 나, 그리고 이곳을 처음 찾는 이가 갖는 간극이 쉽사리 좁혀지지 않으리라는 것이 너무 명백하기에, 자격 없이 의자 하나를 차지하고 있다는 부끄러움과 어디서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를 막막함 때문이다.
그 질문 자체가 문제였을까. 아니면 그 질문이 던져진 방식이 문제였을까. 그 질문 자체가 그들의 삶과 너무 동떨어져 있어서였을까. 너무 뻔한 공식적인 답변이라서였을까. 주민들의 그 짧은 답변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이 글은 그 질문을 탓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 질문이 무엇을 보지 못했는지를, 카포에타의 먼지 속에서 내가 목격한 것들을 통해 풀어보려 한다.
1. 왜 우리는 '의사결정권'을 묻는가
'의사결정권이 누구에게 있느냐'는 질문은 어디서 왔을까. '의사결정권'은 젠더 주류화(Gender Mainstreaming) 분석 도구 중 하나인 자원 접근-통제 분석(Access and Control Analysis)에서 비롯된다. 이 접근은 개발 프로젝트가 단순히 여성을 수혜자 목록에 올리는 것을 넘어서, 자원에 대한 실질적 통제권이 성별에 따라 어떻게 배분되는지를 가시화하려는 시도다.
이 질문이 개발 현장에 등장하게 된 것은 1970년대의 불편한 자각에서 시작된다. Boserup(1970)은 Woman's Role in Economic Development에서 당시 개발 원조의 맹점을 정면으로 짚었다. 아프리카 농촌 여성들은 식량 작물 재배의 60-80%를 담당하는 핵심 생산자였다. 그러나 당시 개발 사업은 '농부'를 남성으로 전제했다. 농업 기술 교육, 개량 종자, 비료, 농기계는 모두 남성 가구주에게 전달되었다. 여성은 노동은 했지만 자산은 갖지 못했고, 결정은 내리지 못했다. 개발이 진행될수록 여성의 경제적 지위는 오히려 하락했다. 의도하지 않은 결과였지만, 구조적으로는 예측 가능한 결과였다.
이 문제의식은 1995년 베이징 세계여성대회(United Nations, 1995)를 거치면서 국제 개발 의제의 중심으로 들어왔다. 단순히 여성의 참여율을 높이는 것, 즉 몇 명의 여성이 훈련을 받았는가, 몇 명이 회의에 참석했는가를 세는 방식으로는 실질적 변화를 만들 수 없다는 반성이었다. 여성이 회의실에 앉아 있더라도 발언권이 없다면, 수혜자 명단에 이름이 올라 있더라도 그 자원을 스스로 통제할 수 없다면, 숫자는 숫자일 뿐이다.
그래서 젠더와 개발(GAD) 연구자들은 '접근(access)'과 '통제(control)'를 구분하기 시작했다. 접근은 자원을 사용할 수 있는 기회의 문제다. 여성도 농기구를 쓸 수 있는가. 여성도 훈련에 참석할 수 있는가. 여성도 시장에 나갈 수 있는가. 통제는 그 한 발 너머의 문제다. 농기구를 새로 살지 말지를 누가 결정하는가. 수확한 작물을 팔지 저장할지를 누가 결정하는가. 판 수익금을 어디에 쓸지를 누가 결정하는가.
여성이 하루 종일 밭에서 일해도, 수확물을 팔지 말지를 결정하는 것이 남편이라면, 판 돈을 어디에 쓸지를 결정하는 것이 남편이라면, 그 여성은 접근은 있지만 통제는 없는 상태다. 노동은 했지만 권력은 없는 상태. 개발 사업이 이 둘을 구분하지 못하면, 여성의 노동 투입만 늘리고 권한은 그대로 두는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 수십 년간의 GAD 연구가 반복적으로 확인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
그래서 '의사결정권이 누구에게 있는가'라는 질문은 분명 정당성이 있다. 숫자로 보이지 않는 권력 관계를, 회의록에 기록되지 않는 지배력을 드러내려는 시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좋은 질문도 맥락 없이 던져지면 오히려 현장의 진실을 가릴 수 있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도 그 미소가 떠올랐다. 나는 무엇을 보고 온 걸까. 무엇을 보지 못한 걸까. 서울에 돌아와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카포에타, 토포사족, 남수단의 목축 사회. 온갖 인류학 자료를 끌어모았다. 읽을수록 보이는 것들이 많아졌다. 그리고 읽을수록 부끄러움이 커졌다. 거기서 나는 뭘 하고 온 거지. 그 질문이 자꾸 따라왔다.
결국 카포에타 지역 심층 맥락 보고서(공선주, 2026)를 따로 작성했다. 이 글은 그 보고서를 쓰면서 정리된 정보와 생각들을 바탕으로 한다.
물론 이 글을 읽고 이런 생각이 들 수 있다. 출장 전에 사전 맥락 조사를 하고 가면 되지 않느냐고. 당연히 그렇다. 그러나 인도적 지원이나 국제개발협력 현장은 늘 시급하게 돌아간다. 카포에타의 토포사족처럼 특정 지역의 깊은 젠더 역학과 문화적 맥락은 일반적인 가이드라인이나 인터넷 검색으로 나오지 않는다. 전문적인 인류학 논문이나 현지 보고서를 뒤져야 한다. 출장 전의 짧은 준비 기간에 이것을 완벽히 소화하기란 물리적으로 어렵다.
카포에타에 가기 전에 토포사족의 가축 경제에 관한 논문을 읽었었지만, '아, 그렇구나' 하고 지식으로만 넘겨버렸다. 그러나 현장에서 전문가의 질문과 주민의 미소 사이에 흐르는 그 묘한 공기를 직접 체험했기에, 서울에 돌아와 찾아본 텍스트들이 비로소 살아있는 지식으로 다가왔다. 현장에서 느낀 그 불편함이 없었다면, 심층 보고서를 작성할 만큼의 절실함도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2. 카포에타를 이해하기 위한 최소한의 맥락
※ 본고에서 토포사족을 직접 다룬 인류학 문헌은 Müller(1989, 2008) 정도에 국한된다. 이는 토포사족에 대한 학술적 자료 자체가 희소한 탓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전문적인 연구자의 길을 걷기보다 현장을 발로 뛰는 활동가인 필자가 지닌 학술적 한계 때문이기도 하다. 따라서 부족한 데이터와 필자의 학술적 역량을 보완하고자, 인접 목축 사회인 마사이족(Talle, 1988)이나 누에르족(Hutchinson, 1996)의 사례를 비교해서 참조하였음을 밝힌다. 현장에서 목격한 진실에 조금이라도 더 다가가고자 노력한 흔적으로 읽히기를 바란다.
1) 소는 재산이 아니다: 소가 만드는 사회적 관계망
카포에타에서 소는 가축이 아니다. 화폐다. 사회적 관계의 증거다. 결혼 지참금은 소로 지불되고, 씨족 간 분쟁의 배상도 소로 이루어진다(Müller, 1989). 한 남성이 소를 얼마나 보유하고 있느냐는 그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 얼마나 촘촘한 채무-호혜 관계(debt-reciprocity network)를 맺고 있느냐와 같은 말이다.
그러니 '소 판매를 누가 결정합니까?'라는 질문에 남성이라고 답하는 것은 틀리지 않다(Müller, 1989). 그러나 그 이면은 훨씬 복잡하다. 아들의 결혼을 위해 소를 내놓아야 할 때, 아버지는 먼저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눈다. 어느 소를 팔아야 하는지, 지금이 적기인지, 상대 집안의 요구가 과한지. 어머니는 그것을 누구보다 잘 안다. 소를 매일 돌봐온 것이 그이기 때문이다. 소의 건강 상태, 임신 여부, 오늘 시장에서의 가격. 공식 결정권은 남성에게 있지만, 그 결정이 딛고 서는 정보는 여성에게서 나온다(Müller, 1989).
고모의 역할도 그렇다. 협상 자리에는 남성들이 앉는다. 그러나 그 자리에 오르기 전, 신부 집안의 평판, 이전 혼인에서의 갈등 이력, 씨족 내 관계의 지형은 여성들의 비공식 네트워크를 통해 먼저 취합된다. 이 역할을 토포사 사회에서 고모(paternal aunt)가 담당한다는 것은 부계 씨족 사회의 일반적 인류학적 특성(Kinship Theory)에서 추론(공선주, 2026)할 수 있다. 협상 테이블은 남성의 것이지만, 그 테이블 위에 오르는 정보는 여성의 것이다.
2) 우유, 마타냐, 채소: 여성의 경제 관할 영역들
소를 팔 권리는 없다. 그러나 소에서 짜낸 우유는 여성이 관할한다. 어느 아이에게 얼마를 먹일지, 버터로 가공할지, 시장에 팔지(Talle, 1988). 사소해 보이지만 가구 내 영양 공급을 조절하는 권력이다. 버터를 만드는 기술은 어머니에서 딸로 전수된다. 이 버터는 음식에도, 피부와 머리카락을 보호하는 데도, 시장 거래에도 쓰인다. 가공 방법과 사용처를 결정하는 것은 여성이다(Talle, 1988). 이는 마사이족 여성의 사례를 분석한 Talle(1988)의 연구에서도 유사하게 확인되는 동아프리카 목축 사회의 공통적 특성으로 보인다.
마타냐(matanya)는 수수로 담그는 전통 발효주다. 카포에타 지역에서 주로 여성들이 만들고 판다고 알려져 있으나, 이에 대한 직접적인 인류학 문헌은 확인되지는 않는다. 수수를 불리고, 발아시키고, 건조하고, 끓이고, 발효시키는 3-4일의 공정 전체가 여성의 것이다. 언제 담글지, 얼마나 만들지, 어느 시장에 내다 팔지, 가격을 어떻게 협상할지. 구매자와 흥정할 때 여성들은 그날의 공급량, 경쟁 판매자 수, 날씨와 행사 일정을 읽는다. 상당히 정교한 시장 판단 능력이다. 그러나 수익에는 보이지 않는 상한선이 있다. 소액은 여성이 직접 쓴다. 일정 수준을 넘으면 남편에게 보고하거나 씨족 공동 재원으로 흡수되는 압력이 생긴다. 명문화되어 있지 않지만 사회적으로 감지된다.
이것은 카포에타를 포함한 남수단 지역의 비농업 시장 활동 데이터와도 일치한다. 여성의 시장 참여 비율이 가장 높은 두 가지 활동이 바로 주류 양조와 땔감 수집이다(MESP, 2018). 체크리스트가 포착하지 못하는 여성의 결정들이 실제로 가구 생존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채소 텃밭도 여성의 관할이다. 오크라, 고구마 잎, 호박. 심고 가꾸고 수확하고 파는 것, 모두 여성이 결정한다(Boserup, 1970). 그러나 외부 지원으로 관개 시설이 들어오면 이 구조가 흔들린다. 소규모일 때는 '여성의 소소한 살림'으로 여겨지던 것이, 수익이 커지는 순간 남성의 통제 욕구가 작동하기 시작한다. Talle(1988)이 연구한 케냐 마사이족에서도 이 메커니즘이 보인다. 현금 경제가 도입되자 여성의 우유 배분권이 급속히 하락했다. 우유의 시장 가치가 높아지자 남성들이 그 결정권을 가져갔다. 자산의 가치가 임계점을 넘는 순간, '여성의 것'은 '가구의 것', 즉 남성의 관할이 된다.
3) 토쿨, 씨족, 그리고 여성의 지위 축적
토포사 사회에서 거주 형태는 토쿨(tukul), 전통 원형 가옥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다처제가 일반적인 이 사회에서 한 남성의 아내들은 각각 독립된 토쿨을 가진다(Müller, 1989). 토쿨은 주거 공간이 아니라 하나의 생산 단위다. 수수 비축, 우유 관리, 아이들의 양육, 마타냐 생산이 이 공간 안에서 이루어진다. 필자는 2026년 2월 카포에타 현지 방문에서 나뭇가지 울타리로 둘러싸인 여러개의 토쿨이 하나의 가구 단위를 이루는 구조를 확인했다.
© 2026 공선주
여성은 결혼과 함께 남편의 씨족으로 편입된다. 친정의 자원 접근권을 잃고, 시댁 씨족의 위계 속에서 지위를 처음부터 쌓아야 한다. 아이를 낳으면서, 특히 아들을 낳으면서, 시어머니와의 관계를 유지하면서 서서히 높아진다. 이미 어른이 된 아들을 둔 연장자 여성은 씨족 내에서 상당한 발언권을 갖는다. 유사한 씨족 편입 구조는 인접 목축 사회인 누에르족에서도 확인된다(Hutchinson, 1996).
외부에서 파견된 전문가가 보는 '여성'은 동질적인 집단이 아니다. 갓 결혼한 며느리와 아들을 장성시킨 시어머니는 같은 씨족 안에서 완전히 다른 자리에 있다. 연장자 여성의 비공식적 의견은 남성들의 공식 결정에 실질적으로 반영된다. 이 역학을 보지 못하면 '남성이 결정한다'는 단순한 결론만 남는다.
4) 분쟁과 기후 위기가 바꾼 결정의 지형
카포에타는 남수단에서 가장 건조한 지역 중 하나다. 최근 수년간 반복된 건조 기후와 가축 폐사로 인해 주민들의 자산은 심각하게 고갈되어 왔다. 2025년 들어 강수 상황이 개선되며 폐사율은 12% 수준으로 낮아졌으나, 여전히 카포에타 지역은 국지적인 건조 현상과 외래 잡초의 확산으로 목축 기반의 생계가 위협받고 있다(FAO & WFP, 2026). 가축을 잃는다는 것은 씨족 간 관계망이 붕괴되고, 결혼 지참금을 마련할 능력이 사라지고, 남성의 사회적 지위가 흔들린다는 의미다.
이 위기에서 또 생각지도 못한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Müller-Dempf(2008)는 건기에 소 떼가 멀리 이동하는 동안 정착지에는 노인과 대부분의 아이들, 그리고 여성이 남는다고 기술한다. 이 구조가 위기 상황에서 더 극단적으로 나타난다. 남성이 목초지를 찾아 떠나거나 도시로 나가는 동안, 정착지에 남은 여성들이 가구 경제의 실질적 담당자가 된다. 마타냐 판매, 채소 재배, 땔감 판매. 여성의 결정권은 사실상 확대된다. 그러나 이 확대는 공식적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위기가 해소되면 원래 구조로 환원된다.
여성의 역할은 가구 경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2021년 카포에타에서 토포사족과 부야(Buya)족 청년들 간의 무력 분쟁이 발생했을 때, 여성들이 결집하여 평화 결의안 수정을 지지하며 화해를 이끌어낸 사례가 있다(UNMISS, 2021). 이것은 여성이 '비가시적' 결정의 영역을 넘어 공동체 평화 구축의 실질적 주체로 기능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외부 지원이 이 시점에 들어온다면 어떻게 되는가. 현금 이전이 '가구주' 명의로 집행되면, 가구를 실제로 운영하고 있는 여성이 아닌 자리를 비운 남성의 이름으로 자원이 등록된다. 지원이 끝난 후 남성이 돌아왔을 때 그 통제권은 어디로 가는가. 이 질문을 하지 않으면, 지원은 현존하는 불평등을 보이지 않게 강화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3. 맥락 없는 질문이 만드는 공백
1) '결정'이라는 단어의 간극
카포에타의 토포사 여성에게 '의사결정권'이라는 단어를 통역을 거쳐 전달할 때, 그 단어가 지시하는 대상은 무엇인가. 집을 어디에 짓는지의 결정인가. 우유를 누구에게 나누어줄지의 결정인가. 마타냐를 만들어 시장에 팔지 말지의 결정인가. 채소를 팔고 받은 현금을 내가 쥘지 남편에게 넘길지의 결정인가. 소 한 마리를 팔아 딸의 결혼 지참금에 보태는 결정인가.
이 결정들은 같은 가구 안에서도 결정권자가 다르다. '의사결정권'이라는 하나의 단어 속에 이 모든 것을 넣으면, 질문은 정확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 무엇도 묻지 않는 것이 된다.
2) 광장의 결정과 비가시적 결정
토포사 사회에서 공식적 결정은 남성들의 공론장에서 이루어진다. 나무 그늘 아래 어른들이 모이고, 씨족 대표들이 발언하고, 합의가 이루어진다(Müller, 1989). 외부인이 마을을 방문해 '누가 결정합니까?'라고 물으면, 이 공론장의 풍경이 즉각 떠오른다. 답은 자연스럽게 '남성 어른', '가장', '씨족 대표'가 된다.
그러나 그 바깥에서는 다른 종류의 결정이 내려진다. 저녁을 준비하면서 어머니는 남은 수수가 며칠치인지 계산한다. 큰아이의 학비를 내려면 마타냐를 얼마나 더 팔아야 하는지를 따진다. 시어머니에게 이번 주 우유를 얼마나 드릴지, 아픈 둘째에게 어떤 약초를 달여줄지를 결정한다. 이 결정들은 마을 광장에 기록되지 않는다. 통역사도 이것을 '결정'이라고 옮기지 않을 수 있다.
외부인이 보는 의사결정의 지형과 실제 가구 생존을 지탱하는 의사결정의 지형은 다르다. 전자는 공식적이고 가시적이며 남성 중심적이다. 후자는 비공식적이고 비가시적이며 상당 부분 여성의 영역이다. 젠더 모니터링이 전자만 포착한다면? 그렇다. 우리는 현장을 반쪽만 이해하게 된다.
3) 한국의 문법으로 던진 질문
젠더 체크리스트에는 이런 항목이 있다. '가정 폭력이 발생하면 누가 해결합니까?' 또 이런 항목도 있다. '여성이 사업에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습니까?'
토포사 사회를 비롯해 Hutchinson(1996)이 연구한 누에르족 등 남수단 목축 사회 전반에서 가정 내 갈등은 씨족 내부의 어른, 특히 남편의 아버지나 삼촌이 개입하는 방식으로 처리된다. 이것은 '개인 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씨족 대 씨족'의 문제다. 공식적인 신고 체계나 외부 기관의 개입은 이 구조 안에서 낯설거나, 심지어 씨족의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읽힐 수 있다. '자유롭게'라는 개념도 마찬가지다. 여성의 모든 활동은 씨족의 위계와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다. 남편의 허락이 필요한 것인지, 시어머니의 묵인이 필요한 것인지, 씨족 어른의 동의가 필요한 것인지. 이 구조를 통과한 다음에야 비로소 '참여'가 이루어진다.
그러니 이 질문들은 이 구조 전체를 무시한 채, 경찰서와 상담 센터가 있고 개인의 자유의지가 전제된 한국의 문법으로 던져진 것이다. 통역사는 이것을 어떻게 옮겨야 할지 난감하고, 응답자는 짧고 형식적인 답변을 내놓는다. '네.' 그 답변이 체크리스트를 채운다. 그 체크리스트가 보고서가 된다. 그 보고서가 반쪽짜리 현장을 설명한다.
4. 그렇다면 무엇을 물어야 하는가
'의사결정권이 누구한테 있어요?'라는 질문을 버리자는 것이 아니다. 그 질문 앞에 무엇이 와야 하는지를 다시 생각하고 싶다.
첫째, 이 지역의 주요 생계 자산이 무엇인지를 먼저 파악한다. 카포에타라면 소, 우유, 수수, 물이 핵심 자산이다. 각각의 자산에 대한 소유권과 이용권이 역사적으로, 관습적으로 어떻게 배분되어 있는지를 먼저 이해해야 한다. 누가 소를 돌보는가와 누가 소를 파는가는 다른 질문이다.
둘째, 활동별로 성별 분업을 구체적으로 확인한다. 누가 우유를 짜는가. 누가 마타냐를 담그는가. 누가 채소를 파는가. 누가 씨앗을 고르는가. 누가 물을 길어오는가. 이 노동의 분포가 자원 통제권의 분포와 일치하는지를 본다.
셋째, 광장의 결정과 비가시적 결정을 분리해서 본다. 광장에서 이루어지는 결정과 그 바깥에서 이루어지는 보이지 않는 결정을 구분한다. 고모가 혼인 협상 전날 밤 어디서 누구와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를 보는 것이, 협상 자리에서 누가 말하는지를 보는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알려준다.
넷째, 지원 이후의 변화를 미리 시뮬레이션한다(변화 이론). 현금은 누구의 손에 들어가는가. 관개 시설이 생기면 물 사용 결정권이 누구에게 가는가. 생산량이 늘면 판매 결정권이 어떻게 이동하는가. 이 질문들이 사업 설계 단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이것은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맥락 없이 모니터링 도구를 빠르게 적용해서 얻은 데이터가 현장을 왜곡하는 보고서로 이어진다면, 활동가들의 노고를 헛되게 만들 수 있다.
Dey(1981)가 감비아의 사례에서 보여준 것처럼, 개발 지원이 자산의 가치를 높이는 순간 기존에 여성이 가졌던 관할 영역이 남성의 통제 아래로 넘어갈 수 있다. 이 위험을 사전에 감지하려면, 지원이 들어오기 전에 현장의 결정권 지형을 충분히 이해해야 한다.
5. 맥락 없이, 전문성도 없다
카포에타에서 '의사결정권이 누구한테 있어요?'라고 묻는 것은, 그 지역에서 소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우유 배분권이 어떤 권력인지, 마타냐 한 양동이의 가격 협상이 어떤 역량을 요구하는지, 고모의 비공식 발언이 혼인 협상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모르는 채로 던지는 질문이다.
토포사 여성은 아무 결정도 하지 않는 존재가 아니다. 그들은 매일 수수 비축량을 계산하고, 우유 배분을 결정하고, 마타냐 가격을 협상하고, 아픈 아이에게 무엇을 먹일지 판단하고, 남편의 씨족 내 갈등에서 어떤 편을 들어야 하는지를 저울질한다. 이 결정들은 가족의 생존과 씨족의 관계망을 유지하는 데 핵심적이다.
그러나 이 결정들은 광장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공식 회의록에 기록되지 않는다. 통역을 통해 한 마디로 답할 수 있는 질문에 포착되지 않는다.
출장을 다녀오고 나서야 내가 현장에서 무엇을 보지 못했는지를 알았다. 그들의 삶을 제대로 묻지 못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게 참으로 부끄러웠다. 아마 이 글을 쓰는 이유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젠더 전문성은 특정 도구를 다루는 능력이 아니다. 그 도구가 작동하는 사회적 맥락을 읽는 능력이다. 카포에타에서 보이지 않는 결정들을 보려면, 광장에서 질문을 던지기 전에 그 자리에 충분히 오래 머물러야 한다. 관계를 만들어야 한다. 그 관계 속에서 들려오는 것들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적어도 그만한 시간이 허락되는 모니터링이어야 한다.
참고 문헌
필자 약력
2016년 사단법인 아디를 공동 창립한 인도적 지원 활동가연구자다. 아시아 분쟁 지역에서 여성, 인도적 지원, 그리고 '기억과 기록'을 주제로 공동체 구축과 평화 연대를 이어가고 있다. 2006년부터 아시아 곳곳의 현장에서 관계를 맺으며, 국제개발협력이 거대 담론을 넘어 하나의 지역 운동으로 자리 잡기를 꿈꾼다. 인도주의 활동이란 결국 '그 사람의 삶에 함께하는 것'이라는 믿음으로, 서로에게 따뜻한 지지와 응원이 되는 공동체를 만드는 데 전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