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의 최전선에서 : 여성의 손으로 세우는 기후회복력
박희영(컨선월드와이드 국제사업부 팀장)1)
이 글은 한국국제협력단(KOICA)과 후원자들의 지원으로 2021년부터 추진 중인 ‘방글라데시 해안가 기후회복력사업(정식 명칭: 극빈층 소득 증대 및 회복력 강화 지원사업)’을 중심으로, 기후위기의 한복판에서 여성들이 어떻게 변화를 만들어가고 있는지를 살펴 보고자 한다.
◆ — 들어가며, 기후불평등의 지형
방글라데시 남서부는 갠지스–브라마푸트라–메그나 세 강이 만들어낸 거대한 삼각주로, 평균 해발고도는 2미터 내외에 불과하다. 이 낮은 지형은 해수면 상승과 염수 침투에 극도로 취약하다. 매년 조석과 우기가 겹칠 때마다 바닷물이 내륙 깊숙이 밀려들며 농경지와 식수원을 오염시킨다. 한국의 서해안(평균 해발 20~30미터, 제방·방조제 완비)과 비교하면, 같은 해수면 상승이라도 방글라데시의 피해는 수십 배로 커진다. 한국에서 ‘기상이변’이라 불릴 사건이, 이곳에서는 곧 ‘삶의 붕괴’로 이어지는 이유다.
이처럼 기후위기의 영향은 단순히 환경의 문제를 넘어, 사회적 불평등이 가장 먼저 드러나는 장면이 된다. 남성들이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떠난 뒤, 여성들은 농사와 돌봄, 식수 확보까지 감당한다. 기후위기의 물리적 충격이 젠더 역할 구조와 결합될 때, 여성의 시간과 노동, 건강의 부담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이것이 바로 방글라데시 해안 지역이 보여주는 ‘젠더화된 위기의 얼굴’이다.
실제로 본 단체의 자체조사(2022)에 따르면, 사업지역의 극빈 여성가장의 월평균 가구소득은 7,000타카(약 8만 원)에 불과했다. 이는 방글라데시 전체 평균 가구소득 32,422타카(약 39만 원)의 1/4 수준으로, 동일한 빈곤선 아래에서도 여성의 생계 환경이 훨씬 더 취약함을 보여준다. 여성들은 시장 접근성과 금융 서비스, 이동권, 교육 등에서 구조적으로 배제되어 있으며, 경제활동의 기회마저 제한되어 있다.
결국 이 지역의 기후위기는 단순한 자연재난이 아니다. 해수면의 상승은 물리적 파괴를 가져오지만, 그보다 더 깊은 균열은 사회 구조 속 불평등에서 비롯된다. 기후위기는 불평등을 확대 재생산하는 복합적 위기이며, 그 중심에는 언제나 가장 먼저 영향을 받고, 가장 오래 버텨내는 여성들이 있다.
◆ — 여성 리더십과 회복력의 전환
이러한 문제는 사업 설계의 출발점이 되었다. 1단계(2021~2023)는 여성의 경제적 자립과 리더십 강화를 중점으로, 농업·식수 등 기초 생계 분야를 지원했다. 기후적응 농법 교육과 초기 자본 지원을 통해 2,655명의 극빈층 여성이 새로운 소득원을 확보했고, 가구 소득과 식량 접근성이 개선되었다. 이 변화는 단순한 소득 증대에 그치지 않았다. 여성들은 공동 저축 모임, 자조그룹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대응 주체’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그리고 2단계(2024~2026)에서는 여성을 핵심 참여자(core participant)로 지정하고, 회복력 전략의 설계와 실행 전 과정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도록 하고 있다.

기후변화로 인해 해수면이 상승하면서 땅이 깎여 나가고 염분이 침투해 살 수 있는 토지가 계속 줄어들고 있는 방글라데시 쿨라지역
[사례] 사비나 베굼 ‘기후취약지에서 일군 회복의 길’
쿨나 다코프(Dacope)에 사는 사비나 베굼(40세)은 해수면 상승과 염해 피해가 일상화된 마을에서 살아왔다. 15세에 결혼해 남편의 일용직 수입에 의존하며 오랜 기간 극빈이 지속되던 중 컨선월드와이드의 기후회복력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기후변화 대응 농업 교육을 받은 후, 사비나는 15,000타카(약 17만 원)의 지원금을 받아 0.33에이커의 토지를 임차해 첫 벼농사를 시작했다. 첫 수확 후 얻은 수익으로 염소 두 마리를 구입했고, 다음 해에는 경작지를 두 배로 확장했다. 2년이 지난 지금, 그녀는 염소 6마리와 소 2마리, 오리 20여 마리를 기르며, 1에이커 규모의 농장을 가족과 함께 운영하고 있다. 그녀의 월소득은 7,000타카에서 11,000타카로 늘었고, 자산과 저축도 꾸준히 증가했다. 사비나는 또한 자조모임(Self-help group)에 참여하여 다른 여성들에게 농업기술과 마케팅 전략(또는 정보, 수단)을 공유하며 지역 내 멘토로 활동하고 있다.
사비나는 “내 인생은 이 프로그램 덕분에 완전히 달라졌어요. 교육과 재정 지원 덕분에 스스로 설 수 있게 되었고, 무토지 여성에서 농장주로 변할 수 있었어요. 이제는 제 가족을 부양하고 더 나은 미래를 계획할 수 있게 됐어요.” 라고 전했다.
사비나의 변화는 개인의 성공을 넘어, 여성의 역량 강화가 곧 지역사회의 회복력 강화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지역CSO파트너(Jagrata Juba Shangha)는 사비나를 포함한 여성들이 잉여 농산물과 축산물을 공정하게 거래할 수 있도록, 지역 시장 가격을 공유하는 온라인 플랫폼 “오늘의 쿨나 시장가격(Ajker Khulnar Bazador)”을 운영했다. 이를 통해 여성 농업인들은 중간상인에 의존하지 않고 합리적인 가격으로 거래가 가능해졌으며 궁극적으로 소득을 창출할 수 있었다. 이러한 접근은 단순한 생계 지원을 넘어, 지식·금융·연결망이 결합될 때 기후취약 지역에서도 자립적 회복력이 가능함을 실증적으로 보여주었다.
이 외에도 일부 지방정부에서는 지역 여성 대표가 공식 회의체에 포함시키거나, 기후예산 편성 과정에 여성그룹 의견을 반영하는 제도를 도입하는 등 사회적 관계망의 재편과 권한의 재분배를 통한 회복력의 구조적 변화가 일어났다.
◆ — 현장에서 얻은 교훈
사업이 아직 진행 중인 지금, 결론을 내리기보다 현장에서 관찰된 변화를 통해 두가지 중요한 교훈을 도출해보고자 한다.
첫째, 회복력은 기술이 아니라 관계와 권한의 구조에서 비롯된다.
사업을 통해 가장 두드러지게 느낀 점은, 물리적 기반보다 사람과 관계, 그리고 권한의 구조가 회복의 수준을 좌우한다는 사실이다. 같은 지역이라도 여성그룹이 조직되어 있고, 마을 단위에서 신뢰와 협력이 작동하는 곳일수록 재난 대응이 빠르고 복구 과정이 원활했다. 여성들의 참여가 확대되면서 공동체 내부의 소통과 협력이 강화되는 모습을 여러 마을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이는 기술적 지원보다 ‘사람과 관계의 회복’이야말로 진정한 회복력의 기반임을 시사한다.
둘째, 지속적인 사업이 여성의 권한 강화로 이어진다.
여성들이 단기적 수혜자를 넘어, 의사결정의 참여자로 변화하는 과정을 목격했다. 여성들이 사업의 초기 단계에서 기술을 배우고, 생계 기반을 회복하며, 점차 의사결정의 과정에 참여하게 되는 모습을 현장에서 볼 수 있었다. 제도적 변화로 일반화하기는 이르지만, 이는 ‘참여를 통한 학습’이 권한 강화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과정적 증거로 읽힌다. 이러한 경험은 젠더 평등이 별도의 목표가 아니라, 기후회복력 구축의 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지방 정부 대표들과 수혜자들이 모여 지역 사회의 필요를 논의하고 해결책을 제안하며 그들의 공동 기여에 대해 함께 얘기하는 정기 회의 모습
◆ — 마무리
기후위기는 더 이상 자연의 문제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해수면은 매년 높아지고, 토양은 서서히 염기에 잠식되고 있다. 그러나 진짜 위기는 환경의 변화보다 불평등이 더 깊어지는 사회의 구조 속에서 드러난다. 기후재난이 닿는 곳마다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오래 영향을 받는 사람은 여성들이었다. 그렇기에 회복력은 단순히 기술이나 인프라의 문제가 아니다. 누가 의사결정에 참여하고, 누가 관계를 이끌어가는가의 문제다. 여성이 배제된 회복은 절반의 회복에 불과하다. 방글라데시의 마을에서 여성들이 회의에 앉아 의견을 내고, 서로를 격려하던 모습들은 그 어떤 통계보다 강한 증거였다.
기후위기는 앞으로도 계속 우리 앞에 새로운 도전으로 다가올 것이다. 때로는 한 번의 재난이 수년의 노력을 무너뜨릴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실패가 아니라, 기후위기 속에서 우리가 감당해야 할 현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필요한 것은 새로운 기술이 아니라, 이미 공동체 안에 존재하는 사람들의 관계와 협력, 그리고 여성들의 리더십이다. 진정한 기후회복력은 누가 기술을 보유했는가가 아니라, 누가 함께 결정하고 함께 살아갈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결국 회복력을 세우는 일은 여성 없이 이룰 수 없는 과제이며, 우리는 그들과 함께 더 강한 회복을 만들어가기 위해 오늘도 배우고 노력하고 있다.
[각주]
1) 박희영은 컨선월드와이드 한국에서 10년 이상 근무하며 아프리카와 아시아 지역의 개발·인도적 지원 사업을 기획·운영해온 실무자이다. 지속가능발전목표(SDGs)와 국제개발협력 정책에 기반한 중장기 전략 수립과 KOICA 사업 수행 경험을 보유하고 있다. 보건·영양, 생계·소득증대, 인도적 지원 등 다분야 프로젝트를 책임자 및 담당자로 수행해왔다.
변화의 최전선에서 : 여성의 손으로 세우는 기후회복력
박희영(컨선월드와이드 국제사업부 팀장)1)
이 글은 한국국제협력단(KOICA)과 후원자들의 지원으로 2021년부터 추진 중인 ‘방글라데시 해안가 기후회복력사업(정식 명칭: 극빈층 소득 증대 및 회복력 강화 지원사업)’을 중심으로, 기후위기의 한복판에서 여성들이 어떻게 변화를 만들어가고 있는지를 살펴 보고자 한다.
◆ — 들어가며, 기후불평등의 지형
방글라데시 남서부는 갠지스–브라마푸트라–메그나 세 강이 만들어낸 거대한 삼각주로, 평균 해발고도는 2미터 내외에 불과하다. 이 낮은 지형은 해수면 상승과 염수 침투에 극도로 취약하다. 매년 조석과 우기가 겹칠 때마다 바닷물이 내륙 깊숙이 밀려들며 농경지와 식수원을 오염시킨다. 한국의 서해안(평균 해발 20~30미터, 제방·방조제 완비)과 비교하면, 같은 해수면 상승이라도 방글라데시의 피해는 수십 배로 커진다. 한국에서 ‘기상이변’이라 불릴 사건이, 이곳에서는 곧 ‘삶의 붕괴’로 이어지는 이유다.
이처럼 기후위기의 영향은 단순히 환경의 문제를 넘어, 사회적 불평등이 가장 먼저 드러나는 장면이 된다. 남성들이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떠난 뒤, 여성들은 농사와 돌봄, 식수 확보까지 감당한다. 기후위기의 물리적 충격이 젠더 역할 구조와 결합될 때, 여성의 시간과 노동, 건강의 부담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이것이 바로 방글라데시 해안 지역이 보여주는 ‘젠더화된 위기의 얼굴’이다.
실제로 본 단체의 자체조사(2022)에 따르면, 사업지역의 극빈 여성가장의 월평균 가구소득은 7,000타카(약 8만 원)에 불과했다. 이는 방글라데시 전체 평균 가구소득 32,422타카(약 39만 원)의 1/4 수준으로, 동일한 빈곤선 아래에서도 여성의 생계 환경이 훨씬 더 취약함을 보여준다. 여성들은 시장 접근성과 금융 서비스, 이동권, 교육 등에서 구조적으로 배제되어 있으며, 경제활동의 기회마저 제한되어 있다.
결국 이 지역의 기후위기는 단순한 자연재난이 아니다. 해수면의 상승은 물리적 파괴를 가져오지만, 그보다 더 깊은 균열은 사회 구조 속 불평등에서 비롯된다. 기후위기는 불평등을 확대 재생산하는 복합적 위기이며, 그 중심에는 언제나 가장 먼저 영향을 받고, 가장 오래 버텨내는 여성들이 있다.
◆ — 여성 리더십과 회복력의 전환
이러한 문제는 사업 설계의 출발점이 되었다. 1단계(2021~2023)는 여성의 경제적 자립과 리더십 강화를 중점으로, 농업·식수 등 기초 생계 분야를 지원했다. 기후적응 농법 교육과 초기 자본 지원을 통해 2,655명의 극빈층 여성이 새로운 소득원을 확보했고, 가구 소득과 식량 접근성이 개선되었다. 이 변화는 단순한 소득 증대에 그치지 않았다. 여성들은 공동 저축 모임, 자조그룹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대응 주체’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그리고 2단계(2024~2026)에서는 여성을 핵심 참여자(core participant)로 지정하고, 회복력 전략의 설계와 실행 전 과정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도록 하고 있다.
기후변화로 인해 해수면이 상승하면서 땅이 깎여 나가고 염분이 침투해 살 수 있는 토지가 계속 줄어들고 있는 방글라데시 쿨라지역
[사례] 사비나 베굼 ‘기후취약지에서 일군 회복의 길’
쿨나 다코프(Dacope)에 사는 사비나 베굼(40세)은 해수면 상승과 염해 피해가 일상화된 마을에서 살아왔다. 15세에 결혼해 남편의 일용직 수입에 의존하며 오랜 기간 극빈이 지속되던 중 컨선월드와이드의 기후회복력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기후변화 대응 농업 교육을 받은 후, 사비나는 15,000타카(약 17만 원)의 지원금을 받아 0.33에이커의 토지를 임차해 첫 벼농사를 시작했다. 첫 수확 후 얻은 수익으로 염소 두 마리를 구입했고, 다음 해에는 경작지를 두 배로 확장했다. 2년이 지난 지금, 그녀는 염소 6마리와 소 2마리, 오리 20여 마리를 기르며, 1에이커 규모의 농장을 가족과 함께 운영하고 있다. 그녀의 월소득은 7,000타카에서 11,000타카로 늘었고, 자산과 저축도 꾸준히 증가했다. 사비나는 또한 자조모임(Self-help group)에 참여하여 다른 여성들에게 농업기술과 마케팅 전략(또는 정보, 수단)을 공유하며 지역 내 멘토로 활동하고 있다.
사비나는 “내 인생은 이 프로그램 덕분에 완전히 달라졌어요. 교육과 재정 지원 덕분에 스스로 설 수 있게 되었고, 무토지 여성에서 농장주로 변할 수 있었어요. 이제는 제 가족을 부양하고 더 나은 미래를 계획할 수 있게 됐어요.” 라고 전했다.
사비나의 변화는 개인의 성공을 넘어, 여성의 역량 강화가 곧 지역사회의 회복력 강화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지역CSO파트너(Jagrata Juba Shangha)는 사비나를 포함한 여성들이 잉여 농산물과 축산물을 공정하게 거래할 수 있도록, 지역 시장 가격을 공유하는 온라인 플랫폼 “오늘의 쿨나 시장가격(Ajker Khulnar Bazador)”을 운영했다. 이를 통해 여성 농업인들은 중간상인에 의존하지 않고 합리적인 가격으로 거래가 가능해졌으며 궁극적으로 소득을 창출할 수 있었다. 이러한 접근은 단순한 생계 지원을 넘어, 지식·금융·연결망이 결합될 때 기후취약 지역에서도 자립적 회복력이 가능함을 실증적으로 보여주었다.
이 외에도 일부 지방정부에서는 지역 여성 대표가 공식 회의체에 포함시키거나, 기후예산 편성 과정에 여성그룹 의견을 반영하는 제도를 도입하는 등 사회적 관계망의 재편과 권한의 재분배를 통한 회복력의 구조적 변화가 일어났다.
◆ — 현장에서 얻은 교훈
사업이 아직 진행 중인 지금, 결론을 내리기보다 현장에서 관찰된 변화를 통해 두가지 중요한 교훈을 도출해보고자 한다.
첫째, 회복력은 기술이 아니라 관계와 권한의 구조에서 비롯된다.
사업을 통해 가장 두드러지게 느낀 점은, 물리적 기반보다 사람과 관계, 그리고 권한의 구조가 회복의 수준을 좌우한다는 사실이다. 같은 지역이라도 여성그룹이 조직되어 있고, 마을 단위에서 신뢰와 협력이 작동하는 곳일수록 재난 대응이 빠르고 복구 과정이 원활했다. 여성들의 참여가 확대되면서 공동체 내부의 소통과 협력이 강화되는 모습을 여러 마을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이는 기술적 지원보다 ‘사람과 관계의 회복’이야말로 진정한 회복력의 기반임을 시사한다.
둘째, 지속적인 사업이 여성의 권한 강화로 이어진다.
여성들이 단기적 수혜자를 넘어, 의사결정의 참여자로 변화하는 과정을 목격했다. 여성들이 사업의 초기 단계에서 기술을 배우고, 생계 기반을 회복하며, 점차 의사결정의 과정에 참여하게 되는 모습을 현장에서 볼 수 있었다. 제도적 변화로 일반화하기는 이르지만, 이는 ‘참여를 통한 학습’이 권한 강화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과정적 증거로 읽힌다. 이러한 경험은 젠더 평등이 별도의 목표가 아니라, 기후회복력 구축의 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지방 정부 대표들과 수혜자들이 모여 지역 사회의 필요를 논의하고 해결책을 제안하며 그들의 공동 기여에 대해 함께 얘기하는 정기 회의 모습
◆ — 마무리
기후위기는 더 이상 자연의 문제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해수면은 매년 높아지고, 토양은 서서히 염기에 잠식되고 있다. 그러나 진짜 위기는 환경의 변화보다 불평등이 더 깊어지는 사회의 구조 속에서 드러난다. 기후재난이 닿는 곳마다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오래 영향을 받는 사람은 여성들이었다. 그렇기에 회복력은 단순히 기술이나 인프라의 문제가 아니다. 누가 의사결정에 참여하고, 누가 관계를 이끌어가는가의 문제다. 여성이 배제된 회복은 절반의 회복에 불과하다. 방글라데시의 마을에서 여성들이 회의에 앉아 의견을 내고, 서로를 격려하던 모습들은 그 어떤 통계보다 강한 증거였다.
기후위기는 앞으로도 계속 우리 앞에 새로운 도전으로 다가올 것이다. 때로는 한 번의 재난이 수년의 노력을 무너뜨릴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실패가 아니라, 기후위기 속에서 우리가 감당해야 할 현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필요한 것은 새로운 기술이 아니라, 이미 공동체 안에 존재하는 사람들의 관계와 협력, 그리고 여성들의 리더십이다. 진정한 기후회복력은 누가 기술을 보유했는가가 아니라, 누가 함께 결정하고 함께 살아갈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결국 회복력을 세우는 일은 여성 없이 이룰 수 없는 과제이며, 우리는 그들과 함께 더 강한 회복을 만들어가기 위해 오늘도 배우고 노력하고 있다.
[각주]
1) 박희영은 컨선월드와이드 한국에서 10년 이상 근무하며 아프리카와 아시아 지역의 개발·인도적 지원 사업을 기획·운영해온 실무자이다. 지속가능발전목표(SDGs)와 국제개발협력 정책에 기반한 중장기 전략 수립과 KOICA 사업 수행 경험을 보유하고 있다. 보건·영양, 생계·소득증대, 인도적 지원 등 다분야 프로젝트를 책임자 및 담당자로 수행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