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7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 연대하는 여성의 목소리
장근영(한국여성재단 지원사업2팀 팀장)1)

제27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개막식
1997년부터 시작된 서울국제여성영화제(SIWFF, Seoul International Women’s Film Festival)는 “여성의 눈으로 세계를 보자” 슬로건 아래 여성 감독들의 영화를 통해 성평등과 다양성의 가치를 전해왔다. 올해 제27회 영화제는 8월 21일부터 27일까지 메가박스 신촌에서 7일간 개최되었다. 전 세계 38개국에서 138편의 영화가 상영되었으며, 61건의 토크 프로그램과 다양한 이벤트가 진행되었다. 변영주 감독과 봉태규 배우의 자연스러운 진행으로 막이 올랐다. 1997년부터 이어온 "여성의 눈으로 세계를 보자"는 기본 정신을 바탕으로, 올해 제27회 영화제의 슬로건은 'F를 상상하다(Reimagining F)'로 설정되었다. 이는 영화(Film), 영화제(Festival), 여성(Female)이라는 핵심에서 출발하여 우정(Friendship), 동료애(Fellowship), 자유(Freedom), 미래(Future)로 이어지는 연대와 변화의 가능성을 함께 상상하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여성 감독들에게 영화 상영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을 넘어, 세계의 여성들이 직면한 낙태, 노동착취, 성폭력, 교육 불평등 등 구체적인 젠더 이슈를 가시화하고 사회적 공감을 확장하는 장으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각 영화는 단순한 예술 작품을 넘어 여성의 신체, 노동, 인권의 현실을 증언하는 매개체가 된다.

개막작 <선샤인>
개막작 〈선샤인〉(감독 앙투아네트 하다오네)은 필리핀의 젊은 여성이 겪는 현실을 섬세하게 그린 작품이다. 주인공 선샤인은 19세의 촉망받는 체조 선수로, 국가대표 선발이 거의 확실시된 상황에서 올림픽 예선전을 앞두고 임신 사실을 알게 된다. 임신 중지가 불법인 엄격한 가톨릭 국가에서 평생의 꿈과 장학금이 위태로워진다. 체조 선수로서의 꿈, 올림픽 출전, 그리고 대학 장학금, 평생의 기회를 모두 포기하고 어머니가 될 것인가, 아니면 불법 낙태약의 위험을 감수할 것인가. 그녀는 이 가혹한 선택 사이에서 흔들린다.
이 영화의 여운이 오래 남는 이유는 고통의 서사가 연대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선샤인을 돕는 건 불법 약물을 거래하는 시장의 노년 여성, 그녀의 마음을 꿰뚫어보는 신비로운 어린아이, 겉으로는 불친절해 보였던 여관 주인, 그리고 성폭력으로 임신한 13세 소녀다. 각기 다른 사회적 위치에 있는 이 여성들은 선샤인의 이야기를 듣고, 판단하지 않으며, 이해로 다가간다.
13세 소녀를 임신시킨 남자가 뻔뻔하게 행동하는 장면에서 선샤인이 주저하지 않고 맥주병으로 그의 뒤통수를 내리치고 도망치는 장면은 특히 인상적이다. 이는 성폭력 피해자를 위한 분노의 표출이자 연대의 저항이며, 동시에 선샤인의 주체성이 얼마나 명확한지를 보여주는 결정적 순간이다. 피해에 대한 분노를 표출함으로써 저항하고,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고 올림픽 예선전에 출전한 선샤인은 여성의 주체적인 행동을 보여준다. 영화의 마지막 대사 "이제 절 이해하나요?" "이해합니다. 이제 이해합니다."는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다.

<올해의 보이스> 수상 모습
영화제의 또 다른 하이라이트는 '올해의 보이스' 시상식이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가 2019년부터 이어온 ‘올해의 보이스’ 상은 최근 1년간 여성 이슈와 현안에 주목하여 활동한 개인과 단체를 선정해 각 상금과 상장을 수여하는 상으로 2023년부터는 한국여성재단과의 협업으로 진행되고 있다. '올해의 보이스' 상은 지금까지 성폭력, 낙태죄 폐지, 성소수자 인권, 노동권, 여성 환경, 차별 금지 등 다양한 젠더 이슈에서 활동해 온 인물과 단체들을 수상해 왔다. 서지현 검사, 모두를 위한 낙태죄폐지 공동 행동, 청소년 페미니스트 시민단체 위티,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여성환경연대 등이 시대의 목소리로 인정받았으며, 2023년부터는 한국여성재단과의 협업으로 진행되고 있다.
한국여성재단은 추천과 후원을 하며 심사에는 관여하지 않으며, 우리 사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목소리 내고 애쓰고 활동하는 사람들을 찾아내고, 그들의 이야기를 더 선명하게 들여다보는 과정은 재단 내부에서도 꽤 긴 고민의 시간이다.
2025년 ‘올해의 보이스’에는 세 팀이 선정되었다. 첫째는 내란 정국 속에서 남태령 아카이브/심포지엄을 주도한 김후주 대표로, “청년들과 여성, 소수자들이 어떻게 새로운 방식의 연대를 만들어냈는가” 기록하고 공유했다. 둘째는 세계 최장기 고공농성 중인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의 박정혜 수석부지회장과 소현숙 조직부장으로, 여성 노동의 현실을 통해 "한국 사회가 여성 노동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에 대한 중요한 화두"를 제시했다. 셋째는 투명 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정진임 소장으로, 정보공개 운동을 통해 민주주의를 확산시키며 광장을 안전하고 평등하게 만드는 '보이지 않는 손' 역할을 해왔다.
이들의 수상소감에서 강하게 느껴지는 것은 ‘목소리’의 진정한 의미다. 기록, 투쟁, 공개라는 각기 다른 수단으로 활동했지만, 모두 사회적 부정의를 응시하고 변화를 촉구해왔다. 한 사람의 목소리는 또 다른 누군가의 용기가 되고, 그 누적된 용기가 결국 사회를 조금씩 바꾼다.
개막작 〈선샤인〉이 보여준 개인의 고통과 연대, '올해의 보이스'가 주목한 사회적 실천은 결국 같은 지점을 향한다. ‘F를 상상하다’는 여성의 재생산권, 노동권, 차별 금지, 알 권리가 서로 분리된 의제가 아니라 모두 여성의 존엄과 자율성이라는 하나의 뿌리에서 나온다는 메시지다. 영화제는 서로 다른 세대와 현장, 국경을 넘어 여성들의 목소리가 하나의 흐름을 만들어낼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하다오네 감독은 말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법뿐만이 아니라 여성 간의 연대와 같은 문화적 변화입니다. 무엇보다도 젊은 여성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그리고 덧붙였다. "공감은 우리가 줄 수 있는 가장 간단하면서도 강력한 선물입니다."
한국여성재단이 서울국제여성영화제와 함께 '올해의 보이스'를 이어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영화제가 스크린 위에서 여성의 목소리를 보여준다면, 재단은 그 목소리들이 현장의 활동과 만나 실질적 변화로 이어지도록 지원한다. 문화와 운동이 만나는 지점에서, 예술과 현장이 연결되는 순간, 공감은 연대로 전환 되고 연대는 사회적 변화의 토양이 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 목소리 내고 있는 누군가를 생각하며, 함께 'F를 상상하자'는 메시지를 건넨다.

제27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공식 포스터
각주
1) 장근영은 한국여성재단 지원사업 2팀장으로 성평등, 여성임파워먼트, 이주여성, 세계여성재단네트워크(INWF) 사업을 총괄하고 있다.
제 27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 연대하는 여성의 목소리
장근영(한국여성재단 지원사업2팀 팀장)1)
제27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개막식
1997년부터 시작된 서울국제여성영화제(SIWFF, Seoul International Women’s Film Festival)는 “여성의 눈으로 세계를 보자” 슬로건 아래 여성 감독들의 영화를 통해 성평등과 다양성의 가치를 전해왔다. 올해 제27회 영화제는 8월 21일부터 27일까지 메가박스 신촌에서 7일간 개최되었다. 전 세계 38개국에서 138편의 영화가 상영되었으며, 61건의 토크 프로그램과 다양한 이벤트가 진행되었다. 변영주 감독과 봉태규 배우의 자연스러운 진행으로 막이 올랐다. 1997년부터 이어온 "여성의 눈으로 세계를 보자"는 기본 정신을 바탕으로, 올해 제27회 영화제의 슬로건은 'F를 상상하다(Reimagining F)'로 설정되었다. 이는 영화(Film), 영화제(Festival), 여성(Female)이라는 핵심에서 출발하여 우정(Friendship), 동료애(Fellowship), 자유(Freedom), 미래(Future)로 이어지는 연대와 변화의 가능성을 함께 상상하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여성 감독들에게 영화 상영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을 넘어, 세계의 여성들이 직면한 낙태, 노동착취, 성폭력, 교육 불평등 등 구체적인 젠더 이슈를 가시화하고 사회적 공감을 확장하는 장으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각 영화는 단순한 예술 작품을 넘어 여성의 신체, 노동, 인권의 현실을 증언하는 매개체가 된다.
개막작 <선샤인>
개막작 〈선샤인〉(감독 앙투아네트 하다오네)은 필리핀의 젊은 여성이 겪는 현실을 섬세하게 그린 작품이다. 주인공 선샤인은 19세의 촉망받는 체조 선수로, 국가대표 선발이 거의 확실시된 상황에서 올림픽 예선전을 앞두고 임신 사실을 알게 된다. 임신 중지가 불법인 엄격한 가톨릭 국가에서 평생의 꿈과 장학금이 위태로워진다. 체조 선수로서의 꿈, 올림픽 출전, 그리고 대학 장학금, 평생의 기회를 모두 포기하고 어머니가 될 것인가, 아니면 불법 낙태약의 위험을 감수할 것인가. 그녀는 이 가혹한 선택 사이에서 흔들린다.
이 영화의 여운이 오래 남는 이유는 고통의 서사가 연대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선샤인을 돕는 건 불법 약물을 거래하는 시장의 노년 여성, 그녀의 마음을 꿰뚫어보는 신비로운 어린아이, 겉으로는 불친절해 보였던 여관 주인, 그리고 성폭력으로 임신한 13세 소녀다. 각기 다른 사회적 위치에 있는 이 여성들은 선샤인의 이야기를 듣고, 판단하지 않으며, 이해로 다가간다.
13세 소녀를 임신시킨 남자가 뻔뻔하게 행동하는 장면에서 선샤인이 주저하지 않고 맥주병으로 그의 뒤통수를 내리치고 도망치는 장면은 특히 인상적이다. 이는 성폭력 피해자를 위한 분노의 표출이자 연대의 저항이며, 동시에 선샤인의 주체성이 얼마나 명확한지를 보여주는 결정적 순간이다. 피해에 대한 분노를 표출함으로써 저항하고,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고 올림픽 예선전에 출전한 선샤인은 여성의 주체적인 행동을 보여준다. 영화의 마지막 대사 "이제 절 이해하나요?" "이해합니다. 이제 이해합니다."는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다.
<올해의 보이스> 수상 모습
영화제의 또 다른 하이라이트는 '올해의 보이스' 시상식이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가 2019년부터 이어온 ‘올해의 보이스’ 상은 최근 1년간 여성 이슈와 현안에 주목하여 활동한 개인과 단체를 선정해 각 상금과 상장을 수여하는 상으로 2023년부터는 한국여성재단과의 협업으로 진행되고 있다. '올해의 보이스' 상은 지금까지 성폭력, 낙태죄 폐지, 성소수자 인권, 노동권, 여성 환경, 차별 금지 등 다양한 젠더 이슈에서 활동해 온 인물과 단체들을 수상해 왔다. 서지현 검사, 모두를 위한 낙태죄폐지 공동 행동, 청소년 페미니스트 시민단체 위티,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여성환경연대 등이 시대의 목소리로 인정받았으며, 2023년부터는 한국여성재단과의 협업으로 진행되고 있다.
한국여성재단은 추천과 후원을 하며 심사에는 관여하지 않으며, 우리 사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목소리 내고 애쓰고 활동하는 사람들을 찾아내고, 그들의 이야기를 더 선명하게 들여다보는 과정은 재단 내부에서도 꽤 긴 고민의 시간이다.
2025년 ‘올해의 보이스’에는 세 팀이 선정되었다. 첫째는 내란 정국 속에서 남태령 아카이브/심포지엄을 주도한 김후주 대표로, “청년들과 여성, 소수자들이 어떻게 새로운 방식의 연대를 만들어냈는가” 기록하고 공유했다. 둘째는 세계 최장기 고공농성 중인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의 박정혜 수석부지회장과 소현숙 조직부장으로, 여성 노동의 현실을 통해 "한국 사회가 여성 노동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에 대한 중요한 화두"를 제시했다. 셋째는 투명 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정진임 소장으로, 정보공개 운동을 통해 민주주의를 확산시키며 광장을 안전하고 평등하게 만드는 '보이지 않는 손' 역할을 해왔다.
이들의 수상소감에서 강하게 느껴지는 것은 ‘목소리’의 진정한 의미다. 기록, 투쟁, 공개라는 각기 다른 수단으로 활동했지만, 모두 사회적 부정의를 응시하고 변화를 촉구해왔다. 한 사람의 목소리는 또 다른 누군가의 용기가 되고, 그 누적된 용기가 결국 사회를 조금씩 바꾼다.
개막작 〈선샤인〉이 보여준 개인의 고통과 연대, '올해의 보이스'가 주목한 사회적 실천은 결국 같은 지점을 향한다. ‘F를 상상하다’는 여성의 재생산권, 노동권, 차별 금지, 알 권리가 서로 분리된 의제가 아니라 모두 여성의 존엄과 자율성이라는 하나의 뿌리에서 나온다는 메시지다. 영화제는 서로 다른 세대와 현장, 국경을 넘어 여성들의 목소리가 하나의 흐름을 만들어낼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하다오네 감독은 말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법뿐만이 아니라 여성 간의 연대와 같은 문화적 변화입니다. 무엇보다도 젊은 여성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그리고 덧붙였다. "공감은 우리가 줄 수 있는 가장 간단하면서도 강력한 선물입니다."
한국여성재단이 서울국제여성영화제와 함께 '올해의 보이스'를 이어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영화제가 스크린 위에서 여성의 목소리를 보여준다면, 재단은 그 목소리들이 현장의 활동과 만나 실질적 변화로 이어지도록 지원한다. 문화와 운동이 만나는 지점에서, 예술과 현장이 연결되는 순간, 공감은 연대로 전환 되고 연대는 사회적 변화의 토양이 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 목소리 내고 있는 누군가를 생각하며, 함께 'F를 상상하자'는 메시지를 건넨다.
제27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공식 포스터
각주
1) 장근영은 한국여성재단 지원사업 2팀장으로 성평등, 여성임파워먼트, 이주여성, 세계여성재단네트워크(INWF) 사업을 총괄하고 있다.